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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Nov 29. 2020

우리가 어쩌다 부부가 되었을까?

말로만 듣던 운명 같은 만남

나는 아직도 우리 부부가 첫 인연이 된 그 순간을 떠올리며 행복한 추억 여행을 떠나곤 한다. 지금은 서로가 옆에 있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전혀 모르던 남녀가 외딴섬 제주에서 만난 일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아직은 쌩쌩한 기억력을 자부하지만 언젠간 이 기억들이 사라질까 봐 브런치에 기록해 두고 싶다. 그리고 자랑하고 싶다. 우리 부부, 이렇게 만났어요!






혼자 떠난 제주도 여행


5년 전 여름, 힘든 일이 있어 혼자 제주도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남자한테 데었다. 당분간 연애는 하고 싶지 않고,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오고 싶었다. 그렇다고 휴가를 길게 쓸 수는 없는 상황이라 2박 3일의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조용한 게스트하우스 한 곳과 저녁에 바비큐 파티를 하는 곳을 1박씩 예약해둔 후, 그 외에 별 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저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싶었다. 사람들이 너무 북적거리는 유명한 곳 말고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곳을 원했다. 그러다 우연히 블로그에서 유난히 끌리는 한 카페를 발견했다. 사람도 적고, 경치도 좋고, 무엇보다 커피가 아주 맛있다는 말에 다른 곳은 찾아보지도 않고 이 카페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주도에 도착해서 혼자서 잘 돌아다녔다. 해장국도 먹고, 고기도 구워 먹고, 산에도 올라봤다. 아무 계획 없이 돌아다니는 그 자유로움이 참 좋았다. 이튿날 아침 일찍 오름에 다녀온 후, 점찍어 둔 그 카페로 향했다. 여행객이 많이 다니는 곳은 아니라 버스가 별로 없어서 택시를 타고 갔다. 내가 기대하던 그 카페를 마주하자 문 앞에 들어서기 전부터 설렜다. 카페에 들어가자 주인아저씨가 가볍게 목례를 해주었고, 나는 빠르게 좋은 자리를 스캔한 후 앉았다. 다행히 자리는 여유로웠고, 카페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조용한 편이었다. 


커피를 시키고 주위를 좀 둘러보니 어떤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 카페에 나처럼 혼자 온 손님이 딱 한 명 있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쪼리를 신고 가방이나 어떤 짐도 없이 혼자서 책을 읽고 있던 남자였다. 내가 제주에서 유일하게 하고 싶던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카페에서 책 읽기'를 먼저 하고 있는 사람을 보니 신기했다. 아무래도 여행객은 아니고 제주도에 사는 사람 같았다. 책에만 집중하느라 내 존재는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저 남자가 나한테 말 걸면 어쩌지?'라는 엉뚱한 상상을 하려던 찰나 커피가 나오고, 나의 본래 방문 목적에 집중했다. 책을 읽다가, 일기를 쓰고, 바다를 보며 멍 때리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보내다가 그 남자가 카페를 나가는 게 느껴졌다. 잠시나마 엉뚱한 상상을 한 내가 웃겼다. '남자한테 데어서 제주에 와 놓고는 여기 와서도 또 사랑 타령이냐?' 정신을 차린 후 점심을 먹으러 카페를 나섰다. 




바닷가에 덩그러니 놓인 의자에 앉아서


점심 식사 후, 버스를 타고 30분가량 이동하여 숙소 근처의 해변에 갔다. 낡은 의자 하나가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길래 내 자리인가 싶어서 바닥에 배낭을 내려놓고 자리를 잡았다. 마침 친구에게 여행 잘하고 있냐는 연락이 와서 넋두리를 풀어놓았다. "좋긴 좋은데..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 했어. 묵언수행 중" 그러다 카페에서 우연히 본 그 남자 얘기를 꺼냈다. "나처럼 혼자 온 남자가 있어서 눈길이 갔는데.. 그냥 별일 없이 각자 볼일 봤지^^" 


그렇게 바닷가에 앉아서 한참을 멍 때리다가 누군가 인스타그램에서 나를 팔로우했다는 알람이 떴다. 어렴풋이 보이는 프로필 사진을 보고 너무 깜짝 놀라서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왠지 아까 카페에서 본 그 남자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나를 어떻게 찾은 거지? 아니 그 남자가 맞긴 한가?' 작게 보이는 프로필 사진을 제외하고 얼굴 사진은 하나도 없었고 죄다 풍경, 디자인 등의 사진뿐이었다. 최근 게시물을 보니 제주도에 있는 사람은 맞는 것 같았다. 아까 점심을 먹는 중에 내가 카페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그걸 발견하고 나를 찾은 건지 궁금했다. 


