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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Dec 10. 2019

살찌는 건 알지만 야식은 포기 못해

맛있으니까.


나는 원래 야식을 전혀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건강을 매우 중시하는 우리 가족에게 '야식'은 금기어 같이 느껴졌다. 부모님과 함께 산 30년의 시간 중 야식을 먹어본 적이 다섯 번도 안 될 정도니 말 다했다. 


어느 날은 친오빠와 함께 우리도 밤에 라면이란 것을 한 번 끓여먹어 보자며 1개를 끓여 둘이 나눠먹고선 속이 부대껴 고생한 기억이 있다. 물론 밖에서 친구들과 만나거나 데이트할 때는 늦은 시간까지 먹는 경우가 많았으나 경기도민이었던 나는 집에 오는 길에 다 소화가 되어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문제는 결혼 후 생겼다. 30년 만에 야식의 재미에 빠진 것이다. 


납작만두와 야채무침 & 닭강정. 그리고 빠지지 않는 맥주


왜 나에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
야식이 얼마나 재밌는지, 그리고 위험한지


야식을 먹는 건 마치 매일 밤 파티하는 기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요일마다 바꿔가며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신나는 나날의 연속인가! 그런데 이 달콤한 야식에 중독될 줄은 몰랐다. 분명 저녁밥을 충분하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밤 9시, 10시만 되면 내 위장이 스스로 새로운 음식물을 채워 넣을 자리를 만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서 나에게 야식을 넣어줘'라고 소리치는 기분이랄까. 물론 야식을 먹고 싶은 나의 과도한 합리화다.



맥주의 세계는 넓고도 깊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밤 파티를 벌였다. 좋아하는 맥주와 이에 어울리는 안주를 직접 페어링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우리는 맥주를 참 좋아하는데 연애 시절부터 새로운 맥주를 찾아서 이리저리 쏘다녔다. 이제는 마트에서 못 보던 맥주를 발견하면 무조건 사들고 와서 집에서 시음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밖에서 마시는 수제맥주는 한 잔에 최소 5천원에서 1만 5천원 정도 되지만 마트에서 파는 건 비싸도 만원 안 쪽이다 보니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적합했다. 특히 안주값은 아예 안 들거나 만원 이하면 충분하니까 어떻게든 밖에서 먹는 것보다 돈이 많이 절약되었다. 



최애 아이스크림 구구 오리지널


물론 매일같이 맥주를 마신 건 아니다. 맥주를 안 마시는 날은 홈런볼이나 구구 오리지널 or 티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우리 집에 홈런볼과 아이스크림이 끊긴 적은 단 하루도 없을 정도로 나는 매일 간식 창고를 부지런히 채우고 있다. 당연히 내 뱃속도 열심히 채웠고. 


밖에 나가서 남이 해준 요리를 먹는 것도 좋지만 우리 둘만의 공간에서 세상 편안한 마음으로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또 피곤해지면 바로 누워 잘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던가. 나는 그렇게 매일매일을 즐겼다.



가끔은 고급 맥주와 와인도 즐긴다


그 결과, 결혼 반년 만에 살이 훅 쪄버렸다. 결혼을 준비하며 9개월 동안 서서히 5kg이 빠졌는데, 반년 만에 그 이상이 쪄서 속상했다. 결혼할 때 샀던 모든 옷은 다 작아졌다. 전부 새로 살 순 없어서 작은 옷을 낑겨입고 나가니 소화불량으로 시달렸다. 주변 친구들은 하나도 안 쪘다며 그대로라고 하지만, 오랜만에 보시는 어른들마다 얼굴이 참 좋아졌다고 칭찬하시니 그게 얼마나 무서운 칭찬인가. 


우리의 야식 타임은 주 4-5회에서 1-2회로 줄었다. 진작에 이 정도만 즐겼다면 살이 찌지도 않고, 소화불량도 없고, 어른들께 칭찬도 안 받았을 텐데 말이다. 물론 그 시간은 무척이나 행복했으니 후회는 없다! 다만 결혼하는 친구들에게 꼭 하는 조언이 생겼다. "야식 조심해.. 그거 한번 빠지면 훅 가" 


야식의 재미를 충분히 즐겼으니 이제는 다른 건강한 기쁨을 찾아 나서고 있다. 남편과 같이 유튜브 홈트레이닝 영상을 보며 따라 하는 재미가 생겼다. 어찌 됐건 둘이서 무언가 같이 한다는 게 나에겐 큰 행복인 것 같다. 그게 꼭 먹는 게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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