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정성원리

by 브론치

사이렌 소리가 정적을 깨우며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구급차는 소방서 차고지를 서둘러 빠져나갔다. 신고 내용은 '50대 친형의 사망 의심'. 출동 중 본부 상황실로부터 긴박한 무전이 날아들었다. 상황실에서 신고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안내하려 했으나, 보호자는 "잘 모르겠다"는 짧은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러나 수신음만 공허하게 되풀이될 뿐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 평소라면 현장에 도착하기 전 통화를 통해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련만, 지금은 안갯속을 걷는 듯 막막하기만 했다.

'환자의 상태는 어떠할까, 보호자는 왜 전화를 피하는 걸까.' 머릿속에는 해소되지 않는 물음표들만 어지럽게 뒤엉켰다.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르는 사이, 구급차는 어느덧 환자가 기다리고 있을 그 불확실한 현장 앞에 멈춰 섰다.

낡고 허름한 단독주택과 빌라들이 비좁게 엉켜있는 동네, 구급차는 끝내 집 앞까지 닿지 못하고 골목 어귀에 멈춰 섰다. 서둘러 장비를 챙겨 든 채 가파른 숨을 몰아쉬며 달렸다. 마침내 도착한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를 맞이한 것은 환영의 인사가 아닌, 겹겹이 쌓인 케케묵은 담배 연기와 코끝을 찌르는 곰팡이 냄새였다.

그 지독한 냄새의 장벽을 뚫고 환자에게 한걸음에 다가가려 했지만, 발밑이 허락지 않았다. 거실 바닥은 이미 각종 쓰레기들로 점령당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와 흩어진 담배꽁초, 뒹구는 술병들 사이로 정체 모를 노란 액체가 가득 찬 생수병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아마도 술에 취해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잊은 채, 곁에 있던 빈 병에 생리현상을 해결해 온 흔적이리라.

악취의 숲과 쓰레기 더미를 헤치며 나아가는 그 짧은 거리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오염된 삶의 파편들을 밟으며 나는 겨우 환자의 곁에 도달했다.

상체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환자는 검게 변해버린 피부를 드러내며 누워 있었다. 앙상하게 드러난 뼈 위로 가죽만 남은 얼굴은 마치 해골처럼 움푹 패어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환자의 멎어버린 호흡과 맥박, 침잠된 의식을 살폈고, 그사이 동료 대원은 익숙한 손길로 환자의 가슴팍에 제세동 패치를 붙여 나갔다.

첫인상만으로도 예감할 수 있었다. 이미 삶의 경계를 넘어선 심정지 상태라는 것을. 제세동기의 분석 결과와 내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서늘한 무맥박의 감촉은 일치하는 정답을 내놓고 있었다.

"심정지입니다. 가슴 압박 할게요!"

나는 운전 반장에게 다급히 압박을 요청하며 환자의 머리맡에서 호흡 보조를 시작했다. 기계적인 압박 소리와 거친 숨소리가 방 안을 채우는 사이, 나는 곁에 서 있던 보호자에게 환자의 마지막 흔적들을 묻기 시작했다.

“보호자분, 처음에 어떻게 발견하셨나요?”

다급한 내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예상보다 훨씬 건조하고 서늘했다.

“아, 난 잘 몰라요. 배달 일 나가려고 준비하다 보니까 형이 그냥 계속 누워만 있길래… 이상해서 119 불렀어요. 자세한 건 이따 형 딸 오면 물어보세요. 나 지금 배달 가야 하는데, 계속 여기 붙어 있어야 합니까?”

환자의 가슴을 누르는 긴박한 소리 너머로 무심한 말들이 흩어졌다. 한 사람의 생사가 촌각을 다투는 이 상황에 그에게는 당장의 생계인 배달 업무가 형의 죽음보다 더 중요한 듯 보였다. 혈육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순간조차 ‘모르겠다’는 무관심과 ‘가야 한다’는 조급함에 밀려나고 있었다.

순간,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다. 더는 어떤 말도 잇지 못한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혈육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서늘한 무관심. 그 남보다 못한 태도를 마주하자, 오히려 심정지로 누워 있는 이 사내의 지난 생애가 어떠했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단 하나뿐인 동생마저 이토록 차갑게 등을 돌린 것일까.'

