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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Mar 11. 2020

가족여행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1편 - 결혼 전, 일본 여행을 떠나다


어렸을 때 가족여행은 그저 엄마 아빠를 따라다니는 게 전부였다. 운전기사와 사진기사는 아빠가 도맡아 했고, 먹거리와 숙박은 엄마가 책임졌던 것 같다. 자식들의 역할이라곤 엄마가 카메라를 들며 "저기 가서 서 봐~"라고 하면 처음엔 신나서 예쁜척 포즈를 취하다가 갈수록 싫증이 나서 집에 가자고 투덜거리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고 고등학교는 수능 준비하느라 대학교 땐 친구들과 노느라 20대 후반엔 연애하느라 바빠서 어느새 부모님과의 여행은 기억도 가물가물해진 먼 얘기가 돼버리고 만다. 


우리 가족이 몇 년 만에 여행을 가게 된 계기는 '나의 결혼'이었다. 자취 한번 안 해 본 내가 출가를 하려고 보니 부모님을 비롯 친오빠까지 여간 마음이 쓰였는지 결혼 전에 가족 여행을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것도 무려 해외로! 성인이 되고 나서 가족끼리 한 번도 제대로 된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는데 해외를 가려니 조금은 겁이 났다. 그렇다고 국내로 가자니 이미 방방곡곡 다 돌아본 부모님께는 시시하게 느껴졌고, 나도 이참에 부모님께 더 이국적인 곳을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이 났다. 






교토의 아름다운 한 순간


1. 사건의 발단


처음에는 패키지 여행을 가려고 알아봤다. 가족 여행 경험이 있던 지인들은 해외 여행을 간다면 무.조.건. 패키지로 가라고 추천을 하였다. 그래서 패키지 여행을 알아보던 중 아무래도 불필요한 여행 스케줄 및 잦은 이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고 싶은 곳도 마음껏 못 가고, 먹고 싶은 것도 맘대로 못 먹으면서 여행 비용은 두배 가량 높았다. 여러 컨디션 상 패키지 여행은 제법 해외 여행을 수차례 가본 내게는 성이 차지 않는 선택지였다. 그래 까짓것! 나의 준비성과 여행 경험으로는 충분히 부모님을 모시고 해외를 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무엇보다 부모님 돈으로 가는 건데, 그 비용을 절반으로 줄여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여행지는 그나마 난이도가 쉬운 오사카와 교토로 정했다. 거리도 가깝고, 교통도 편하고, 깔끔한 걸 추구하는 부모님도 좋아하실 것 같았다. 또 일본어를 조금 구사할 줄 아는 아빠에게도 재미있는 추억거리가 될 것 같았다. 패키지로 여행을 가라는 지인들의 조언을 가볍게 무시한 채 나는 신나는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여행을 다녀온 건 2년 전으로, 작년 일본불매운동&코로나 이슈와는 거리가 먼 과거 이야기 입니다)




빼곡하게 정리한 일정표. PPT 13장 분량이 나왔다.


2. 여행플래너처럼 준비하기


모든 여행 준비는 나 혼자 했다. 자유여행을 가자고 결정한 사람은 나였기에 내가 자연스럽게 맡게 된 것도 있고, 오빠는 해외여행 경험이 적었고 여유 시간도 많지 않아서 나 혼자 준비하게 되었다. 


이번 여행 숙소는 한 집에서 다 같이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로 일반 가정집을 예약하였다. 사실 숙소를 하나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조건 좋은 집을 고르자니 부모님께서 부담스러워할 게 뻔했고, 그렇다고 허름한 곳으로 모실 수도 없으니 최고의 가성비 좋은 숙소를 찾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고심하였다. 에어비앤비를 샅샅이 뒤지며 여러개의 후보 중에서 고민하다가 아담하지만 큰 침대 3개와 화장실 2개가 달린 우리 가족에게 딱 맞는 숙소를 찾았다. 


