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다. 산속에는 눈이 소복이 내리고 있다. 남들이 눈구경 산행을 즐기는 그 틈에, 바로 그 틈에 누군가는 미끄러져 우리를 찾는다. 산 초입에서 쓰러졌다는 신고다.
목소리로 보아 신고자는 70대 후반쯤으로 추정됐다. 속으로는 한숨이 먼저 나왔다. 이 날씨에 그 나이를 드시고 왜 무리한 산행을 하는 건지, 그것도 등산로를 한참 벗어난 곳으로 말이다. 아직 마음만은 이팔청춘이라 믿는 걸까. 남자는 죽을 때까지 철이 안 든다는 말이 딱 맞다 싶었다.
신고자는 분명 초입이라 했지만, 눈 쌓인 경사로를 오르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젊은 나도 이렇게 숨이 차는데 노인이 이 눈길을 헤치고 들어왔으니, 사고는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선생님,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소리 한번 크게 질러 보세요. 등산로를 벗어나 계셔서 위치를 특정할 수가 없네요.”
“아니, 그게 아니고 이 사람아! 지금 내가 놀라 자빠진 게 안 보여? 여기 사람이, 사람이 나무에 목을 매고 있다니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안개랑 눈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여요. 선생님, 다리를 다치신 게 아니라 사람이 목을 맸다니요?”
“그래! 좀 빨리 와, 아이고 심장이야! 여기야, 여기! 어이——!”
수화기 너머의 고함이 귓가를 울림과 동시에, 산 공기를 타고 할아버지의 외침이 날아들었다. 나는 그 소리를 나침반 삼아 연무 속을 헤치며 뛰어갔다.
안개를 뚫고 다다른 곳엔 정말로 나무에 매달린 형체가 있었다. 그 옆엔 다리를 붙잡고 고통스러워하는 신고자가 쓰러져 있었다. 즉시 무전으로 상황을 전파하자 상황실에선 경찰과 추가 구급차 편성을 서둘렀다. 하지만 나는 추가 구급차는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매달린 이의 팔을 들어보니 이미 관절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사후 강직이 시작된 상태, 심폐소생술은 무의미했다.
이제 우선순위는 저 시신이 아니라 옆에 쓰러진 신고자였다.
“어르신, 다리 좀 볼게요. 어디가 얼마나 다치셨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아이고, 이 사람아! 지금 내 걱정할 때인가? 저 사람은 어쩌고 대체 뭘 하는 거야!”
“저분은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돼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곧 경찰이 와서 조사할 겁니다.”
나는 환자의 바지 끝단을 조심스레 걷어 올렸다. 발목 부근에 선명한 변형이 관찰됐다. 고통 섞인 신음을 내뱉는 그에게 내가 물었다.
“선생님, 발목이 부러졌네요. 그런데 어쩌다 여기까지 들어오신 거예요?”
“아니, 저 멀리서 멧돼지 한 마리가 급하게 달려가는 게 보이더라고. 뭐 하나 싶어 봤더니 사람한테 달려드는 게 아니겠나. 그래서 조심하라고 소리치며 다가갔지.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모양새가 이상해서 확인해 보니 저러고 있더라고. 너무 놀라 넘어졌는데, 아이고, 내 다리가 이 모양이 됐구먼.”
“멧돼지요? ……하지만 선생님, 지금 제 눈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그 멧돼지도 양반은 못 되는 모양이었다. 연무 사이로 검은 실루엣이 서서히 드러나더니, 씩씩거리며 뜨거운 김을 뿜어댔다. 족히 100kg은 넘어 보이는 거구였다. 그 모습에 소름이 끼치며 내 팔자를 원망했다. 살면서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진상들을 매일같이 상대하는 고달픈 인생인데, 이번엔 멧돼지라니.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곁에는 목맨 시신이 있고, 눈앞엔 멧돼지와 대치하는 상황. 이런 생을 사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아이고, 저놈 좀 보게. 저기 매달린 사람 잡아먹으려는 모양이네.”
“어르신,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 눈이 너무 많이 오니 큰길까지 들것으로 모실게요. 5분 정도면 됩니다.”
“아이고, 내가 무슨 좋은 일을 하겠다고 오지랖을 떨어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네.”
“아니에요. 일단 지금은 몸부터 생각하세요.”
대원들이 신고자를 들것에 실어 옮기기 시작했다. 멧돼지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이내 목을 맨 시신 쪽으로 다가오려고 했다. 시신 훼손만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 혼자 현장에 남기로 했다. 눈보라는 점점 심해졌고, 환자를 데리고 떠난 대원들의 실루엣은 금세 점이 되어 사라졌다. 멧돼지는 나와 대치하며 걸음을 멈췄다. 시체와 멧돼지, 참으로 오묘한 조합이었다.