지독한 악취가 진동하는 집안 꼴과 사방에 널브러진 술병들이 그의 평소 삶과 가족 관계를 짐작하게 했다. 고립된 채 술로 지새운 날들, 아마도 그 시간들이 쌓여 가족과의 끈마저 갉아먹었으리라. 현장은 일분일초가 다급했지만, 눈앞의 보호자에게는 더 이상 삶의 흔적을 물어볼 가치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체념 섞인 마음으로 그를 향해 실무적인 다른 질문을 던졌다.

“혹시 아버님 상태에 대해 잘 아는 다른 가족은 없습니까?”

거듭되는 질문에 보호자는 참았던 짜증을 터뜨리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아니, 딸이 같이 산다니까요! 지금 오고 있다고요!”

그의 목소리가 좁은 집안의 악취 사이로 날카롭게 울렸다. 때마침 거칠게 문이 열리며 숨을 헐떡이는 딸과 함께 지원 요청을 했던 추가 구급대가 도착했다. 아수라장 같던 방 안으로 새로운 인력들이 들이닥치자 현장은 더욱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새로 도착한 대원들에게 환자의 상태와 지금까지의 처치 내용을 간략히 인계했다. 손은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시선은 새로 들어온 딸에게 향했다. 이 지독한 고독과 무관심의 안개를 걷어내고,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답답한 의문들을 풀어줄 유일한 실마리가 그녀의 입술 끝에 달려 있었다.

“따님, 아버님이 평소 앓고 계셨던 지병이 있었나요? 아니면 술을 과하게 드셨다거나요.”

내 질문에 딸은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체념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아빠가 혈압이랑 당뇨가 있었는데, 약은 입에도 안 대고 매일 술만 마셨어요. 병원에 가자고 애원해도 늘 취해 계시니까… 저도 이젠 포기하고 있었거든요. 저기, 혹시 저희 아빠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건가요?”

딸의 눈동자에 맺힌 불안과 피로를 마주하며, 나는 차갑지만 명확한 진실을 전해야 했다.

“지금 심장이 멈춘 응급상황이라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리긴 어렵습니다. 짧게 말씀드리면, 이미 숨이 멎은 상태고 저희는 억지로라도 다시 심장이 뛰게 하려고 시도하는 중입니다.”

“네? 뭐라고요? 하… 진짜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럼 이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딸의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탄식은 슬픔보다는 ‘올 것이 왔다’는 허망함에 가까워 보였다. 나는 흔들리는 그녀의 시선을 붙들며 단호하게 지시를 내렸다.

“여기서 응급처치를 마치는 대로 병원이 결정되면 즉시 이송할 겁니다. 아버님 신분증부터 얼른 찾으시고, 병원에 동행할 준비를 서둘러 주세요!”

병원의 서늘한 공기를 뒤로하고 환자를 인계한 뒤 응급실 문을 나선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구급차에 올라타는 순간, 방금 마주했던 환자와 보호자의 얼굴이 잔상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들이 서로에게 남겼을 깊고 날카로운 상처들이 비릿한 악취와 함께 전해지는 듯했다.

환자는 환자대로 곪아 터진 마음을 달래려 매일 술을 들이켰을 것이고, 술에 절어 인사불성이 된 그를 보며 가족들은 무관심이라는 단단한 껍질 속으로 자신들을 숨겼을 것이다. 분명 그들도 끊어진 관계의 끈을 다시 이어보려 무던히 애썼을 터다. 하지만 거대한 늪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알코올의 굴레에서 누군가를 건져 올리는 일은, 오롯이 가족의 인내와 노력만으로는 감당하기에 너무도 벅찬 형벌이었으리라.

그래서일까, 이 비극적인 마침표가 어쩌면 남겨진 이들과 떠난 이 모두에게 뒤늦게 찾아온 평온일지도 모른다는 서글픈 생각이 스쳤다.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채 그저 숨만 쉬며 하루를 견뎌내는 삶은, 그 자체로 매 순간이 형벌이었을 테니까. 어쩌면 그 지독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오직 죽음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복귀하는 구급차의 엔진 소리가 낮게 깔리고, 창밖으로 무심히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속에 잠겼다.

적막을 깨는 출동 벨이 다시금 소방서의 공기를 가른다. 이번 행선지는 요양원이다. 80대 어르신의 호흡이 거칠다는 다급한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하자, 침상에 누워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할머니가 보였다. 환자의 평소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곁에 있던 요양보호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르신 평소 의식 수준은 어떠세요? 대화가 가능하시거나 스스로 식사는 하셨나요?”

