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일상 그리고 건강검진

by 브론치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 낙엽이 흩날리는 날 문득 깨달은 내 마음속 고백은 결국 모든 것이 사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과 그 속에 담긴 감정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사랑이었고, 그저 또 사랑이었습니다. 때로는 지치고 고단한 날들에 마음이 꺾이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사랑이었습니다.

시간은 늘 야속하게만 흘러갑니다.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을 톡톡 두드리는 아이의 미소는 내 심장을 속절없이 녹여버리곤 합니다.

이른 아침, 남편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을 건넵니다. 오늘도 병원에 간다는 내 말 때문입니다. 그는 나의 건강 염려증이 지나치다며 매번 핀잔을 주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고집불통 할머니처럼 내 의견이 맞다며 당당히 주장을 펼치곤 했습니다. 늘 결론 없는 논쟁으로 마무리되곤 했지만, 어김없이 내 발걸음은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발가락에 생긴 점 때문에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피부과 외래를 예약했습니다. 의사는 99%의 확률로 문제가 없겠지만, 발가락에 생긴 점은 추후 피부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원한다면 소작술로 제거할 수 있고 조직검사도 병행할 수 있다는 말에, 나는 망설임 없이 예약을 잡았습니다. 의사의 소견을 듣고 나니 비로소 짓누르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나는 그렇게 홀가분해진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병원에 가느라 미뤄두었던 집안일을 시작했습니다. 바닥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아이 옷을 주섬주섬 챙겨 빨래통에 넣고, 아이가 사용한 그릇들도 설거지하여 정돈합니다. 어젯밤 그림을 그리겠다며 책상 가득 펼쳐두었던 스케치북과 물감도 제자리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쉬는 날의 모든 일상은 아이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머릿속은 온통 오늘 하루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지, 무엇을 먹일지, 또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여줄지 같은 생각들로 가득합니다. 이런 소소한 일상의 고민들이 때로는 피곤하고 지치게도 하지만, 아이의 행복한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그 피로함은 눈 녹듯 사라집니다.

어느덧 아이를 하원시킬 시간입니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아이를 만나러 나섰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나서니 나무들이 여름옷을 벗고 어느새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피부에 닿는 약간 서늘한 공기의 감촉이 참 좋습니다. 이 상쾌함이 반가운 이유는, 이제 아이의 손을 잡고 동네를 한참 거닐어도 뜨거운 여름 열기에 지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아이와 함께 집 앞 시냇가 산책로를 걸어볼 생각입니다.

멀리서 나를 발견한 아이가 한걸음에 달려와 안깁니다.

“엄마!”

“어이쿠, 우리 딸 잘 놀았어?”

아이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품에 꽉 안았습니다. 아이를 안을 때 느껴지는 이 감촉은 매번 내 가슴을 기적이라는 이름의 감정으로 충만하게 채워줍니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내 품에 처음 안기던 날이 떠오릅니다. 핑크빛이 돌던 그 조그만 입술, 내 가슴에 기대어 나긋하게 숨을 내뱉던 아이의 모습이 어제 일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품에 안긴 아이를 한참이나 눈에 담고 또 담아도 여전히 믿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 작고 소중한 생명을 내가 열 달 동안 품고 있었다니. 그 만남의 순간은 언제나 강렬하고 따뜻한 무언가가 가슴속에 몽글몽글 차오르게 합니다. 그렇게 아이를 한참 동안 안아준 뒤, 고운 손을 꼭 잡고 어린이집 문을 나섰습니다.

내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주아야, 오늘 선생님이 주말에 뭐 했는지 안 물어보셨어?”

주아는 바닥에 떨어진 낙엽이 신기한 듯 발로 톡톡 차며 대답합니다.

“아니, 나도 엄마 아빠랑 아웃렛 가서 키즈카페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안 물어보셨어.”

그 서툰 발음으로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요목조목 말하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나는 그만 크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하하하, 그랬구나. 주아야, 그럼 오늘 엄마랑 저기 밑에 시냇가 가서 오리랑 왜가리 보러 갈까?”

“아니, 난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 아이스크림 사줘.”

“에구, 단 거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아. 엄마랑 같이 뛰어보는 건 어때?”

“그래, 좋아!”