나무에 매달린 이는 육십 대 정도로 보였는데, 기이하게도 표정만은 평온했다. 그러나 그를 감싼 옷매무새에는 숨기지 못한 고단한 생의 흔적이 역력했다. 닳아빠진 소매와 구멍 난 신발. 그 발치 아래, 소복이 쌓인 눈 위로 소주병 하나가 목만 내놓은 채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서글픈 죽음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자마자, 바로 앞엔 멧돼지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바닥을 긁어대며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참으로 잔혹한 대치였다. 하지만 그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에선 하얀 눈꽃들이 나긋나긋하게 흩날리며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배경을 뒤로하고 내 처지는 전혀 딴판이었다. 옆에는 서늘한 죽음이 매달려 있고, 앞에는 섬뜩한 공포가 입김을 뿜어대고 있으니 현장의 공기는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차갑게 날이 서 있었다.
바람이 한 번씩 몰아칠 때마다 옷깃 사이사이로 날카로운 냉기가 스며들어 살을 에는 듯 나를 채근했다. 나는 그 지독한 추위 속에서 팔짱을 낀 채 옴짝달싹 못 하고, 마치 그 자리에 뿌리내린 나무처럼 눈을 맞으며 서 있었다. 산속에서 이런 상황에 처하니, 유튜브에서 떠드는 오지 탐험이나 공포 체험 따위는 우습게 느껴졌다.
내 시리고 떨리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다리는 지원군은 여전히 기약이 없었다.
그때, 고요한 정적을 깨고 휴대전화가 큰소리로 울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전화를 찾았다. 나를 지켜보던 거구의 짐승도 그 소리에 놀랐는지 몇 발자국 뒷걸음질을 쳤다.
“네, 전화받았습니다.”
“OO대 순경입니다. 저희가 거의 다 오긴 했는데 정확한 위치가 안 보여서요. 일단 큰길까지는 왔습니다.”
경찰도 나처럼 길을 헤매고 있었다.
“제가 소리를 지를 테니까 그 소리 따라오시면 됩니다. 아, 그런데 여기 멧돼지가 한 마리 있어요. 아주 큰 놈으로요. 오실 때 혹시 모르니 잘 살피면서 오세요.”
“네? 멧돼지요? 아, 이거 총도 안 챙겨 왔는데 큰일이네요. 하하하.”
경찰관의 멋쩍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 역시 이 상황이 웃프게 느껴졌다.
“혹시 지금 제 목소리 들리세요? 여! 기! 에! 요!”
“아, 들립니다! 잠시만요, 찾아가 보겠습니다. 계속 소리 좀 질러 주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어이쿠……. 망자 확인, 과학수사대 요청합니다.”
경찰관이 현장을 확인하더니 즉시 무전을 쳤다.
“아이고, 추워라. 여기서 계속 혼자 계셨던 거예요? 안 무서우셨어요?”
“저도 내려가고 싶었는데, 멧돼지가 이 망자를 노리는 것 같아서요. 참 별꼴을 다 보네요,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근데 그 멧돼지는 어디 있나요? 안 보이는데.”
“어…… 그러게요.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니까 포기하고 갔나 보네요. 전 이제 내려가 봐도 되겠죠? 환자 한 분도 이송해야 해서요.”
“아, 그럼 목격자분은 어디로 이송하시나요? 저희가 조사 때문에 병원으로 방문해야 할 것 같아서요.”
“병원은 아직 안 정해졌습니다. 제 전화번호로 연락 주시면 정해지는 대로 알려드려도 될까요?”
“아, 네. 그러시죠. 아 참, 절차 때문에 소속이랑 성함도 좀 알려주세요.”
“OO서 6-0호입니다. 이름은 어려우니까 제 명찰 보고 적어가세요.”
나는 가슴팍의 명찰을 손으로 가리켰다.
“아, 네, 됐습니다. 조심히 내려가세요. 가다가 멧돼지 만나면 소리 크게 지르시고요. 저희가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하…… 네, 꼭 오셔야 합니다. 그럼 믿고 내려가겠습니다.”
하산하는 내내 사방을 경계하며 긴장 속에 발을 뗐다. 하지만 내려갈수록 팽팽했던 신경이 조금씩 풀리며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 너머는 참혹한 죽음과 야생이 날뛰는 현장인데, 내 눈앞엔 뿌연 연무 사이로 이따금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설경이 펼쳐졌다. 마치 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처럼, 잊고 있던 연인이라도 떠올려야 할 것 같은 풍경이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오겡끼데스까?, 와따시와…….’
뽀드득거리는 눈 밟는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한참을 걸어 내려왔다.
구급차에 올라타자마자 따뜻한 온기가 온몸을 감쌌다. 긴장이 풀린 자리에 지독한 피로가 몰려왔다. 사선을 넘나들던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몸을 깊숙이 기대고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눈이 얼마나 더 오려나 싶어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검색창에 ‘날씨’를 입력하자 주간 예보가 상세히 떴고, 그 아래로 관련 기사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중 하나의 헤드라인이 시선을 붙들었다.
<50년 만의 서울 강설량 신기록 경신….>
기사를 확인하니 다시금 헛웃음이 나왔다.
‘50년 만의 기록적인 폭설, 산속의 망자와 100kg 멧돼지, 다리 골절 할아버지…… 거기다 혼자 찍은 러브레터????…….’
에라이, 이 정도면 퇴근하는 길에 로또 한 장 사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