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죽던 날

by 브론치

깊은 잠에 빠진 날, 꿈속에서 난 그녀를 만나고 있었다. 자신의 소풍을 시작하기 위해 그 어린 생이 내게로 달려온다. 난 이 소풍을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녀가 내 품에 처음 안기던 그날의 가슴 벅참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이 흐르고, 이제 그녀는 나를 향해 달려와 안기며 환하게 웃어 준다. 그녀가 나에게 환하게 웃어줄 때면, 그녀는 내게 있어 하늘의 신이자 부처이고 예수이며 내 모든 것이 된다. 그녀는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존귀한 존재이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는 나의 딸. 세상에 감사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내 딸이 되어 주었다는 것이다.


아침해가 밝아 온다. 휴대폰 알림이 울리고, 화들짝 놀라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출근 준비를 한다. 아직 주아와 아내는 꿈나라다. 오늘은 아내가 쉬는 날이라 아이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맡기로 한 날이다. 방문을 열고 나가는데, 아내가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잘 갔다 와”라고 말하고는 다시 꿈나라로 돌아간다. 전날 치열했던 육아와 근무로 심신이 지친 듯한 목소리다.


난 양치질하고 머리 감고 세수한 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출근한다. 이제 막 가을 초입에 들어서는 시기라 아침 공기 속에 가을과 여름의 향기가 반반씩 섞여 내 숨 속으로 들어온다. 공기는 시원하지만 아직 여름의 꿉꿉함이 남아 있다. 그래도 계절의 변화는 늘 반갑다. 뭔가 새로운 기회와 변화가 충만해 있다는 생각에 약간의 감정적 동요와 설렘 같은 기대가 전해진다. 어쩌면 가을을 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차에 타서 시동을 걸기 전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시동 버튼을 누른다. 큰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리고 엔진이 덜덜거리며 떨리더니 차가 서서히 출발한다.


회사 건물은 을씨년스럽게 낡고 오래된 건물이다. 그래도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것들은 부족함 없이 갖추고 있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코끝에 홀아비 냄새와 약간의 지하실 곰팡이 냄새가 나를 맞이한다. 아침에 느꼈던 그 싱그러운 향기는 이미 머릿속에서 잊혔다. 내 옷장 옆에서는 전번 근무자가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다. 난 살며시 옷장 문을 열고,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는 대기실에서 능숙하게 옷을 찾아 입는다. 출근은 늘 그러듯 몸에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모를 불편함 때문에 모든 것이 신경 쓰이게 만든다.


오전에 가장 많이 신고를 접수하는 사람들은 요양보호사나 부모를 부양하는 가족들이다. 대부분의 내용은 “엄마가 흔들어도 반응이 없어요!”, “쓰러져 있는데 무서워서 들어가 보지 못하겠어요.”,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어요. 전화벨은 안에서 울리고 있는데요.”이다. 보통 이런 출동은 현장에 나가보면 이미 사망한 지 오래여서 손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관절 마디마디가 사후강직으로 굳어버려 몸을 하늘로 돌려도 엎어진 모양 그대로 돌아간다. 마치 초승달의 양끝이 땅을 보고 있다가, 초승달의 굽은 등이 땅에 닿은 모양으로 말이다. 이런 출동은 119가 이송하지 않는다. 임종을 한 환자의 경우 응급실에서 수용하더라도 해줄 게 없을뿐더러, 다른 응급환자의 자리를 빼앗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타깝지만 임종한 곳에서 운구 차량을 통해 장례식장으로 바로 이동한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특별할 것 없는 그런 날이다. 늘 보던 병증의 환자와 늘 보던 보호자의 짜증 섞인 말투뿐이다. 밖에서 보면 “무슨 일이야?” 하며 놀란 얼굴로 기웃거리는 동네 사람들의 입장에선 신선하고 놀랍고 흥미로운 일이겠지만, 우리는 그저 무료한 일상 속의 고행이다.

이제 가을이어서 그런지, 눈이 부시게 강한 햇살에도 살갗에 닿는 공기는 청명하고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느낌이다. 방금 또 한 명의 고인을 마주하고, 슬픔에 잠겨 목이 메인 자식들에게 적당한 설명과 위로를 전한 후 구급차를 타고 소방서로 돌아간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차 안에 설치된 무전기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오늘 하루 오전 출동이 매우 많다고 연신 울어 댄다. 그 시끄러운 소리에 맞장구를 쳐야 할 것과 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 듣기 위해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만약 우리 구역의 관내 출동이 발생하면, 상황실에서 곧바로 우리를 다시 불러낼 것이 분명해서 이다. 그렇게 한두 번의 출동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어스름한 저녁이 찾아온다.


소방서에서 저녁을 먹고 잠시 아내와 통화를 한다.