주아는 내 손을 잡고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막 네 살이 된 아이지만, 그 짧은 다리로 열심히 내딛는 뒷모습은 달리기 선수 못지않게 씩씩했습니다. 나도 아이의 보폭에 맞춰 나란히 달렸습니다. 우리는 마치 연인처럼 시냇가 주변을 함께 걷고 뛰며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내 남은 삶 동안 이토록 설레는 날을 선물해 줄 사람은 오직 이 아이뿐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날씨마저도 우리의 행복한 시간에 발맞추어 기분 좋은 바람을 살랑살랑 보내주었습니다.

‘삐- 삐- 삐-’

정막을 깨는 소리. 간호사 스테이션에 앉아 있는데 환자 감시 장비에서 요란한 알람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5호실 병동 환자의 산소포화도 수치가 떨어졌다는 신호였습니다. 나는 서둘러 몸을 일으켜 해당 병실로 향했습니다.

폐암 말기인 김연희 환자였습니다. 그녀는 코에 산소호흡기를 단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가을아... 어린이집 잘 다녀왔어? 오늘 아빠랑 밥 잘 먹고... 잠도 잘 자야 해. 알겠지?”

“... 흡, 하... 오늘도 엄마가 집에 못 가서 미안해. 잘할 수 있지?”

화면 너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알겠어 엄마! 나 오늘 어린이집에서 티니핑 색칠 놀이 했어. 이거 봐, 잘했지?”

“어이구, 우리 딸... 이제 색칠 정말 잘하네.... 흡, 하... 하아...”

“에휴, 연희야 이제 그만 끊자. 가을이 잘 있으니까 걱정 마. 너 지금 말하느라 산소 수치 떨어져서 간호사 선생님까지 오셨잖아.”

옆을 지키던 보호자가 안타까운 듯 만류합니다. 환자는 숨을 고르며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죄송해요, 선생님…흐흡 하…우리 딸이 엄마랑 통화하고 싶다고 떼를 써서…흐흡 하 …”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충분히 통화 나누시고, 혹시 더 불편한 곳 생기시면 바로 벨 눌러주세요.”

환자의 침상 위 모니터에서 요란하게 울리던 알람 확인 버튼을 누르고 조용히 돌아섭니다. 그녀가 입원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갑니다. 최근 앓게 된 감기가 항암 치료로 떨어진 면역력 탓에 쉬이 낫지 않았고, 결국 폐렴으로 이어져 입원하게 된 것입니다.

그녀의 병세는 지금도 쉼 없이 나빠지고 있습니다. 젊은 나이 탓인지 진행 속도가 무척 빨랐고, 여러 차례 시도했던 표적 항암제들도 안타깝게 그녀에겐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방사선 치료와 새로 바꾼 약제가 속도를 조금 늦춰주고는 있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녀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앙상하게 말라 살점 하나 남지 않은 몸,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털모자를 눌러쓴 채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그녀. 이제는 손 하나를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겨워 보일 정도로 기운이 다해 보였습니다.

병실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뒤편에서 김연희 환자 어머니의 깊은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픈 사람이 통화해서 뭐 해... 얼른 나아서 집에 가서 직접 만나야지. 새끼 얼굴 자꾸 보면 눈물만 더 나지 않겠니. 말 많이 하면 숨만 더 차고... 응? 연희야, 제발 좀 쉬어라.”

“...흡, 하... 흡, 하... 알겠어, 엄마. 이제 좀... 누워야겠다.”

그녀 역시 자신의 마지막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하는 것일까요. 부쩍 아이와의 통화가 잦아졌습니다. 암 병동에서의 근무는 이처럼 스러져가는 생명들을 매 순간 마주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곳에서 건강을 되찾아 당당히 걸어 나가는 희망적인 뒷모습을 보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주 드문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모두에게는 살아야 할 저마다의 절실한 이유가 있고,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애를 씁니다. 하지만 그 뜨거운 의지와 열망이 곧 허상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은 야속하게도 금방 찾아오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유들은 자꾸만 그들을 고단한 현실 속 어딘가로 이끕니다. 어딘가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갈망인지, 누군가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싶은 마음인지, 아니면 홀로 남겨질 존재들에 대한 아픈 회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눈물겨운 기적인지가 가슴 사무치게 다가옵니다.

