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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Dec 06. 2020

남편을 위해 식기세척기를 질렀다

우리 부부는 가사 분담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편이다.  신혼 때부터 ‘내 일, 네 일’ 나누어놓은 것도 아닌데 각자가 잘하는 분야를 맡아서 하다 보니 어느새 또렷하게 나눠졌다. 혹은 더 예민하게 신경 쓰이는 일을 나서서 하다가 자신의 일이 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남편은 정리에 더 신경 쓰는 편이고, 나는 청소에 더 관심이 많다.


그러나 남편이 유독 즐겨하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설거지이다. 요리를 내가 전담해서 하므로 설거지는 자연스레 남편 몫이 되었는데 매번 귀찮아서 밤늦게까지 미루었다 자기 전에 하는 편이다. 특히 주말이면 삼시 세 끼를 먹으며 나온 설거지를 한 번에 몰아서 하느라 싱크대가 꽉 차곤 했다. 요리를 하는 내 입장에선 이 점이 매우 불만스러워서 주말이면 빨리 설거지를 해 달라고 재촉하거나 혹은 잔소리를 하기 싫어서 종종 직접 설거지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설거지는 나도 남편에게도 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었지만 한 편으론 이것 때문에 싸우고 싶지 않아서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내가 잘 못하고 귀찮아하는 집안일이 있듯이 남편에게는 억지로 맡은 일일 수도 있으므로 내가 그를 계속해서 닦달할 수는 없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답답한 사람이 나서서 먼저 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지만 나는 그 정도로 답답하지 않은 건지 혹은 그러다 영영 내 몫이 되는 게 두려운 건지 나서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내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요즘 식기세척기가 정말 좋다던데 우리도 하나 마련하면 어떨까? 내년에 아기도 나오면 육아 때문에 집안일도 더 바빠질 테고 말이야” 그의 말을 듣자마자 처음 든 생각은 ‘설거지는 남편 몫인데 본인 일만 줄어드는 거 아니야?’였다. 한편으론 설거지하기가 얼마나 귀찮았으면 그럴까 싶기도 했다. 저렴한 제품을 살 수도 없고 대략 80만 원의 지출이 필요한 일이므로 단 번에 결정을 내릴 순 없었다.


최근에 나온 식기세척기 후기를 몇 개 찾아보니 우선 세척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고, 실제로 육아를 하는 집에서 매우 편하게 쓰고 있다는 말에 나도 조금씩 솔깃했다. 내가 망설이고 있자 남편은 한 번 더 나를 설득하였다. “설거지하는 시간을 아껴서 그 시간에 육아를 더 도울 수도 있고, 다른 집안일도 더 많이 할 수 있잖아. 우리 문명의 힘을 빌려보자!” 그의 말에 나는 식기세척기 구입을 수락했고 아기가 태어난 후 구입하는 것보다는 미리 그 문명을 느껴보고자 얼마 전 블랙프라이데이 세일 때 할인가에 구입하였다.



(SK매직 트리플케어 식기세척기 그레이스블랙 - DWA19R0P00BL)



며칠 뒤 생각보다 덩치 큰 녀석이 우리 집 주방을 차지하였다. 저녁을 먹은 후 설레는 마음으로 설거지 거리를 차곡차곡 쌓았다. 마치 테트리스를 하듯 그릇을 빈틈없이 배치하는 재미도 있었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식기세척기는 물을 뿜어내며 열심히 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신기하고 재미있다며 한참을 세척기를 보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세차게 돌아가는 물소리가 마치 남편의 설거지에 대한 묵은 때가 벗겨지는 것처럼 들렸다.


어느 날은 남편이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옮기며 중간중간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뭐하냐고 물으니 블로그에 구입 후기를 적으려고 한단다. 나는 식탁에 앉아 그의 모습을 구경했다. 설거지할 때와는 다르게 신난 남편의 뒷모습을 보자니 귀엽기도 하고 뭉클해지기도 했다. 설거지를 안 하는 게 저렇게나 좋을까? 설거지를 귀찮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의 마음을 100% 이해할 순 없겠지만 그가 좋다면 나도 좋다. 그리고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그 짜릿함은 나도 분명히 느꼈으니까!


남편은 오늘도 무언가를 사자고 새로운 아이템을 내게 제안한다. 우리 집 재정부 장관인 나는 뭐든 다 오케이 할 수는 없기에 늘 신중해진다. 하지만 이렇게 남편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대부분 수락하게 된다. 재정부 장관의 일을 잘 못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맞벌이 부부의 장점이 이런 게 아닐까 싶은 마음에 오늘도 소비를 아끼지 않는다. 무엇보다 식기세척기 구입은 정말 만족스러웠으니까! 나는 이제 홍보대사가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다니게 되었다. 여러분, 식기세척기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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