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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Apr 01. 2020

가족여행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2)

2편 - 아슬아슬한 감정선

결혼 전, 처음으로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떠난 이야기 2편입니다. 지난 1편 스토리에서 이어집니다. 

2018년 4월 여행기로 코로나 이슈 & 일본 불매운동과는 거리가 먼 과거 이야기입니다.


#1 -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아슬아슬했다

https://brunch.co.kr/@abcabcabc17/20





1.  핸드폰아 어디 간거니


간사이(오사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그 핸드폰에는 온갖 여행 정보가 가득했다. 여행 일정을 종이로 출력해오긴 했지만 구글맵에 저장해둔 내용이 많았기에 핸드폰이 없는 여행은 지금껏 준비한 것의 50% 밖에 발휘할 수 없는 매우 난감해진 상황이었다. 할부를 미처 채우지 못한 그런 사정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의 첫 해외여행을 망치게 되는 것만 두려웠다. 


그때 마침 편의점에서 핸드폰을 봤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 자리에서부터 편의점 가는 길바닥을 샅샅이 살피며 뛰어갔다.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은 발견하지 못했고, 실낱같은 희망으로 편의점에 들어갔다. 편의점 직원에게 혹시 놓고 간 핸드폰이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의 싸늘한 대답. No.


아.. 내가 영어가 짧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저 분이 내 영어를 못 알아 들어서 그런 건지 다시 한번 재차 손으로 핸드폰을 그려가며 얘기해보았지만 똑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가 구입했던 샌드위치와 음료 코너 쪽을 쭉 돌아보았다. 엇 근데 저게 뭐지? 샌드위치 위에 핸드폰이 놓여 있는 게 아닌가! 할렐루야 나의 아이폰! 나의 모든 여행정보! 그것이 샌드위치 위에 곱게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샌드위치를 고르다가 잠시 손이 부족해서 그 위에 올려놨었던 것이다. 거기에 핸드폰을 올려둔 나 자신이 이해가 안 됐지만 아무렴 핸드폰을 되찾았으니 다행이었다.


핸드폰을 빠르게 찾은 덕에 시간에 맞게 오사카 시내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었다. 불안했던 마음을 가라 앉히고 열차에 타서는 모든 순간을 인증해야 한다며 가족들과 셀카를 찍었다. 엄마 아빠는 나의 제안이 좋았는지 열심히 사진을 찍었고 설레는 기분이 느껴졌다. 그런데 나는 이미 한 차례 전쟁을 치러서 그런지 시작부터 피곤함이 가득했다. 



아름다운 교토의 한 순간 1




2. 예상치 못한 부모님의 강철 체력


오사카는 버스나 전철이 우리나라만큼 워낙 잘 되어 있었고 유명 관광지이다 보니 모든 곳에 영어 표기가 되어 있어서 자유여행으로 다니기가 좋았다. 어느 가족은 부모님들 체력이 안 되어서 돌아다니는 걸 싫어한다고 하지만 우리 집은 반대였다. 엄마와 아빠는 나보다 체력이 훨씬 좋고, 무엇보다 아빠는 '호기심왕'으로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수시로 나에게 이곳은 어디이냐? 여기의 역사는 어떻게 되느냐? 여러 질문을 쉴 새 없이 하였고, 나는 아는 것만 대답하고 모르는 건 "아빠가 직접 찾아봐~"라고 말하고 회피했다. 사실 모르는 게 대부분이었기에 아빠의 질문 공격이 지나쳐서 꽤 힘들긴 했지만 최대한 평정심을 잃지 않고 대답하려 노력했다. 


아래는 내가 첫째 날 계획한 일정이다. 모든 일정은 10분 단위로 엑셀로 정리했다. 본래 내 여행 스타일과는 많이 다르지만 패키지 여행에 익숙한 부모님을 위해 타이트하게 잡아보았다.


유명한 회전초밥 집에 가서 점심 식사를 하고- 저녁에 탈 크루즈 티켓을 미리 구입해놓고 - 오사카성 관람을 하고 - 중간에 핫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쉬어주고 - 다시 난바역으로 돌아와 지인들에게 나눠줄 기념품을 구입하고 - 현지인 샤브샤브 맛집에 데려가서 저녁을 먹고 - 그 유명한 도톤보리 크루즈까지 타기 


계획해둔 모든 일정대로 착착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주 디테일하게 일정을 짜둔 덕분에 숙소에 돌아가는 시간까지 정확하게 맞췄다. 물론 나에게는 여행이 주는 재미가 조금 덜했지만 부모님이 즐거워하셔서 뿌듯했다. 너무 타이트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체력 좋으신 부모님은 중간중간 시간이 뜰 때마다 다른 데 더 볼 게 없냐고 물으셔서 급하게 일정을 만들기까지 했다. 저녁 일정을 다 마치고 나서도 아빠는 밤에 더 구경할 게 없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우리 아빠의 체력이란..!! 





