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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Nov 23. 2020

이해할 수 없는 임산부의 우울함

01. 임신 초기, 입덧으로 인한 우울함


임신 9-10주 즈음, 입덧이 최고조로 심해지면서 체력이 바닥이 났다. 임신 전에 즐겨하던 홈트도 못하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무조건 누워만 있으니 온 몸에 근육이 쑥 빠져버렸다. 회사생활도 겨우 버티는 수준으로 다녔다. 팀원들의 도움으로 많은 배려를 받긴 했지만 회사에서 갑자기 내 존재가 무쓸모인 것만 같아서 우울했다. 인생의 무슨 낙이 있는 건지 더 이상 힘들지만 않으면 괜찮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먹고 싶은 것이 사라지고 뭘 먹어도 이전의 기쁨보다 20퍼센트도 채 안 되는 만족감을 느꼈다. 미식의 기쁨이 얼마나 컸는지 실로 깨달았다. 회사 점심시간에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하루하루가 괴로운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걸까. 그들의 밝은 에너지가 부러웠다. 다른 사람의 도시락 냄새를 맡는 것도 힘들고 사람들 앞에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을 수 없어서 자리에 홀로 앉아 밥을 먹은 지 한 달이 넘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는 임산부석에 앉아있는 비임산부인 사람들을 보고 화가 났다. 일부러 그 근처에 서 있어도 자리를 비켜주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쓰러질 듯 힘든 날에는 온갖 눈치를 견뎌내며 노약자석에 앉았다. 당연히 임산부가 앉아도 되는 자리이지만 아직 배도 안 나온 초기 임산부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가방에 달린 핑크 배지를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고 무슨 죄인이라도 된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힘든 티를 풀풀 내며 숨죽여 앉아있었다.


집에 와서는 울렁거림과 감기몸살 같은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 평소에 관심 없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지겨워질 때쯤 전원을 끄고 잘 준비를 하려니 또 심장이 쿵쾅거리며 숨 쉬기가 고되었다. 아 임신이란 이렇게 대단한 일이었던 건가. 우리 엄마를 비롯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존경심이 생긴다.


그때의 내 모습은 흡사 히키코모리와 다를 게 없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걱정이 들었다. 자꾸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조금 정신을 차릴 때쯤 책 한 권을 펼쳤다. 아무 생각 없이 가볍게 읽기 좋은 에세이였다. 책에서 마주친 어느 문장이 잊혔던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고1 여름방학 때, 보충수업이 끝났는데도 친구랑 헤어지기가 아쉬워 정류장에 선 채로 버스 한 대를 보내고, 또 한 대를 보내며 수다에 몰두하던 오후를 잊지 못한다.  - 아무튼, 여름 中



고등학생 시절 친구와 수다 떠느라 몇 대의 버스를 떠나보낸 기억이 났다.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20분 거리를 친구와 함께 걸어왔고, 그 친구는 우리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무슨 대화가 그렇게 재밌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생각나는 건 나름 미래에 대한 건설적인 얘기였던 것 같다.


나도 친구가 제일 소중했던 학창 시절이 있었고, 가슴 뜨겁던 연애시절도, 찌질한 이별의 아픔도 있는 사람이었다. 수많은 경험과 추억으로 축적된 나를 오랜만에 다시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임신이라는 경이로운 몸의 변화로 인해 벌써 내 소중한 추억을 다 잊어버릴 뻔했다. 어쩌면 출산 후에 진짜 엄마가 되면 더 많이 까먹을 것이다. 주변 선배 엄마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출산 전, 결혼 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벌써 조금 슬프다. 대신 그보다 더 소중한 축복이 찾아왔으니 위안이 되겠지만 말이다.




02. 임신 후기, 고립으로 인한 우울함


임신 초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코로나가 극성해지면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임산부의 안전을 생각해주는 회사의 배려에 너무나도 감사하고, 충성심이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부모님과 시부모님도 코로나에 대한 걱정을 한 시름 덜어내게 되어 좋아하셨다. 나 또한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는 만큼 잠과 체력을 더 보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좋은 줄만 알았던 재택근무가 끝이 보이지 않자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확진자 수가 줄어들면 다시 출근할 계획이었다. 1년 3개월의 출산&육아 휴직에 들어가기에 앞서 회사 사람들과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재택근무를 시작할 때도 갑자기 전날 밤 연락이 와서 내일부터 위험하니까 집에서 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노트북도 다음 날 퀵으로 전달받았다. 그 후로 이렇게 쭉 회사를 못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재택근무는 몸은 너무 편하지만 자주 외롭고 사람이 그립다. 내가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나 새삼 깨닫게 된다. 그나마 집순이 타입이라서 잘 버티고 있지만 이따금씩 재택근무+휴직기간을 포함하여 1년 9개월을 집에서 나 홀로 버틸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물론 저녁에는 남편이 있고, 출산 후에는 옆에 아기가 있지만 어쨌거나 외부와 단절된 채로 집에 온종일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답답하다.


내가 이런 얘기를 터놓으면 아무도 이해를 못해준다. "그래도 안전하게 집에서 일하니까 얼마나 좋아?", "잠도 많이 자고 몸도 편하잖아?"라는 말로 돌아온다. 사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장점이 있다고 단점이 다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남편이 회식이나 약속으로 자정을 넘겨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하루 종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남몰래 엉엉 울었다. 그러다가 배를 쓰다듬으며 아기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누구에게 연락을 해도, 마찬가지로 "그래도 재택근무가 좋잖아, 아니면 (코로나를 무릅쓰고) 출근하는 게 어때?"라는 대답이 돌아오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사실 나의 우울함과 외로움은 누군가가 겪고 있는 상황에 비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엄살을 부리는 걸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글을 쓰면서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내 감정을 기록하고 싶을 뿐이다. 임신 중에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은 게 평생 한이 된다고 하는데, 그만큼 예민해지고 별거 아닌 일에 서운해지는 이 시기에 나의 감정 또한 당연한 정도일 것이다. 임산부의 호르몬은 정말 무섭게도 사람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한다.


엄마의 감정이 아기에게도 전달된다고 하니 계속해서 우울해 할 수도 없다. 벌떡 일어나서 눈에 보이는 무언가라도 치우며 감정을 달래 보려 노력한다. 그렇게 나의 임신 기간은 하루하루 채워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임산부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해야 해~"라고 얘기를 해 주지만, 그럴 때마다 '나만 이렇게 슬픈 생각을 많이 하는 못된 엄마인가'라는 생각에 되려 죄책감이 든다. 아직 엄마가 되려면 멀어서 그런 걸까. 이게 엄마가 되는 길인 걸까.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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