아내의 지친 목소리와 연신 떠들어 대는 주아의 목소리가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온다.

아내는 오늘 주아의 귀여운 짓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는데,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아내의 목소리는 피곤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익숙하고 왁자지껄한 통화가 끝나고,

내 마음속에는 아이의 웃음기 어린 얼굴이 떠오르며 충만함이 가득 차오른다.

그 충만함을 곱씹으며 달달함을 느끼고 있는데, 출동 벨이 요란스레 울린다.

현악기의 클래식 소리가 섞인 출동 벨이다. 심정지 상황이다.

나는 차량으로 미끄러지듯 재빠르게 탑승한다.

그리고 업무용 휴대전화에 신고 내용을 확인한다.

신고 내용은, 아파트에서 사람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추락 환자는 다른 환자들에 비해 구급대원에게 엄청난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손이 많이 가기도 하고, 신체 손상 정도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미리 환자 처치 계획을 세운다.

경추 고정을 하고, 상황실에 병원 선정 요청 후 선정되면 즉시 이송.

선정이 지연되면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시행한다.

머릿속으로 또 다른 상황도 떠올린다.

예상 답안을 여러 개 가지고 있어야, 다양한 상황에 맞게 신속히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다른 구급차가 먼저 도착해 현장 활동을 수행 중이다.

나는 후발대로 도착해 환자 처치를 지원하기 위한 장비를 챙겨 뛰어간다.

선착 구급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살피던 중,

추락한 남성 근처 다섯 걸음 앞에, 길게 드리워진 흰 천에 무언가 싸인 채 땅 위로 삐져나와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천을 들추자,

그 속에는 돌이 막 지난 아기가 피를 흘리며 누워 있었다.

일순간 나는 굳어 버린 얼굴로 그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마음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리는 계속 경고음을 울려댄다.

몸과 머리의 부조화는 몸을 굳게 만들었다.

그리고 도착 전 생각했던 예상 답안지에서는 정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이와 나 사이의 거리를 좁히며, 이 어린 생명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이를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아주 짧지만 주위가 정막에 휩싸이고,

마음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가슴을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느껴서는 안 되기에,

그 떨림과 슬픔을 마음속 깊이 꾹꾹 눌러 담는다.

아이의 처치를 시행하면서, 머릿속에는 갑작스레 수많은 생각이 스쳐 간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떨어진 거지?

왜 하필 아기인 거야?”

그러나 그 의문에 답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아기는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아이의 양쪽 귀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가슴 쪽 흉곽 주위에는 동그란 형태의 경계가 지어진 상흔이 보였다.

아마도 가슴뼈가 흙바닥에 강하게 부딪힌 듯했다.

나는 아이의 반응을 확인하고, 맥박과 호흡이 없자 즉시 가슴 압박을 시행했다.

주변에 있던 동료가 재빠르게 제세동기를 가져와 아이의 가슴에 붙였다.

이후 제세동기의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분석 중… 제세동이 권고되지 않음. 가슴 압박을 시행하세요.”

나는 다시 가슴 압박을 시작했다.

2분간의 시간이 흐른 뒤, 제세동기가 다시 분석을 시작했다.

하지만, 마치 불러도 대답 없는 메아리처럼,

아이의 맥동은 소리를 내지 못했다.

연신 주위로 제세동기의 기계음만 사방에 퍼져 나갔다.

“분석 진행 중… 제세동 권고되지 않음. 가슴 압박을 시행하세요.”


그때였다.

한 명의 경찰관이 다급히 뛰어오며 우리에게 소리쳤다.

“소방관님! 그 남자 집 안에 칼에 찔린 여성이 한 명 더 쓰러져 있어요!”

아직 아이와 남자를 처치하기 위한 추가 구급대도 도착하지 못한 시각이다.

그런데 또 한 명이 쓰러져 있다니…

이제는 예상 답지가 아니라, 아예 잘못된 단원을 공부해 온 느낌이 들었다.

결국 할 수 있는 선택은,

실전에 의해 몸에 익힌 본능으로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시간도, 사람도 모두 부족했다.

‘정혁 반장, 우선 혼자 올라가서 확인하고 무전으로 상황 보고해!’

나는 지시를 내림과 동시에 무전기로 본부 상황실에 추가 구급차가 더 필요하다고 알린다. 그리고 다시 아기에게 집중한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좋은 선택지는 본부 상황실에서 신속하게 병원을 선정해 주는 것이다. 추락 환자는 현장 처치보다 병원으로 즉시 이송하는 것이 생존 확률이 더 높다.

현장에서 금 같은 시간이 흐른다. 나는 속으로 ‘제발 어디든 빨리…’ 하며 연신 되뇐다. 그러나 본부 상황실에서는 답이 없다. 답변이 올 때까지 나는 할 수 있는 처치를 계속 시도한다.