근무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작은 꼬마 숙녀를 만나기 위해 어린이집으로 향했습니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거리 한복판에 놓인 헬스장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는 광고 속 근육질 사진이 신기한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습니다.

“우와, 엄마! 저런 몸도 있어? 처음 봐. 어떻게 하면 저렇게 돼?”

순수한 호기심이 담긴 질문에 그만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하하, 그렇지? 주아가 살면서 저런 몸은 아직 본 적이 없겠구나. 저건 운동을 아주 많이 하면 가질 수 있는 몸이야.”

“아, 그럼 아빠는 운동을 안 하는 거구나!”

아이의 뜻밖의 대답에 이번에는 함박웃음이 터졌습니다.

“음, 하하하하! 맞네. 아빠는 운동을 열심히 안 하지.”

아파트 공동현관에 다다르자 아이가 갑자기 문 앞으로 다다다 뛰어가더니, 비밀번호를 누르겠다며 까치발을 듭니다.

“엄마, 내가 할게! 내가!”

숫자를 하나씩 불러주자, 이제 제법 익숙해졌는지 주아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정확하게 번호를 눌렀습니다. 이내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습니다. 그 모습이 기특해 칭찬을 듬뿍 쏟아냈습니다.

“우와, 이제 진짜 숫자 다 외웠네? 우리 딸 천재 아니야?”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는 신발을 벗어던지고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익숙한 몸짓으로 발판을 세면대 앞으로 옮겨 밟고 올라섭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비누칠하며 손을 씻는 모습에 다시 한번 뿌듯함이 밀려와 아이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이야, 이제 혼자서도 척척 잘하네!”

한참을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 함께 침대에 누웠습니다. 새벽 출근 탓에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눕자마자 의식이 아득해졌습니다. 옆에 누운 아이가 이런저런 말을 건넸지만, 나는 반쯤 잠에 취해 엉뚱한 대답을 늘어놓으며 잠꼬대를 해댔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요상한 말이 이상했는지 가만히 나를 쳐다보더니 말합니다.

“엄마, 우리 마주 보고 자자.”

그 목소리에 몸을 돌려 반쯤 감긴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이는 한 번 더 속삭였습니다.

“이제 손잡자.”

아이의 조막만 한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너무도 따스해, 버티고 있던 눈꺼풀이 결국 부드럽게 감겼습니다. 아이의 숨소리도 이내 차분해지며 꿈나라로 넘어갔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그렇게 오늘의 하루를 매듭지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병실을 돌았습니다. 김연희 환자는 이른 아침임에도 눈을 뜬 채 비스듬히 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어제보다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져, 이제는 고용량 산소마스크에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모니터에 표시된 환자의 수치는 호흡수 분당 40회/분, 맥박은 120회/분. 쉬지 않고 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것과 맞먹는 긴박한 수치였습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멈추거나 쉴 수 있겠지만, 그녀의 병마는 쉼 없이 질주하도록 그녀를 몰아세우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다면 곧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 자명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환자는 추가 치료에 대해 여전히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환자분, 혈액가스 분석 결과가 너무 좋지 않아요. 당장 기관 삽관을 고려해야 할 만큼 위급한 상황입니다. 너무 힘드시면 더 늦기 전에 추가 치료를 진행하시는 게 어떨까요?”

“...흡, 하... 흡, 하... 아직, 아이에게 인사를 못 했어요. 오늘까지만... 오늘까지만 버텨볼게요.”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 마디 한 마디를 간신히 뱉어냈습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곁을 지키던 보호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어머님, 환자분 설득 좀 해주세요. 이대로 상태가 더 악화되면 나중에는 정말 손을 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 이제는 정말 모르겠어요. 치료를 계속하는 게 맞는 건지조차...”

환자의 어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자식이 병마에 고통받는 모습을 차마 더 지켜보지 못하겠다는 마음과, 그래도 살아서 아이 곁에 머물길 바라는 간절함이 교차하여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흡, 하... 오전에 아이하고 인사 나누고... 남편이랑 상의해서 얼른 말씀드릴게요.”

