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출산을 앞둔 임산부의 일기
어느덧 임신 10개월에 접어들었다. 언제 출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때가 왔다. 출산을 앞두고 지난 임신 기간을 되돌아본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준비를 하였는가? 글쎄다. 어떤 준비를 해야 좋은 엄마가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기준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또 누군가의 기준에는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차곡차곡 준비한 것 같다.
임신과 동시에 맘 카페에 살짝 발을 담가봤다. 그곳엔 정보가 무궁무진했고,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많이 얻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재빨리 발을 빼야겠다고 생각했다. 과도한 걱정과 고민이 넘쳐나고 있었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고 생각이 드는 정보가 당연시되고 있었다. 물론 아이를 위한 엄마의 사랑에서 시작했겠지만 내게는 조금 지나치게 느껴졌다.
내가 전업주부였다면 상황이 좀 달랐을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출퇴근하는 워킹맘들에 비해 시간이 여유로우니 뱃속 태아를 위해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만큼 부지런 떨지 못한 나 자신을 위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는 아이에게 집착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를 내 품에 안자마자 넘쳐나는 모성애로 이 마음가짐이 순식간에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미리 굳게 마음을 먹고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려고 한다.
사실 나는 아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우리 가족 대대로 모두 아기만 보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과하게 좋아하는 편이다. 남의 아기도 이렇게 예쁘고 귀한데, 내 아이는 얼마나 더 예쁘고 애지중지하게 될까? 그렇기에 미리 조심하려고 한다. 엄마의 과한 모성애는 아기에게 무조건적으로 좋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커뮤니티나 언론에서 일명 '맘충' 소리를 듣는 사람들도 결국은 자기 아이에 대한 과한 사랑이 변질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그런 사람들은 본인들이 출산 전에 맘충이 될지 알았을까? 아마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차츰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임신 기간 중 특별한 태교를 하지 않았다. 태교 동화를 읽어주는 부모들도 있고, 클래식 음악을 하루 종일 듣는 부모들도 많다고 한다. 물론 두 가지 모두 태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 내가 즐겨하지 않던 것을 억지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게 태교이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뱃속 아가도 같이 즐거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임산부에게는 다소 금기 시 되는 커피, 날 음식도 나는 거리낌 없이 먹었다. 실제로 하루 한 잔의 커피는 태아에게 무해하며 날 음식도 신선한 것으로 먹는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조심해서 나쁠 거 없다지만, 나는 벌써부터 모든 것을 아기에게 맞춰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참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에 대한 집착은 출산 방법과 모유 수유 방법에도 영향을 미친다. 무조건적으로 자연분만과 완모만이 최고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완모 : 완전 모유수유의 줄임말로 아기가 돌이 될 때까지 분유 없이 모유수유를 하는 것) 이를 선택한 사람들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집착이 되어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는 엄마들이 안쓰러워 보였을 뿐이다. 나는 모든 것은 아기와 하늘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자연분만을 시도하려고 하지만 출산 방법은 아기가 선택한다고들 한다. 아기의 자세나 갑작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제왕절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충분히 올 수도 있음을 미리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모유수유의 경우, 엄마에 따라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행여나 모유가 잘 안 나올지라도 죄책감 따위 갖고 싶지 않다. 모유수유를 하다가 너무 힘들면 언제라도 그만 둘 마음도 있다.
이제 진정한 부모가 될 준비를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우리 아이를 이렇게 키워야지'가 아니라 '어떤 부모가 되어야지'라는 생각이다.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아이에 대한 마음가짐이 많이 다르다. 내가 가장 멀리하는 엄마의 모습은 '우리 아기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소중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주면서 키워야지'라고 생각하는 엄마이다. 이러한 생각이 아이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고, 아이가 커 갈수록 더 육아에만 올인하는 부모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나는 단단한 엄마가 되고 싶다. 남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나와 남편의 가치관대로 아이를 키우고 싶다. 그리고 나의 남은 생을 오로지 '엄마'로써 채우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간 쌓아온 내 커리어를 이어 가고 싶고, 내 아이에게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이러한 내 생각과 일치하는 책 한 권이 있다. 박혜란 작가님의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이다. 8년 전 책이기도 하고, 작가님의 아이가 자라던 시절과 지금은 너무 많이 달라져서 현시대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손사래 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방법적인 측면을 떠나서 엄마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행동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도움되는 좋은 내용들이 많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나는 육아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지는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닥칠 순 있겠지만 단순히 육아에 올인하기 위해서 엄마의 길을 걷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정말 일종의 보상심리로 아이에게 올인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 같다.
출산 전, 나는 이렇게 다짐했지만 여느 엄마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나도 내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미리 다짐하고 시작하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거라고 본다. 다른 거 바랄 거 없이 나와 남편이 세워 둔 단단한 가치관 아래에서 건강하고 자립심 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 그러면 나머지는 모두 저절로 따라올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