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으니까.
나는 원래 야식을 전혀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건강을 매우 중시하는 우리 가족에게 '야식'은 금기어 같이 느껴졌다. 부모님과 함께 산 30년의 시간 중 야식을 먹어본 적이 다섯 번도 안 될 정도니 말 다했다.
어느 날은 친오빠와 함께 우리도 밤에 라면이란 것을 한 번 끓여먹어 보자며 1개를 끓여 둘이 나눠먹고선 속이 부대껴 고생한 기억이 있다. 물론 밖에서 친구들과 만나거나 데이트할 때는 늦은 시간까지 먹는 경우가 많았으나 경기도민이었던 나는 집에 오는 길에 다 소화가 되어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문제는 결혼 후 생겼다. 30년 만에 야식의 재미에 빠진 것이다.
왜 나에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
야식이 얼마나 재밌는지, 그리고 위험한지
야식을 먹는 건 마치 매일 밤 파티하는 기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요일마다 바꿔가며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신나는 나날의 연속인가! 그런데 이 달콤한 야식에 중독될 줄은 몰랐다. 분명 저녁밥을 충분하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밤 9시, 10시만 되면 내 위장이 스스로 새로운 음식물을 채워 넣을 자리를 만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서 나에게 야식을 넣어줘'라고 소리치는 기분이랄까. 물론 야식을 먹고 싶은 나의 과도한 합리화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밤 파티를 벌였다. 좋아하는 맥주와 이에 어울리는 안주를 직접 페어링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우리는 맥주를 참 좋아하는데 연애 시절부터 새로운 맥주를 찾아서 이리저리 쏘다녔다. 이제는 마트에서 못 보던 맥주를 발견하면 무조건 사들고 와서 집에서 시음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밖에서 마시는 수제맥주는 한 잔에 최소 5천원에서 1만 5천원 정도 되지만 마트에서 파는 건 비싸도 만원 안 쪽이다 보니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적합했다. 특히 안주값은 아예 안 들거나 만원 이하면 충분하니까 어떻게든 밖에서 먹는 것보다 돈이 많이 절약되었다.
물론 매일같이 맥주를 마신 건 아니다. 맥주를 안 마시는 날은 홈런볼이나 구구 오리지널 or 티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우리 집에 홈런볼과 아이스크림이 끊긴 적은 단 하루도 없을 정도로 나는 매일 간식 창고를 부지런히 채우고 있다. 당연히 내 뱃속도 열심히 채웠고.
밖에 나가서 남이 해준 요리를 먹는 것도 좋지만 우리 둘만의 공간에서 세상 편안한 마음으로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또 피곤해지면 바로 누워 잘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던가. 나는 그렇게 매일매일을 즐겼다.
그 결과, 결혼 반년 만에 살이 훅 쪄버렸다. 결혼을 준비하며 9개월 동안 서서히 5kg이 빠졌는데, 반년 만에 그 이상이 쪄서 속상했다. 결혼할 때 샀던 모든 옷은 다 작아졌다. 전부 새로 살 순 없어서 작은 옷을 낑겨입고 나가니 소화불량으로 시달렸다. 주변 친구들은 하나도 안 쪘다며 그대로라고 하지만, 오랜만에 보시는 어른들마다 얼굴이 참 좋아졌다고 칭찬하시니 그게 얼마나 무서운 칭찬인가.
우리의 야식 타임은 주 4-5회에서 1-2회로 줄었다. 진작에 이 정도만 즐겼다면 살이 찌지도 않고, 소화불량도 없고, 어른들께 칭찬도 안 받았을 텐데 말이다. 물론 그 시간은 무척이나 행복했으니 후회는 없다! 다만 결혼하는 친구들에게 꼭 하는 조언이 생겼다. "야식 조심해.. 그거 한번 빠지면 훅 가"
야식의 재미를 충분히 즐겼으니 이제는 다른 건강한 기쁨을 찾아 나서고 있다. 남편과 같이 유튜브 홈트레이닝 영상을 보며 따라 하는 재미가 생겼다. 어찌 됐건 둘이서 무언가 같이 한다는 게 나에겐 큰 행복인 것 같다. 그게 꼭 먹는 게 아니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