그 날 제주에서 올린 사진


팔로우만 해놓고 연락이 없어서 당황하던 찰나 그 남자가 내가 올린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다. "오전에 여기 카페에 계셨던 분 맞죠?" 밀당이라곤 1도 없는 나라서 댓글을 보자마자 바로 대댓글을 달았다. 그 후 그 남자에게 DM이 왔다. 본인도 아까 그 카페에 있었다며 말을 걸어왔다. 그러면서 저녁에 맥주 한 잔 할 수 있을지 제안했지만 나는 이미 한참을 이동하기도 했고, 게스트하우스에 예약해 둔 바비큐 파티가 생각나서 적극적으로 만나려는 의지가 생기진 않았다. 설레는 마음과 동시에 낯선 여행지에서 누군가와 술 한 잔 한다는 것은 왕쫄보인 내게는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었다. 


또한 그때는 인스타그램을 이제 막 시작했던 때라 DM을 주고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낯선 사람에게 낯선 DM을 받자 기분 좋은 설렘도 잠시 이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찾은 거지? 혹시 제주도에 혼자 여행 온 여자를 찾다가 나를 발견하고 미끼를 던진 거 아냐?' 그러면서 또 한편으론 친구에게 연락해서 이 상황을 생중계해줬다. 아까 카페에서 본 그 남자가 나한테 DM을 보냈다며 호들갑을 떨자 친구는 한 술 더 떠서 이게 웬 운명이냐며 난리를 쳤다. 


뭔가 이대로 끝내기는 아쉽지만 그렇다고 먼저 다가설 용기도 없었다. 그러자 그가 나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괜찮다면 돌아오는 주말에 서울에서 보자고 한 것이다. 그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어서 계속 불안한 마음과 동시에 왠지 끌리는 강력한 이 끈을 놓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의 제안을 수락했고, 만날 위치를 정했다. 어디 사는 사람인지도 몰라서 약속 장소를 어떻게 정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합정'이 그나마 가까운 곳이면서 제일 좋아하는 동네라서 그곳에서 보자고 했다. 그러자 그도 합정이 가깝고, 회사도 근처라고 했다. 또 한 번 괜히 통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설렘과 불안함이 동시에 밀려들기 시작했다. 




서울에서의 첫 만남


그를 만나기까지 5일의 시간이 있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내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어차피 할 말도 없고 카톡으로 가벼운 얘기를 떠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그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마음은 점점 불안해져 갔다. 주말에 만나는 게 맞는지 의아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딱 약속 전날 저녁에 연락이 왔다. 합정역 몇 번 출구에서 몇 시에 보자는 간단한 메시지였다. 알겠다고 답장을 해주고 대화는 금방 종료됐다. 그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이나 글도 그렇고, 카톡 메시지 스타일도 가벼운 남자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단 만나서 확인하자는 생각으로 다음 날 마음을 비우고 나갔다. 


내 얘기를 들은 친구는 최대한 예쁘게 꾸미고 나가라고 했다. 마치 소개팅을 하는 것처럼 이런저런 조언들을 해줬다. 하지만 나는 잘 보이고 싶은 마음보다는 그냥 너무 궁금했다. 어떤 사람인지, 나를 어떻게 찾았는지, 왜 찾았는지 등등. 그래서 그냥 평소처럼 똑같이 입었다. 검은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캐주얼한 가방을 메고, 굽 없는 로퍼를 신고 나갔다. 합정역에서 그를 마주하자마자 이렇게 입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또한 멋 부리지 않고 깔끔한 옷차림이었다. 혼자서 소개팅녀처럼 치마에 구두를 신었다면 민망한 상황이 될 뻔했다. 