“아니요, 치매 때문에 말씀은 전혀 못 하세요. 식사도 저희가 떠먹여 드려야 겨우 받아먹는 정도고요.”

“거동은 어느 정도 가능하셨습니까?”

“거의 누워서만 생활하시죠. 다리에 힘이 없어서 전혀 일어서지 못하세요.”

환자의 몸은 열로 뜨거웠고, 산소포화도는 위태롭게 떨어져 있었다. 폐렴 의심. 병원 이송이 결정되었다. 요양원 출동을 나갈 때마다 나는 늘 같은 질문 앞에 발길이 멈춰 선다. '과연 침대 위라는 좁은 세계에 갇힌 이 삶에 어떤 의미가 남아 있는 것일까.'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매트리스 위에서 생의 마지막 불꽃이 꺼질 때까지 누워만 지내는 삶. 고통스러운 육신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차라리 죽음을 통해 다음 생의 윤회를 기약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더 큰 자비이자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매일같이 처방되는 수면제에 취해 의식의 혼탁함 속을 헤매고, 소변조차 스스로 다스리지 못해 복부에 박힌 관에 생리현상을 맡긴다. 움직임이 거세된 몸의 꼬리뼈에는 짓물러진 욕창이 훈장처럼 깊게 박혀 있다. 음식물을 삼키는 본능마저 잊어버리면 콧줄을 통해 들어오는 액체에 생명을 의탁해야 하고, 본능적으로 그 줄을 뽑으려 저항하는 손목은 억제대에 묶여 자유를 박탈당한다.

대화는 고사하고 오로지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것만이 유일한 과업이 된 삶. 온종일 무미건조한 천장과 벽면만을 응시하다가, 가끔 터져 나오는 하품이나 정체 모를 울부짖음만이 그들이 세상에 내뱉는 유일한 언어가 된다.

어쩌면 지금 구급차를 타고 차가운 아스팔트를 달리는 이 짧은 시간이, 이 환자에게는 바깥세상의 햇살을 마주하는 생의 마지막 산책일지도 모른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뒤로한 채, 구급차는 다시금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한 병원을 향해 출발한다.

초진 간호사가 환자를 받으며 긴박하게 묻는다. 시선은 이미 환자에게 가 닿아 있다.

“보호자가 적극적인 처치를 원하시나요? 나중에 마음 바꾸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래요. 지금 결단 안 내리면 환자분 금방 넘어갈 것 같은데….”

간호사도 알고 있는 것이다. 침상 생활을 이어온 고령 환자에게 가해지는 적극적인 처치가 때로는 고통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환자의 고통을 마주한 보호자가 결국 결정을 번복하고 싶어 한다는 것도. 하지만 우리네 법은 한번 시작된 생명의 끈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결국 가족도 환자도 고통의 터널을 끝까지 완주한 뒤에야 임종이라는 문에 다다른다.

응급의학과 교수가 다급히 휴대폰을 찾았다.

“보호자 연락처 있습니까? 제가 직접 통화해야겠어요.”

나는 구급차 전용 전화기로 보호자를 연결해 주었다. 수화기 너머로 교수의 냉정한 목소리가 흘러갔다.

“보호자분, 기관삽관하고 치료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응급실 처치를 거부하시면 전원 하셔야 할 수도 있어요. 지금 입원실이 없어 환자분을 마냥 여기 모실 수가 없거든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망설임의 무게가 전파를 타고 전해졌다. 결국 보호자는 치료에 동의했다. 그 망설임을 나는 이해한다. 나 역시 같은 상황이라면 생명의 연장과 편안한 죽음 사이 그 아득한 경계에서 갈팡질팡했을 것이다. 내 선택 하나로 사랑하는 이의 생존 기회를 박탈하거나, 혹은 고통의 시간을 늘릴 수도 있다는 결정. 그것은 정답이 없는 거대한 철학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공리주의와 의무론을 배우며 고개를 갸웃거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그 고고한 담론들이 내 삶과 맞닿아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간호사를 거쳐 소방관이 된 지금, 그 철학적 난제들은 내 옆구리에 늘 끼어 있는 골칫덩이가 되었다. 누군가는 더 살아야 하고, 누군가는 이제 편히 가야 하는 문제들. 그 고민에 마음을 쏟는 일은 엄청난 심리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고단한 작업이었다.