그녀가 조금이라도 더 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일어 말을 보태고 싶었지만, 완고한 그녀의 표정을 보니 더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다른 병실로 향해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정규 투약 시간이 되었습니다. 환자별로 처방된 약물들을 준비해 투약을 시작했고, 어느덧 김연희 환자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병실을 찾았을 때, 그녀는 여전히 힘겹게 영상통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에는 산소마스크가 벗겨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마스크를 쓴 모습에 아이가 놀랄까 봐, 맨얼굴로 통화를 하려 무리하게 벗어던진 모양이었습니다.

“가을아... 오늘 어린이집 잘 다녀와, 알겠지? ...흡, 하...”

화면 속에서 아이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가을이 이제 엄마한테 인사해야지?”

“응! 엄마 안녕, 다녀올게요!”

“그래... ...흡, 하... 이따가 또 만나자.”

통화가 끝난 후, 딸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또 한 명의 엄마가 눈시울을 붉히며 서둘러 그녀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워주었습니다.

나 역시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애써 담담히 환자 확인을 시작했습니다.

“항생제 들어갈 거예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김연희요... 흡, 하... 흡, 하...”

투약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환자 팔찌의 바코드를 찍고, 준비해 온 약병의 바코드도 차례로 확인했습니다. 투약을 진행하며 나는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제... 기관 삽관을 진행해도 될까요?”

“아니요... 흡, 하... 그냥 이대로 버텨볼게요. 흡 하…그걸 한다고 해서… 흡, 하….좋아질 것 같지 않아요. 흡…하…..그저 아이와... 한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어요.”

자신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듯한 목소리였습니다.

“아무래도 교수님께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면담하신 뒤에, 최종적으로 연명의료 중단 동의서에 서명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보호자는 아무 대답 없이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퇴근 전, 다음 근무자에게 인계를 주며 김연희 환자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교수님 면담 후 추가 처치는 진행하지 않기로 했으며, 연명의료 중단 동의서에 서명을 마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인계를 받던 간호사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별다른 동요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근무를 마치고, 나는 소화기내과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 1층 대기실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발견된 선종에 대한 소견을 듣기 위해 예약해 둔 진료였습니다.

“조직검사 결과, 악성은 아니고 단순 종양이라 걱정하실 건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장 청결 상태가 완벽하지 않아서 다른 곳에 용종이나 종양이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데, 그것도 다음 검진 때 확인하셔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의사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듣고 싶었지만, 어딘가 미덥지 못한 구석이 있다는 말에 마음 한편이 찜찜해졌습니다. 결국 나는 다시 되물었습니다.

“혹시... 대장 내시경을 한 번 더 해볼 수 있을까요?”

“굳이 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특별히 걱정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그냥 불안해서요. 장 준비가 덜 된 탓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암이 있을까 봐요.”

“다시 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비용도 들고 장 정결제 드시는 게 힘드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불안함에 계속 시달리는 것보다 확실히 확인해 두는 게 마음이 더 편할 것 같아요.”

검사 날짜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은 한창 주아의 저녁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남편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나 선종 조직검사 결과는 괜찮대. 그런데 장 정결 상태가 안 좋았다고 해서, 한 번 더 검사하기로 했어.”

“응? 아니, 의사가 괜찮다고 했는데 그걸 왜 또 해? 전문가가 문제없다는데 그냥 다음에 하지, 굳이 또 하겠다고?”

“여보, 당신이 몰라서 그래. 우리 병원에 오는 사람들도 다들 꾸준히 검진받고 관리하던 사람들이야.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암 말기 진단을 받고 온다니까. 검사해도 발견 못 하는 경우가 정말 많단 말이야.”

“아니, 내 말은 의사가 여보보다 더 잘 알지 않겠냐는 거지. 괜히 전문가가 있는 게 아니잖아. 돈도 많이 들고 당신 몸도 축나는데, 이번엔 그냥 넘어가자.”

“아니라고! 그러다 정말 내가 덜컥 암이라도 걸려서 주아랑 당신 두고 혼자 가버리면, 그때는 누구를 원망할 건데? 그냥 확실히 해두고 마음 편히 지낼래. 나 이러면 계속 불안해서 잠도 못 잘 것 같아.”