마침내 추가 구급대가 도착했다. 내가 하던 가슴 압박을 교대하고, 약물 투약을 위해 혈관 주사를 시도한다. 아이의 팔은 너무 작고 여리다. 게다가 심장이 멈춰 혈관이 수축해 눈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손끝의 감각을 최대한 살려 찾아본다. 하지만 가슴 압박이 시행 중이라 아이의 팔이 계속 흔들려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 이리저리 팔을 움직이던 중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혈관을 찾았다. 혈관이 도망가기 전에 나는 입으로 주사 바늘 뚜껑을 열고 손끝이 알려주는 위치를 향해 황급히 바늘을 찔렀다. 다행히 주사기 끝으로 피가 터져 나와 걸렸다. 단 한 번의 시도로 성공했다. 멈추었던 숨을 내쉬며 수액이 흐르도록 밸브를 열었다. 또르르, 약물이 아이의 혈관으로 흘러들어 간다.

다시 제세동기의 안내 음성이 울린다.

‘분석 중입니다. 모든 동작을 멈추세요. 제세동이 권고되지 않습니다. 가슴 압박 시행하세요.’

그때였다. 본부 상황실에서 무전이 들려온다.

‘00여섯, 여기 본부 상황실. 1세 여아, 00 병원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나는 다급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고르고 대답한다.

‘47, 알았다.’

그리고 대원들에게 마지막 가슴 압박 후 이송하자고 지시한다. 현장에 펼쳐둔 장비를 재빨리 정리한 뒤 아이와 함께 나갈 준비를 한다.

아파트 단지 주차장이 눈에 들어온다. 어둠이 내려앉은 단지 안, 구급차 6대와 경찰차 3대, 소방차 2대가 붉은 경광등을 켜고 사방을 비춘다. 주민들은 차들 사이에 삼삼오오 모여 놀람과 안타까움을 쏟아낸다. 몇몇은 상황을 통제 중인 경찰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한다. 다행히 어둠과 붉은 불빛이 처참한 상황을 가려주었다. 대낮이었다면 반응은 더 격렬했을 것이고, 왜 병원에 빨리 가지 않느냐며 소리치거나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이동한다. 들것은 아이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로 이미 흥건하다. 작은 몸에서 더 이상 흘러내릴 피가 남아 있을까 싶을 정도인데 피가 연신 흐르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놀라며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신음을 내뱉는다.

나는 이송 중에도 직감적으로 아이가 생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심폐소생술 경과 시간, 신체적 반응, 부상의 정도, 첫인상 평가… 오랜 경험으로 가망이 없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어린 아기이기에, 일말의 기적을 바라며 최선을 다한다.

가장 우려되는 부상은 귀에서의 출혈이다. 두개골 골절이 의심된다. 흐르는 피의 색도 선명한 붉은색이 아니라 보랏빛에 가까웠다. 이런 경우 심장이 맥동을 회복하더라도 뇌가 손상되어 뇌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구급차는 크게 사이렌을 울리며 출발한다. 운전 반장의 입에서는 거친 말들이 쏟아진다. 평소였다면 그렇게 흥분하지 않았을 텐데, 아이의 상황에 마음이 동하여 감정이 몰려오는 듯 보였다. 나 역시 조급했지만, 한 손으로는 아이의 얼굴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인공호흡기를 짜고 있어 자칫 흥분하여 강하게 힘을 주면 아기의 여린 폐와 살이 다칠 것 같아 감정을 억눌렀다. 그런데 아이의 얼굴을 잡고 있는 손끝으로 온기가 처음과 달리 점점 식어감이 느껴진다. 죽음이 소리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다.


차들은 다행히 막힌 길을 내주었다. 우리는 버스 전용차로를 번갈아 타고, 때로는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가 역주행을 하며 달린다. 운전 반장은 두려움의 기색이 없다. 오직 머릿속에는 구급차 뒤에 타고 있는 아기가 죽음과 거리를 벌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만 가득하다. 그 죽음 곁에 서 있는 나는 기도할 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정말 기적이 있기를 바라는 것뿐. 구급차는 요란한 소리로 죽음에게 소리친다. 따라오지 말라고. 병원이 점점 시야에 들어온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열셋, 열넷, 열다섯, 열여섯…’

가슴 압박 횟수를 입으로 센다. 드디어 병원에 도착했다.

아이를 구급차에서 내리기 전 얼굴을 한 번 바라본다. 빛바랜 고무 인형처럼 창백하다. 방긋 웃던 모습이 바로 얼마 전인데, 이제는 어두운 표정만이 내려앉아 있다. 나는 마지막 생기라도 돌기를 바라며 가슴을 계속 두드린다.