어색함이 감도는 상황에서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나는 낯가림이 심해서 첫 만남에 대화를 잘 못하는 편이라 그가 혼자서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어떻게 나를 찾았냐는 질문에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그가 우연히 카페 해시태그를 검색했다가 나를 발견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우리가 카페에 같이 있을 때부터 그 사람은 나를 봤었다고 한다. 여자애가 혼자서 꽃무늬 배낭을 메고 카페에 들어선 모습이 귀엽기도, 씩씩해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말을 걸어볼까 생각이 들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용기도 없었다고 한다. 여행 와서 헌팅이나 하는 그런 남자로 보이는 것도 싫었다고 한다. 그러다 배가 고파서 점심을 먹으러 나갔는데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 내 생각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식사 후 내게 다시 말을 걸어보기 위해 카페로 돌아왔는데 내가 없어서 아쉬웠다고 했다. 




나를 우연히 찾은 게 아니라고요?


그는 일주일 동안 제주에 서핑을 하러 왔는데 마침 그 날은 파도가 없어서 딱히 할 일이 없었다고 한다. 숙소 근처에 있는 여러 카페 중에 그 카페가 가장 눈에 들어와서 별생각 없이 들어갔다고 했다. 카페에 책이 몇 권 놓여 있길래 그중 한 권을 골라 독서를 하던 중 내가 카페에 들어온 것이다. 


그는 카페에 내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쉬던 중에 계속 내 생각이 났다고 한다. 내가 카페에 앉아서 창밖 사진을 찍던 모습이 떠올라서 혹시 인스타그램을 하는 사람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카페 이름을 검색했더니 내가 찍은 것과 비슷한 구도의 사진이 보였고, 게시물을 타고 들어가니 내 얼굴이 보여서 너무 놀랬다고 한다. 혹시나 게시물이 사라질까 봐 얼른 팔로우부터 누르고, DM을 보내는 방법을 몰라 네이버 지식인에 검색까지 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자 나의 불안함은 싹 사라졌고 운명 같은 만남에 묘한 끌림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그 카페를 가지 않았더라면, 오전이 아니라 오후에 갔더라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 날에 제주도 여행을 가지 않았더라면, 혹은 그 사람이 저 멀리 부산에 사는 사람이었다면, 그 날 파도가 좋아서 그가 서핑을 하러 나갔다면, 그가 숙소에서 더 가까운 카페를 택했더라면, 그가 나에게 용기를 내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인연이었지만 무수히 많은 우연이 겹쳐서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일하는 분야도 일을 시작한 시기도 비슷했다. 성격이나 취향도 닮은 구석이 많아서 참 신기했다. 그의 말처럼 그 카페에서 내게 말을 바로 걸었더라면 나는 분명 이상한 사람이라 여기고 바로 경계했을 것이다.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다가와줘서 너무 고마웠다. 모든 게 운명 같았고, 감사했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는 시작되었고, 결혼을 하였고, 지금은 내 뱃속에 예쁜 아가까지 있다. 


남편은 아직도 종종 묻곤 한다. "왜 서귀포 구석에 있는 카페까지 왔어?" 그럼 나는 답한다. "몰라 그때 우연히 발견하고 그냥 끌렸어. 자기가 있을 거라 예감했나 봐~"  




우리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스토리로


우리의 연애 스토리를 주변 지인들에게 들려주면 한 편의 로맨스 영화를 본 듯 모두가 흥미로워했다. 오히려 우리 두 사람보다 더 신기해하고 둘은 정말 운명이라며 감탄했다. 심지어 내 지인은 마침 제주도에 여행 갈 일이 있어서 그 카페에 직접 가봤다고 한다. 물론 아무 소득은 얻지 못했지만. 회사에서도 내 연애 스토리가 전 직원에게 퍼졌고, 이에 영감을 받아서 한 편의 광고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그리고 제주도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장소가 되었다. 연애를 시작한 이후로 매년 제주도에 놀러 가고, 그 카페에 들러서 사장님께 우리 소식을 전했다. 웨딩사진도 제주에서 셀프로 찍었고, 그 카페 앞마당에서 드레스를 입고 기념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도 어느 하나만 어긋나도 만날 수 없었던 우리가 이렇게 한 집에서 살고, 내년에는 소중한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예비 부모가 되었다는 게 참으로 놀랍다. 서로의 존재가 너무 익숙해질 때면 우리의 만남을 다시 떠올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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