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에서

by 경계인

어릴 때 장래희망란에 '큰서점주인'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책을 좋아했고 책이 있는 공간에 있는 걸 좋아해서 서점이나 도서관에 자주 갔습니다. 요즘도 국내든 해외든 새로운 곳에 가면 도서관, 대학, 서점같은 곳에 들러보곤 합니다. 그렇지만 어린 마음에도 그냥 서점주인이라고만 하기에는 뭔가 부족해보였는지 앞에 '큰'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붙였습니다. 겉멋같은 것이었겠지만 크고 작고를 떠나서 저는 책이 있는 공간에 있는 걸 좋아합니다. 책이 서가에 죽 꽂혀 있는 공간은 화려한 인테리어가 없더라도 독특하면서 고풍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그곳에 와 있는 사람들도 왠지 모를 공통점이 느껴집니다. 물론 우리나라 시립도서관에는 다수의 고시생과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어슬렁거리기 때문에 기묘한 부조화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어지간한 자료는 확인가능하기 때문에 도서관에 갈 일은 거의 없는 것 같고 저 역시 시간이 나도 책보다는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보거나 책을 보더라도 전자책을 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일부러 찾아가지 않고서는 도서관에 갈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일부러 왔습니다. 예전에 제가 참여했던 프로젝트의 최종보고서를 아무리 찾아도 인터넷에서 구할 수 없어서 였습니다. 오래 전 자료이기도 하고 학술적 가치가 별로 없어서인지 오직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야만 실물을 볼 수 있는 자료였습니다. 사실 저 역시 내용보다는 제 이름이 나온 부분이 있으면 사진 한 장 찍어두고 싶어서였는데 이렇게 한가하지 않았다면 굳이 하지 않을 일이었씁니다. 그래도 이런 일은 생각났을 때 해 놓는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아마도 처음 와 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3대 도서관이라는 국회, 서울대, 국립도서관 중 앞에 2곳은 오래전이지만 다 가 봤는데 국립도서관 본원은 50살 다 되어서야 와보게 되었습니다. 입구를 향해 올라가다 보니 문체부 노조에서 붙인 플랭카드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게 문화부 기관이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쉽게 마음에 와 닿지도 않습니다. 문화, 체육, 관광 중 당연히 문화의 한 영역일 것 같은데 물론 책을 쓰고 읽는 건 문화의 중요한 영역이겠지만 도서관이 문화의 영역인가하는 의문이 듭니다.


도서관의 본질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외관상 책을 보관하는 곳이고 단어 자체가 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건물입니다만, 미디어와 정보, 지식이 분리되어 흘러다니는 세상에서 과연 책의 보관, 대출이 도서관의 본질일 수 있을까요. 아주 오래전 도서관이 지식과 정보의 저장, 교류, 발견, 혁신의 중심지였던 건 책이 귀했을 뿐 아니라 그 책을 보고 연구하기 위한 사람들이 거기 모여있어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규장각 역시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르네상스의 기원이 아랍에서 보존된 그리스 문헌을 연구하던 톨레도에 있는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국립도서관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요? 저 역시 도서관에서 상당기간 시험공부를 한 사람이지만, 이런 기관, 건물을 볼 때마다 이런 레거시 기관에 대한 기능조정같은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렇게 넓고 화려한 공간이 단지 책을 보관하고, 대출하고, 시험공부하거나 등에 사람들이 소일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건 비효율적입니다. 박물관의 학예사, 대학의 교수, 연구기관의 연구원 같은 지식 생산자들의 공동체가 필요한 건지 이런 식으로 단순 기록의 유지, 관리가 계속 이 기관과 시설의 존재 이유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지식의 창출, 탐구, 토론과 연구 이런 것들은 변하지 않는 존재의 이유이지만 그 매체는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런 공간이 어떤 것이어야 할지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여전히 책은 있어야 할까요? 모든게 디지털화되면 우리가 종이책을 계속 볼 것인지의 문제와 관련된 질문입니다.


물론 이 도서관에서 가깝게 산다면 이런 도서관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입니다. 저같이 이런 느낌의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은 특히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많이 변했고 국립 XX박물관 식의 성격, 기능이 애매한 공간, 시설이 계속 생기거나 존속하는 것은 꽤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저 역시 이사다니면서 많은 책을 버렸고, 자료와 지식은 점점 많은 부분이 디지털 정보형태로 저장하고 있습니다. 그게 더 유용하기도 하고요. 가끔은 혹은 어떤 경우는 종이책이 더 좋거나 필수적이지만, 모든 걸 그전 방식대로 가기는 어렵습니다.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기능으로 다시 한 번 재창조해야 합니다. 그게 법적, 제도적으로 어떤 성격이고 어떤 기관으로 운영되어야 할지도 고심해야 할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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