결국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평행선만 달린 채 대화를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 결심대로 검사를 진행할 생각이었습니다. 남편도 그간의 경험을 통해 내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그저 몇 마디 핀잔만 덧붙일 뿐 더는 입을 떼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는 살고 싶어도 떠나야 하는 이 복도 끝에서, 나는 단 1%의 불안도 허용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었습니다. 나의 이 이기적인 생의 의지가 그녀 앞에선 미안함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아이를 위해 기꺼이 이기적인 엄마가 되기로 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디저트 시간을 가졌습니다. 퇴근길에 겨우 구한 두바이 쫀득 쿠키를 남편에게 내밀며 농담을 던졌습니다.

“이거 안 먹어본 남자는 여자친구도 없는 사람이라던데, 이제 당신은 먹어봤으니 확실히 임자 있는 사람이네?”

“아, 이게 그 유명하다는 그거야?”

옆에서 가만히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주아가 식탁 위 쿠키를 보고는 그게 뭐냐고 묻습니다. 아이에게 너무 단 음식을 먹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슬쩍 얼버무렸습니다.

“아, 이거? 이건 ‘흙’이야. 먹으면 몸이 튼튼해지는 건데, 맛이 없어서 어린애들은 못 먹어.”

주아는 내 말을 아주 진지하고 해맑은 표정으로 귀담아들었습니다. 그러더니 대답했습니다.

“에구, 흙을 왜 먹어! 엄마, 지지다 지지!”

이제 겨우 네 살인 아이가 뜬금없이 엄마를 나무라는 투로 말하니,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남편과 나는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했습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대화가 이어지고, 우리는 서로를 보듬으며 매일의 시간을 함께 채워갔습니다. 나는 이 순간들이 부디 영원하기를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또한, 이 기적 같은 일상을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기에, 혹시라도 다가올지 모를 불행의 그림자를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밀어내려 애썼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서로에게 몽글몽글한 행복을 선물하며 각자의 삶을 풍요롭게 채웠습니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은 시간, 5호실 병실에서 멈추지 않는 알람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이제는 고유량 산소를 최대한으로 높여도 산소 수치는 좀처럼 차오르지 않습니다. 그녀는 눈을 뜨고는 있었지만, 더 이상 입 밖으로 그 어떤 말도 내뱉을 힘이 없었습니다. 적막한 병실 안으로, 전화기 너머 아이의 목소리만이 천진난만하게 울려 퍼집니다.

“엄마, 얼굴에 한 거 뭐야? 엄마 이상해. 엄마 괴물 같아.”

티 없이 맑은 호기심이 담긴 아이의 말에 그녀는 대답 대신 감은 눈으로 연신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손을 들어 무언가 답을 하려 애써보지만, 가녀린 팔은 침상에서 한 뼘조차 떨어지지 못합니다. 겨우 눈을 떠 아이의 목소리에 미소를 지어보려 해도, 가쁜 숨은 그 작은 노력조차 허락지 않아 이내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오고 맙니다. 곁을 지키던 또 다른 어미가 아이에게 대신 대답을 전합니다.

“가을아, 엄마한테 얼른 인사해. 다음에 또 만나자고……. 엄마가 가을이 많이 사랑한대.”

“아빠, 할머니가 울어. 왜 울지?”

아이의 물음에 전화기 너머 아빠는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나는 그 광경에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요란하게 울리는 모니터의 알람을 확인하고 음소거 버튼을 눌렀습니다. 간호사 스테이션으로 돌아온 뒤에도 한참 동안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당직의 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5호실 김연희 환자분, 임종 직전인 것 같습니다. 처치실로 옮겨도 될까요?”

“아, 네. 그렇게 해주세요. 곧 내려가겠습니다.”

다시 방문한 5호실, 그녀의 얼굴에는 이제 아무런 표정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살기 위한 의지가 담긴 호흡이 아니라 몸의 반사 반응에 의한 마지막 호흡이었습니다. 산소포화도는 이미 측정 불가 상태였고, 혈압이 너무 낮아 감지기조차 수치를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나는 김연희 환자의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습니다.

“어머님…… 이제 편안하게 보내드릴 수 있도록 조용한 곳으로 모실게요.”

“……네…… 흐윽…… 연희야, 고생했다. 엄마가 끝까지 옆에 있을 거니까 걱정 말고 가거라. 알겠지…….”

