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시절에 몇 번 와보고 나서 다시 연신내에 온 건 20년 정도된 것 같습니다. 광화문에서 통일로로 죽 서북쪽으로 난 길은 사실상 외길에 가깝습니다. 인왕산, 백련산, 북한산 같은 산들 사이로 난 하나의 큰 길이 있을 뿐 다른 길이 없는 지역이 이 동네입니다. 광화문에서 올라가다 보면 무악재를 사이에 두고 독립문역과 홍제역이 있는데 홍제역이 본격적인 서북 지역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중간 거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전체적으로 보면 서북지역에서 가장 큰 상권은 연신내일 것입니다. 이 동네 와 본지도 오래 되었고 최근에 GTX나 새로운 교통계획이 잡혀 있어서 이 지역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과거에 아무 것도 없던 지축역 근처에 지식산업센터가 잔뜩 들어섰다는 뉴스도 봤고, 은평 뉴타운 같은 곳이 새롭게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가 이동네를 잘 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 동네에 올 때 받은, 받는 느낌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은평구는 서울의 여러 구 중에 소득수준으로 보면 하위 몇 등 안에 들것 같은데 딱 그 정도의 느낌을 받습니다. 길거리의 모습, 사람들의 행색, 가게들의 업종 이런 것들이 종합되어 그 동네의 느낌과 인상을 결정할 텐데 딱 그런 느낌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자체야 20여년전보다 훨씬 잘 사는 것 같은데, 이 동네에 그런 변화가 군데군데 안 느껴지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적인 모습은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제일 큰 이유같습니다. 여전히 연신내역 바로 옆에는 연서시장이 있고 시장 안을 다니는 사람들의 나이는 꽤 많아 보입니다만, 예전과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지 않고, 파는 물건들도 그 시절, 그 연령대 사람들이 살 법한 것들입니다. 상인과 손님이 함께 나이들어 가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불광역 근처 백화점이 하나 있는데 거기 역시 삐까번쩍한 고급 백화점이 아니라 아울렛에 시장통을 얹어 놓은 것 같습니다. 집들도 신축의 고층아파트보다는 저층의 빌라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홍제동, 아현동 같은 곳만 해도 신축 고층 아파트로 재개발된 곳과 예전의 빌라, 원룸, 상가주택이 공존하고 있는데 이 동에는 전통 주거지역이 압도적인 듯합니다. 지축쪽이나 은평 뉴타운 쪽은 상황이 다르겠지만 서북의 대표인 연신내는 그렇습니다. 중국어에 보면 흐어시베이펑이란 표현이 있는데 서북의 황량함을 빌어 굶주림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서울만 놓고 보면 서북이 갖는 의미나 느낌도 그 표현과 통하는 무엇이 있습니다. 물론 서울 아닌 다른 지방, 농촌 이런 곳들과 비교하면 여기가 평균 혹은 그 이상의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제 눈으로 극히 주관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삶의 양식이랄까 그런 것이 황두진 건축가의 무지개떡 건축처럼 여러가지 측면에서 만족스럽지만 고급지지는 못한 그래서 실행 가능한 건축의 개념과 닿아 있을 것 같습니다. 음식으로 치면 경양식처럼, 5층 내외의 상가주택처럼 직주근접에 슬세권을 형성할 수 있는 삶의 그릇은 초고층 럭셔리 아파트나 최고급 백화점에서 만들어지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동경하지만 모두가 갖는 순간 그건 이미 동경의 대상이 아니니까요. 모두가 거기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현재 한국사회, 교육, 경제의 공통된 분모라면 그 반대가 아닌 중용의 위치에 이런 삶의 양식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한때 1억 총중류 사회라 했던 일본, 그 중에서도 도쿄의 대부분은 이런 주거양식, 생활방식에 터잡고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중심을 향해 돌진하기에 그 에너지로 우리가 지금 누리는 삶이 가능해졌고 우리나라가 이 정도 살게 된 것 같습니다만, 이제 그 부작용이 너무 크고 그게 아래로부터 무너져 지속가능하지 않다면 대안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이대로 서서히 침몰하는게 맞을지 아니면 늘 그래왔듯이 지키려하면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피크한국 같은 자극적인 말은 피하더라도 지속가능한 체계로 다시 한 번 변화가 필요해 보이고 여기 서북에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연신내에서 같이 만난 친구와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 동네에서 둘다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전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봤던 그 시절은 동네 분위기, 가족의 구성, 경제상황, 사회적 분위기 등등 여러가지가 맞물려 빚어낸 향수를 불러왔습니다. 저 역시 그 시절에 고교, 대학생활을 해서인지 그 시절이 막연히 좋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나 사회가 완전히 그때로 돌아가긴 어렵겠지만 여기 서북에서 뭔가 테스트로 시도해 볼 것들은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