이발사에게 머리깎을 때를 물어봐서는 안 된다

by 경계인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워렌 버핏의 주주서한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듣는 순간 직관적으로 이해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리를 깎아보았을테니 말이죠. 그렇지만 버핏이 이 말을 한 이유가 우리보고 언제 머리깎을지 의사결정에 참고하라는 건 아닐 것입니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 말에 우리가 투자할 때 항상 생각해야 할 원칙이 담겨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펀드 매니저에게 또는 투자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주식을 살지, 말지 또는 언제 살지 이런 질문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질문을 받은 전문가는 객관적, 중립적인 의견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고 좋은 뜻으로 그러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아야 하는 또 다른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사람이 객관적 의견을 준 것일 수도 있지만, 이미 이해관계 충돌 상황 속에서 준 의견은 객관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버핏의 이 말은 원전정책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원전의 전문가는 원전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 의견을 100% 다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100% 다'라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기본적으로 과학적 방법론과 이론, 실험에 근거한 의견은 그 의견대로 존중받아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정 조건하에 인체가 어떤 핵종에 어느 정도 피폭되는 것이 허용되는지, 이 원전이 설계대로 지어진다면 노심손상빈도는 어느 정도인지, 이런 것들을 느낌과 주관에 의하여 결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원자력 관련 이슈는 과학과 감성, 객관과 주관 이런 식의 대립 구도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결론이 잘 안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도 비슷한 대립구도를 갖고 있습니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설비가 어느 정도 방사성 물질을 걸러낼 수 있는지, 방류후 인근 해역 그리고 우리나라 해역에서 오염물질이 어느 정도 검출될 것인지 계산하고 그 결과를 근거로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괴담이라고 평가절하하고 과학적, 정량적 수치를 제시하라고 합니다. 반대편에서는 그렇게 안전하면 일본이 국내 육지에서 처리하지 왜 방류하느냐, DDT처럼 처음에 안전하다고 했지만 나중에 문제가 된 확인된 경우가 있지 않느냐 등등의 주장으로 대응합니다. 이렇게 서로 양보할 생각없이 타협이 불가능한 상황이 계속되다가 결국 어느 한쪽이 (주로 정권을 가진 측) 상대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일을 진행시키는 것도 원자력 이슈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물론 후쿠시마 오염수에는 훨신 복잡한 여러 이슈가 있겠지만 그게 이 글의 주제는 아니기에 여기서는 이 정도로만 다룹니다.


다시 이발사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원자력 전문가는 원자력 이슈에서는 이발사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머리를 깎을 때는 이발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언제 이발을 할지, 즉 이발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이발사에게 물어보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발사에게 물어볼 일과 물어보면 안 되고 스스로 결정할 일을 잘 구분하는 일입니다. 평안의 기도의 마지막 구절이 떠오르지 않나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굳이 비유하자면, 원전 전문가들에게 물어볼 것과 우리 국민들의 총화를 담아 결정할 사항을 잘 구분할 수 있는 지혜일 것 같습니다.


신이시여,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키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이 문제는 원전의 수용성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원자력계에서도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원자력 안전의 기준을 정하거나 기준에 부합하는지 평가하는 것과 같은 일들과 원자력을 쓸 것인지 말 것인지 같은 일들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정당이 있을 수도 없고요. 수용성은 원자력계의 숙명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도체, 자동차 이런 분야에는 거의 없는 원자력 고유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원자력의 태동기부터 불과 얼마 전까지 원자력계는 이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거나 자신들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일부의 괴담이라고 평가절하해 왔습니다. 그것이 문제를 크게 키운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해외를 보더라도 이 문제에 정답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이 그나마 오래 걸리지만 유효한 방법이겠지만, 술담배 끊고 운동 많이 하라는 의사의 말씀처럼 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기는 어려운 말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마지막으로 가슴이 결정한 건 언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