'나 때문에 살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 혹은 '내가 지금 하는 행위가 진정 가치 있는 일인가' 하는 회의감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이성적으로는 정답이 없는 것이 정답임을 알면서도, 인간이기에 마음이 쓰였고 인간이기에 그들의 존엄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 혼란 속에서도 나는 나만의 가치와 기준을 세우려 부단히 노력해 왔다.

다시 출동 벨이 울린다. 구급차는 요란한 사이렌으로 길을 열며 골목길을 누비고 목적지에 닿았다. 70대 남편이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한다는 신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현장은 처절했다. 환자는 숨이 막히는 공포에 안절부절못하며 고개를 휘저었고, 미약한 기침을 뱉어내고 있었다.

“뇌경색으로 누워 있은 지 오래됐어요. 겨우 팔만 움직여서 식사하시는데, 오늘 저녁에 떡을 좀 주었거든요….”

보호자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하곤란으로 인한 기도 폐쇄. 나는 즉시 흡인기를 꺼내 이물을 제거하려 했지만, 환자는 협조할 상태가 아니었다. 고개를 끊임없이 흔들며 저항하는 통에 흡인 카테터를 밀어 넣을 틈이 없었다. 마음이 급해진 내 목소리가 거칠게 터져 나왔다.

“어르신! 음식물 빼내려면 잠시만 가만히 계셔야 해요!”

외침도 소용없었다. 어느 순간 환자의 입술이 보랏빛으로 질리더니, 입을 꽉 다문 채 의식을 잃었다. 호흡 부전으로 인한 심정지 직전의 신호였다. 동료가 급히 제세동기 패치를 붙이며 환자를 바닥으로 내렸다. 미약하게 남은 심박 때문인지 턱근육은 강직되어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흡인을 포기하고 강제로 입을 벌려 이물을 제거하기로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무언가를 직감한 듯 울음 섞인 체념을 내뱉었다.

“아이고, 현정 아버지…. 딸 얼굴은 한 번 보고 가야지, 지금 가면 어떡해….”

무전으로 추가 구급대를 요청하며 후두경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쇠붙이가 입술 사이를 파고들자 비로소 턱의 저항이 풀렸다. 그 순간 동료 대원이 외쳤다.

“맥박 없습니다! 소생술 시작합니다!”

규칙적인 가슴 압박 소리와 함께 거실의 시계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시간이 없었다. 마질 겹자(Magill forceps)를 손에 쥐고 후두경의 불빛을 따라 어두운 기도를 탐색했다. 깊은 구멍 속, 후두경 빛을 받아 하얗게 번들거리는 떡 조각이 보였다. 시선을 고정한 채 겹자를 밀어 넣었다. 가슴 압박의 진동 때문에 표적이 자꾸만 도망갔다. 숨을 멈추고 떡의 끝부분을 낚아채듯 잡아당겼다. 마침내 커다란 떡 조각이 입 밖으로 끌려 나왔다.

기도는 열렸으나 환자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소생술이 이어졌고 기관삽관을 준비하던 찰나, 제세동기의 2분 알람이 울렸다.

“분석 중. 모든 동작을 멈추고 물러나세요. … 제세동 필요하지 않음.”

심전도 파형에 생기가 돌았다. 경동맥과 대퇴동맥을 짚었다. 다행히도 맥박과 자발 호흡이 돌아왔다. 나는 삽관 대신 기도 유지기를 삽입하고 호흡 보조를 하며 병원으로 내달렸다. 이송하는 동안 환자의 의식도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보호자는 떨리는 손으로 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병원에 도착해 의료진에게 인계를 마쳤을 때, 복도 끝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환자의 딸이었다. 그녀는 산소마스크를 쓴 채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빠… 흐흑, 아빠….”

침대 난간에 기대어 눈물을 훔치는 딸과 그녀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 그 지독하게 평범하고도 기적 같은 광경을 지켜보며 내 가슴속에 묵직한 깨우침이 내려앉았다.

침대 위에서 숨만 쉬는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었던 나의 오만을 반성했다. 누군가에게 그토록 간절하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 누군가의 눈물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

그 이유만으로도 사랑받는 것들은 충분한 삶의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