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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Jan 12. 2020

밥 한번 같이 먹는 게 대수야?

가족끼리 다 같이 모여 밥 한 끼 같이 먹는 게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특히나 20대 자녀가 있는 가정에선 더욱 그러하다. 나 역시 결혼 전 저녁식사 시간을 생각해보면 퇴근이 늦어져서 회사에서 먹고 오기도 하고, 다이어트 때문에 따로 먹기도 하고, 친구나 남자친구를 만나서 먹고 들어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일요일 점심은 꼭 함께 먹었다. 그 식사시간은 부모님에겐 아침 일찍 교회를 다녀온 후 먹는 점심 식사였고, 나는 늦게까지 자다 일어나서 먹는 첫 끼였다. 게으른 나는 눈을 비비며 엄마가 차려둔 음식을 대충 먹고 다시 들어가서 자기도 했다. 부모님이 바란 가족과의 식사시간은 그게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나에게 일요일 점심시간은 그저 식사를 때우는 시간이었다. "나는 내 시간대로 움직이고 싶은데 왜 꼭 같이 먹어야 해?"라는 철없고 퉁명스러운 말을 뱉기도 했다. 


그때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부모님이 무엇을 바라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제야 가족과 함께 먹는 밥상이 얼마나 귀한지 알 게 되었다. 그중 기억에 강렬하게 남은 식사시간 몇 가지를 기록해두고 싶다.



01. 눈물의 갈비탕


나는 결혼 일주일 전부터 신혼집에 들어와 살았다. 조금이라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더 보낼까 고민했지만 그랬다가는 결혼식 당일날 슬픔이 배가 될 것 같아서 미리 1차 헤어짐을 겪는 게 낫겠다 생각했다. 누가 들으면 우스운 소리겠지만 나는 자취나 기숙사처럼 밖에 나와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나의 결혼은 우리 가족에게 엄청난 헤어짐으로 다가왔다.


신혼집에 처음 들어가는 날, 내 짐과 미리 사둔 몇 가지 혼수용품, 엄마가 챙겨준 것들을 아빠 차에 가득 싣고 오빠까지 포함하여 온 가족이 함께 신혼집으로 향했다. 하필 내비게이션이 꼬불꼬불 어려운 길을 알려주었고 신혼집으로 향하는 길이 참 좁고 복잡했다. 본가와는 다르게 골목골목 빌라들이 가득한 곳에 위치해 있어서 부모님은 내심 속상하셨던 것 같다. 경기도와 서울의 집값은 천지차이라서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좋은 환경에서 스타트를 하지 못하는 게 조금은 아쉬우셨나 보다. 


짐을 다 내리고 점심을 먹으러 가까운 갈비탕집에 갔다. 남편도 함께 했다. 이러한 아쉬움과 헤어짐의 슬픔까지 겹쳐서 그날 갈비탕을 먹는 자리가 어찌나 우중충했는지 모르겠다. 우리 네 가족은 아무 말 없이 침묵에 휩싸여 밥을 먹었다. 남편은 당연히 아직 우리 가족이 낯설어 조용히 먹었다. 가족과의 마지막 식사는 아니지만 한 집에 살던 가족으로써 함께 하는 식사는 마지막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갈비탕은 먹는 둥 마는 둥 나는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다. 


그렇게 우울한 식사를 마치고 부모님과 오빠는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신혼집에 들어가서 펑펑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지만 그때 내 감정은 너무 예민하고 여렸다. 


갈비탕 맛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지만 그날의 기분을 절대 잊지 못한다. 그 집 앞에만 지나가도 그때의 감정이 흘러나온다. 갈비탕집 사장님은 누군가가 지나가며 이런 생각을 하는 줄은 꿈에도 모르시겠지. 나중에 남편에게 그날 먹은 갈비탕집 분위기를 물어보니 본인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냥 맛있게 먹었다고.. 슬픔에 휩싸인 사람은 나와 부모님 우리 오빠뿐이었다. 