숙소를 결정한 이후부터는 어디를 갈지, 어떻게 이동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 기본적인 오사카와 교토에 대한 정보를 모두 수집한 후 가고 싶은 곳을 기록함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를 넣었다. 고작 2박 3일 여행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이 과정에서 조금은 지쳤던 것 같다. 친구와의 여행이라면 가고 싶은 스팟 몇 개만 대략 정해놓고 즉흥적으로 움직이기도 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조금 힘을 빼는 시간도 있다만 아무래도 낯선 타지에서 우리 가족을 온전히 내가 책임지고 데리고 다닐 생각을 하니 어느 부분 하나에서도 힘을 뺄 수가 없었다. 


또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 지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어떤 것을 결정해야 부모님이 더 좋아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추가되다 보니 조금 더 어려웠던 것 같다. 


나는 모든 동선과 그에 맞는 교통 정보 등을 체크하고 이동하는 중간에 어디에서 밥을 먹을 것인지, 처음 도착해서 짐은 어디에 맡겨둘 것인지, 공항에서 오사카 시내까지 가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보고 그에 맞는 열차 티켓도 예약하는 등 정말 부모님이 느끼시기에 '패키지 관광에 왔구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였다. 심지어 구글 맵으로 내가 이동하는 동선을 검색하여 어떤 느낌인지,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미리 시뮬레이션까지 하였다.  


듣기만 해도 벌써 지치지 않는가?.. 나는 이미 지쳤다. 

하지만 그땐 내가 지쳤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도착하자마자 간사이 공항에서 산 간식거리


3. 설렘이 과했던 걸까


우리 가족은 새벽부터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2박 3일의 짧은 여정이라서 첫째 날 아침부터 셋째 날 저녁까지 꽉꽉 채워서 놀다 올 예정이었다. 가족이 함께 이동하기에 아빠 차를 가지고 공항으로 갔고, 차를 공항에 주차해 놓았다가 돌아올 때도 편하게 올 계획이었다. 가족끼리 함께 움직이니 이런 게 좋구나라고 느꼈던 순간이다. 4인의 교통비보다 차를 주차하는 게 더 저렴해서 너무나도 편하고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를 제안한 오빠에게 박수를!)


그렇게 편안하게 공항에 도착해서 오사카행 비행기를 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여행을 매우 좋아하지만 비행기 공포증이 꽤 심한 편이다. 이건 분명 평소에도 운전을 무서워하는 엄마의 쫄보 성격을 닮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 비행기를 타고 보니 엄마는 속 편하게 잠을 자고, 아빠는 나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긴장하고 있던 것이다.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아빠에게 "아빠 비행기 무서워?"라고 물으니, "그럼 무섭지~"라고 대답하는 데 아빠가 새삼 작아 보였다. 나이가 들 수록 부모님의 어깨가 작고 좁아져 보인다는데 평소 엄마보다 엄하고 뭐든 자신 있게 도전하는 아빠가 비행기를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2시간도 안 되어 일본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였고, 부랴부랴 짐을 찾고 오사카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열심히 눈알을 굴렸다. 나도 초행길이라 모든 게 낯선데 옆에서 부모님이 나만 의지하고 있으니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서 부지런히 모든 안내판을 샅샅이 스캔하였다. 가는 중간에 잠시 배도 채울 겸 편의점에 들려서 간식거리를 샀다. 사실 편의점 위치 또한 미리 파악해두었다. 점심을 먹기엔 너무 이르고, 새벽부터 출발해서 배가 고플 가족들을 위해 뭐라도 사 먹을 곳을 찾아놔야겠다고 미리 계획해두었다.


편의점에 도착해서 샌드위치와 주먹밥 각종 음료수 등을 골라서 결제를 하고 부랴부랴 열차를 타러 이동했다. 열차를 타기까지 몇 분이 남았는지 확인하러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아뿔싸! 핸드폰이 사라졌다. 말도 안 돼!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서 분명 핸드폰과 포켓와이파이를 연결했는데.. 


살면서 한 번도 핸드폰을 잃어버려 본 적이 없는데 첫 가족 해외여행에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을 잃어버리다니.. 나의 불안함은 가중되었고, 나를 지켜보는 가족들마저 이게 무슨 일이냐며 걱정과 불안함에 휩싸였다. 





일본 가족 여행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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