그녀를 처치실로 옮겼습니다. 모니터에는 임종 호흡 양상을 알리는 숫자들이 깜박입니다. 그녀의 소풍이 끝나가고 있음을, 차가운 숫자들이 냉정하게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그래, 박 서방. 이제 곧인 것 같네. 어서 준비해서 오게나.”

마지막 이별을 기다리는 어미에게, 나는 작은 위로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마디를 보탰습니다.

“임종 직전까지도 청력은 끝까지 살아있다고 해요. 그러니 하고 싶은 말씀, 후회 없도록 꼭 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어머니는 딸의 창백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귀에 대고 나직이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연희야, 엄마가 많이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했다……. 가을이는 걱정 말고 편히 가거라. 내가 잘 보살피마. 고생했다, 내 딸…….”

호흡수가 0을 가리키고, 심전도 파형도 의미 없는 흔들림만을 그리다 멈추었습니다. 때마침 내려온 당직의가 환자의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사망 선고하겠습니다. 김연희 님, 21시 17분 임종하셨습니다.”

“아이고, 우리 딸… 어떡해, 하아… 연희야, 연희야!”

의사의 마지막 선고가 떨어지자 어머니는 결국 무너져 내렸습니다. 치료실 바닥에 주저앉아 가슴을 쥐어뜯으며 토해내는 통곡이 차가운 공기를 갈랐습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어미의 마른 어깨를 짚으며 나직이 말했습니다.

“어머님, 이제 따님 깨끗한 환자복으로 갈아입혀 드릴게요. 몸에 있는 관이랑 주사도 다 정리해서, 다시 예쁜 모습으로 만나실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잠시만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내 부축을 받으며 어머니는 힘겨운 발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제 동료 간호사와 둘이 남아, 온기가 가셔가는 그녀의 마지막 안녕을 준비합니다. 팔에 꽂힌 주삿바늘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반창고를 떼고 바늘을 뽑기 위해 그녀의 팔을 잡았습니다. 내 작은 손 하나에도 다 잡힐 만큼 그녀의 팔은 야위어 있었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생의 치열한 사투를 증명하던 물건들을 그녀의 몸에서 떼어냅니다.

최대한 편안해 보일 수 있도록 몸을 정돈하고, 흐트러진 털모자를 매만져주었습니다. 그녀가 마지막 순간까지 걱정했던 그 작은 소녀가 엄마를 보고 놀라지 않게, 간호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를 담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같은 어미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나도 모르게 뜨거운 것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참아보려 입술을 깨물었지만, 한 번 터진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함께 준비하던 동료가 조용히 다가와 내 등을 토닥여주었습니다.

“하… 죄송해요. 얼른 가족분들 보여드려야 하는데….”

“아니야. 담당 환자였잖아.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우리 정성껏 잘 보내드리자.”

눈물을 닦고 치료실 문을 열었습니다. 밖에는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가족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내 눈에 밟히는 작은 소녀가 보였습니다. 아이는 동그란 눈을 깜빡이며,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가늠하려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시선이 아빠와 할머니, 그리고 나를 향해 머물렀습니다.

“이제 들어가셔도 됩니다.”

아이는 아빠의 손을 꼭 잡고 치료실 안으로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내 어른들의 통곡 소리 사이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문밖까지 흘러나왔습니다.

업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 안은 막차 시간이라 한산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차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한강 너머 건물들이 내뿜는 색색의 불빛들. 평소라면 아름다웠을 그 빛들이 오늘은 유난히 아련하고 차갑게만 느껴졌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모든 불이 꺼진 어스름한 어둠 속에 가전제품의 작은 불빛들만이 점점이 박혀 있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방 문을 열었습니다. 침대 위로 두 사람의 나긋한 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숨소리를 이정표 삼아 그들 곁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팔을 뻗어 두 사람을 내 품에 가만히 끌어안았습니다.

내 가슴과 팔을 타고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 슬픔으로 딱딱하게 굳어있던 마음이 그 온기에 사르르 녹아내리며 위로를 받습니다. 그들은 꿈속에서도 고른 숨을 내뱉으며 내게 말을 건네는 듯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온기가, 내 귓가에 조용히 들려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