3. 교토를 가다가 사건이 터졌다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부모님께 최대한 많은 곳을 구경시켜 드리고 싶어서 둘째 날은 교토에 다녀오기로 했다. 오사카 시내에서 교토를 가는 방법과 또 교토에서 어떻게 이동할지 미리 다 공부를 해두었지만 하루 안에 움직여야 할 동선이 많다 보니 내가 미리 습득해야 할 정보도, 당일에 재빠르게 체크하고 판단해야 할 것들도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혼자 하는 게 조금씩 버거워졌다. 


전날부터 무리한 일정으로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랬던 걸까. 교토를 가는 방법이 어려워서 그랬던 걸까. 우리 가족은 교토를 가다가 사건이 터져버렸다. 정확하게는 아빠와 나 사이의 일이다. 


호기심왕인 아빠는 마찬가지로 교토로 이동하는 중에도 질문 폭격을 했다. 나는 행여나 길을 잘못 들진 않을지 매우 예민한 상태였는데 아빠가 옆에서 계속해서 질문하는 바람에 길 찾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슬슬 나의 평정심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결국 아빠에게 크게 짜증을 내버렸다. 아빠와 나는 성격이 비슷해서 아빠도 나의 짜증을 받아주지 못하고 똑같이 폭발해버렸다. 


"너는 어디 가족끼리 여행 와서 승질만 내고 있냐! 재미있게 놀러 왔는데 왜 자꾸 짜증이야!"

"내가 지금 길 찾느라 정신없어 죽겠는데 아빠가 옆에서 계속 말 걸고 장난치니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잖아!!"

"같이 길을 찾아가면서 하면 되는 거지.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짜증까지 내고 그래!"

"내가 길 못 찾으면 누가 찾을 건데! 이거 지도 보는 법은 알아? 나도 너무 힘들다고!!!" 


사실 우리 가족이 싸우는 일은 매우 드문데, 그 일이 하필 첫 해외여행에서 터져버렸다. 혼자서 모든 여행을 책임져야 한다는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그런 나를 받아주기에 아빠도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옆에서 엄마와 오빠는 좋은 말로 나와 아빠를 달래주려고 애썼다. 


그래도 가족이니까 심각한 분위기가 이어지진 않았지만 교토에 도착해서도 아빠는 한참을 토라진 상태로 다니셨다. 그래서 그날 오전에 찍은 사진을 보면 아빠의 표정이 모두 안 좋다. 따로 화해할 필요도 없이 그날 저녁쯤에는 완전히 회복되긴 하였지만 아빠에게 참 미안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여행을 다녀와서 많이 반성하고 후회했다. 부모님과 함께 해외여행을 갈 기회가 앞으로 많지 않을 텐데 그 소중한 시간에 하나의 오점을 만든 것 같아서 정말 죄송했다. 이 여행의 취지는 나의 결혼 전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만들기 위해 떠난 건데 나는 그 취지를 잊고 그저 짜인 일정대로 움직여야 하는 가이드처럼만 행동하느라 바빴다. 


그때는 어린 생각에 왜 나 혼자 여행 준비를 해야 했는지, 오빠가 도와줬더라면, 엄마 아빠가 여행지에 대해 공부를 하고 왔더라면 이런 사태가 생기지 않았을 텐데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다 내 욕심이었다. 내가 가족들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혼자서 다 끌고 가려고 욕심을 부린 것이다. 그렇게 혼자서 끙끙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가족들이 미안해하거나 초조했을 마음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 


교토 사건을 통해 앞으로 가족여행에 있어서 교훈을 얻기도 했다.  



가족 해외여행은 패키지로 가거나 휴양지로 가자. 도심지 자유여행은 큰 욕심이다.

마음속으로 '짜증 내지 말기'를 단단히 생각하고 가자. 너무나도 가까운 사람이기에 나도 모르게 불쑥 짜증이 솟구칠 수 있다. 

여행할 때의 그 순간을 즐기자. 완벽하게 행동하려고 하지 말자. 나는 가이드가 아니라 부모님과 함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온 '딸'이니까.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올해 초에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지난 여행의 교훈을 완벽하게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부모님이 한층 더 편안하고 행복해하신 것 같아서 뿌듯했다. 


결혼하고 나니 부모님과 같이 보낼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한 달에 한 번 찾아뵙기에 그 만남을 횟수나 시간으로 환산하면 정말 얼마 안 된다. 그렇기에 옆에 계실 때 잘해드려야겠다. 효도에도 노력이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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