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나를 쉬게 만드는 일
늦은 저녁을 먹고 한가롭게 TV를 보다가 너무 단조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더 적극적인 휴식을 찾아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 앞 공원으로 나갔다. 요즘 날씨가 선선해서 산책하기가 딱 좋다. 물론 이전에도 직장에서 퇴근 후 운동도 할 겸 머리를 식히기 위해 공원을 찾았었다. 1시간 동안 러닝을 하자거나, 5km 정도를 걷고 오자는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쉬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하던 방식대로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휴식도 의식하지 않으면 휴식이 될 수 없다. 휴식에도 일상에서 살아내던 관성이 작용하기 때문에 휴식시간에도 적극적으로 쉼을 보장해야 한다.
이후 산책할 때면 아무 목표도 정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쉬고 오기로 했다. 그저 벤치에 앉아 있다 오기만 하더라도 스스로를 칭찬하기로 했다. 눕고 싶은 관성을 뒤로 하고 어쨌든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다. 퇴근 후 집 밖에 다시 나오는 일이 세상 힘든 일인지. 그렇기에 머리가 복잡하거나 적극적인 휴식을 하고 싶을 때면 공원에 나가더라도 무엇을 하든 나를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대체로 공원에 나오면 30분에서 1시간 정도는 설렁설렁 걷다가 집에 들어가지만, 어떤 날은 진짜 벤치에 앉아서 휴대폰만 들여다보다가 귀가한 적도 있고 10분 정도 산책을 하다가 너무 재미없어서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한 적도 있다.
MBC 라디오「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유유자적하게 공원을 거닐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면 상쾌하다. 사람에 관심이 많은 나는 내 생각에만 몰두하지 못한다. 공원에서 걷거나 뛰는 사람도 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보는 일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저녁인데 선캡을 쓰고 운동하는 아주머니도 있고, 벤치에서 애정 행각을 일삼는 커플도 있고, 강아지 산책을 시키는 사람도 있다. 공원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쉬고 운동하고 잠시 지나간다.
행복은 불편함 속에 있다. 그저 집에서 드러눕는다고 해서 몸과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귀찮고 약간 수고스럽더라도 옷을 갈아입고 밖을 나가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 막상 나가기 전까지는 세상만사 귀찮아도 조금만 스스로를 다독여서 밖으로 끌고 나가면 얼굴에 스치는 바람결에 살아있음을 느끼고 산뜻함을 맛볼 수 있다.
매일 글을 써야지 다짐하지만 퇴근하고 눕기만 한 날에는 글도 안 쓰게 되지만, 조금 피곤해도 오히려 몸을 일으켜 밖에서 운동을 하고 온 날에는 글이 써진다. 바쁜 사람이 일도 잘하고 연애도 잘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일상은 관성이다. 생활은 습관이다. 일도 휴식도 취미도 모두 움직임 속에서 결과가 나온다. 관계 또한 내가 움직여야 발전하고 성숙해진다.
오늘도 나는 산책하러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