02. 오천원짜리 막국수


결혼을 앞둔 2주 전, 그러니까 신혼집에 들어가기 1주일 전 엄마와 단 둘이 외식을 했다. 어쩌면 결혼 전 엄마와 하는 마지막 외식이라고 생각하여 밥을 먹기 전부터 슬펐다. 


왠지 마지막 외식이니까 좋은 곳에 엄마를 데려가고 싶었는데, 그냥 엄마가 가자고 한 곳으로 따라갔다. 아무 데나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엄마가 데려간 곳은 너무나 소박한 곳이었다. 엄마는 나를 시장 한 모퉁이에 있는 오천원짜리 막국수 집으로 데려갔다. 엄마 친구와 먹어봤는데 맛있었다며 비빔 막국수를 추천하였다. '아.. 엄마와 결혼 전 마지막 데이트인데 여기서 먹어도 되나?..'라는 고민이 조금 들었지만 달리 방안이 없었기에 비빔 막국수 두 개를 시켰다. 


우려와는 다르게 그날 먹은 막국수는 내 인생 막국수가 될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엄마가 맛있다고 해서 더 맛있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결혼 전 엄마와 마지막으로 먹은 슬픔의 막국수이기도 하다. 하나의 음식에서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기억되다니 참으로 신기하다. 


며칠 전에는 이 날의 막국수가 그리워져 다른 가게에서 비빔 막국수를 시켰다. 영 그 맛이 안 났다. 엄마와 함께 시장에 있는 그 집을 다시 가고 싶지만 출가한 딸이 엄마와 외식하자며 데려가기에는 너무 초라한 것 같아서 차마 못 그러겠다. 



 03. 엄마의 진수성찬


이제는 부모님과 식사할 일이 생기면 평소보다 무리해서 많이 먹곤 한다. 잘 먹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기도 하고, 또 엄마가 힘들게 준비한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게 보답이라 생각해서다. 


위의 사진은 남편과 함께 우리 집에 방문한 날이다. 사위가 온다고 하니 엄마는 또 한 상 가득 차렸다. 그러면 나는 "너무 많이 차리지 말랬잖아~"라며 잔소리를 해대니 엄마는 내 눈치를 보며 기본 반찬 몇 가지를 올리지 않는다. 자잘한 반찬을 두지 않아서 푸짐해 보이진 않지만 온통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이다. 꽃게탕, 직접 만든 양념게장, LA갈비, 깻잎전/새송이버섯전/팽이버섯전, 돼지고기 가지볶음, 단호박 샐러드, 고구마순 무침, 그리고 열무김치. 


하나도 빠짐없이 온통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이다. 게다가 우리 엄마 음식 솜씨는 끝내준다. 엄마가 해준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그리고 이 음식을 차리기 위해 고생한 엄마가 고마워서 평소보다 두배 이상 먹었다. 


그렇게 맛있게 먹고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심하게 체해버렸다. 가던 길을 멈추고 낯선 상가 화장실에 달려 들어가 모든 음식을 토해버렸다. 나는 엄마가 해준 그 소중한 음식들을 하나도 소화시키지 못한 것이, 꼭 엄마의 사랑을 소화하지 못한 것 마냥 느껴져서 엉엉 울었다. 이 사건은 두고두고 엄마에게 비밀로 하고 있다. 엄마가 알게 되면 너무 속상하고, 걱정하실 것 같아서다. 




아직 결혼 안 한 친구들 대부분이 저녁을 밖에서 먹고 들어간다. 그럴 때면 나는 "빨리 집에 가서 엄마랑 밥 먹어~"라고 말한다.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도 그때는 몰랐지만 누군가 알려줬더라면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들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한 달에 한번 찾아뵙는 부모님과의 식사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아서 그에 대한 의미 부여가 점점 커진다. 더 잘해드려야지 라고 매번 마음 먹지만 얼굴 맞대고 있을 때면 또 예전처럼 툴툴거리고 쉽게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된다. 어쩌면 부모님은 그런 내 모습마저 다 예뻐하시겠지. 오늘 저녁에는 엄마가 준 김장김치로 엄마표 김치부침개를 따라 만들어야겠다. 그 맛이 날지 모르겠지만 엄마를 생각하며 먹으면 맛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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