응급실 문이 열리고, 운전 반장이 들것을 밀며 아이를 치료실로 들여보낸다. 의료진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다. 응급실은 순식간에 분주해진다. 각자 맡은 일을 빠르게 수행하며 부산스러운 소리를 낸다. 한 의료진이 다가와 사고 원인, 사고 기전, 초기 환자 상태를 묻는다. 나는 대답하려 하지만 순간 말문이 막힌다. 나도 왜 그런지, 정말 알고 싶다. 내가 머뭇거리자 간호사가 재촉한다.

‘네? 뭐라고요? 빨리 알려주세요.’

‘저… 그게, 두 명이 추락했고, 14층 높이에서 떨어진 것 같습니다. 아기는 왜 떨어졌는지 저도 정확히는 알지 못합니다. 초기 심장 리듬은 무수축이었고, 양쪽 귀에서 출혈이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병원까지 5주기 가슴 압박을 시행했고, 사고 발생 시각은 21시 37분으로 추정됩니다. 병원 도착은 약 21시 52분이었습니다.’

간호사의 추가 질문이 이어졌다. 답변을 마치자 간호사는 만족한 듯 돌아서서 응급실 의료진에게 인계를 전한다. 나는 여기까지가 내 역할임을 상기하며 잠시 서서 아이가 깨어나길 바라며 지켜본다. 몸과 마음은 아직 흥분과 떨림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제 이 병원 의료진들이 무언가 해주기를 희망할 뿐이다.

소방서로 복귀하는 길, 밤은 점점 깊어지고 창밖에 스쳐 지나가는 불빛들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진다. 조용히 손바닥을 바라본다. 작은 손을 붙잡았던 감각, 식어가던 온기, 끝내 놓아 버린 그 체온이 여전히 손끝에 남아 있다.

소방서 사무실 안, 책상 앞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긴다.

눈을 감으면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방긋 웃었을 모습과 창백하게 굳어 있던 모습이 교차한다.

근무 시간이 아직 8시간이나 남았다는 것이 너무나 야속하다.

새벽에도 출동은 계속된다.

혹여나 아이의 안부를 물어보기 위해, 이송했던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기를 기대해 보지만

새벽의 환자들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주취자들뿐이다.

아이에 대한 걱정과 몸의 피곤함으로, 밤의 긴 근무시간을 뒤척이며 지새운다.

서서히 태양이 떠오르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세상 사람들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바쁜 일상을 시작하지만 나는 전날의 일들로 인해 일상 속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아침에 가장 일찍 일어난 대장님이 사무실에 설치된 TV를 켜고 뉴스를 시청한다.

나도 퇴근 준비를 위해 상신할 기록을 점검하며 책상 앞에 앉는다. 때마침 뉴스에서 어제의 사건에 대한 보도가 방송된다.

어제저녁 9시경 ○○시 ○○구의 한 14층 아파트에서 일가족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40대 남성 A 씨는 이날 새벽 자택에서 아내 B 씨(30대)를 흉기로 살해한 뒤, 한 살배기 딸과 함께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아내 B 씨는 집 안에서 이미 숨진 상태였고, A 씨와 아기는 아파트 단지 내 화단에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모두 사망했습니다.

경찰은 현장에서 A 씨의 유서로 추정되는 메모를 확보했으며, 경제적 어려움과 가정 내 갈등이 사건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범행 동기와 경위를 조사 중이며, 주변인 진술과 CCTV 분석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아파트 주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으며, 경찰은 유가족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 지원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예상은 했으나 아기가 끝내 별이 되었다는 사실에 깊은 슬픔이 몰려왔다.

혹시나 하는 희망을 걸었지만, 야속하게도 하늘은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데려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순수한 아이가, 그곳에서는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빌어본다.

숙연한 마음을 안고 대기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다.

어둑한 내부의 공기가 어제보다 더 무겁게 느껴진다.

소방서 직원들에게 슬픔을 내색하지 않고 인사를 건네며 쓰게 웃는다.

그리고 퇴근하기 위해 전날 타고 온 차에 오른다.

차에 시동을 거니, 마치 엔진 소리가 장송곡처럼 차분히 나에게 울려온다.

차가 서서히 출발하고, 길었던 근무가 끝났다.

하지만 집으로 가는 내내 머릿속에는 자꾸만 생각이 맴돈다.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실망,

아이의 짧은 생에 대한 안타까움,

아이 엄마의 억울한 마음,

아이가 느꼈을 추락의 고통… 점점 식어가던 아이의 온기….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근심과 애석함을 털어내려 한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간다.

멀리서부터 쿵쿵대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더니 이내 “아빠!” 하며 환하게 웃는 딸이 내 품속으로 와락 안긴다.

온몸으로 딸의 온기를 느껴본다.

이 따스함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지지만, 어쩐지 모르게 슬프다.

그리고 나는 다짐한다.

신이 나에게 준 이 따스함을 평생 동안 잘 지키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