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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Feb 21. 2021

출산이 임박한 산모는 어떤 기분일까

지금 나는 임신 38주로 출산예정일까지 10일 남은 상황이다. 산모에 따라 다르지만 5일 전에 이미 태아의 무게가 3kg을 넘어서 예정일보다 일찍 아기를 만날 확률이 높다. 임신 사실에 설레고 당황했던 내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신기하기도 하고 살짝 두렵기도 했던 그 묘한 기분을 아직 잊지 못한다. 불과 9개월 전이지만 그때 내 자신이 무척이나 어린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9개월 간 뱃속에서 아기를 키우며 나도 조금 성숙해진 걸까? 진짜 어른의 경험은 출산과 육아 후에 찾아오겠지만 말이다.




나는 겁이 매우 많다. 놀이기구는 당연히 못 타고, 비행기도 무섭고, 자동차 옆좌석에 앉아서도 혼자서 깜짝깜짝 놀라며 10년 넘게 장롱면허를 유지하고 있다. (운전면허는 어떻게 땄는지 지금으로썬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귀 뚫는 것도, 주사 맞는 것도 다 무서워했으니 출산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임신 전, 아이를 갖고는 싶었으나 출산의 무서움이 커서 막막했었다. ‘나 같은 쫄보가 견뎌낼 수 있을까? 기절해버리면 어쩌지?’와 같은 생각뿐이었다. 주변 지인들이 임신하고 출산에 임박했을 때면 ‘무섭진 않을까? 떨려서 어떻게 견디지?’라고 생각했고 출산을 겪은 그들이 대단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잠시 그 두려움을 잊고 있을 때 아기가 생겼다.


임신을 하고 나니 막상 출산에 대한 두려움은 너무 먼 일이었다. 입덧, 몸살기, 튼살, 허리 통증 등등 주기 별로 달라지는 내 몸에 신경 쓰기 바빴고, 막달에 가까워지니 아기용품 구입, 출산 가방 싸기 등 새로운 관심거리가 마구 쏟아졌다. 어느덧 모든 준비를 다 마치고 이제 정말 아기를 만날 준비만 남았다. 많은 이들이 내게 무섭지 않냐고, 특히 아직 임신 경험이 없는 친구들이 그렇게 물어보곤 한다. “무섭긴 한데, 생각보다 덤덤해!”라고 대답을 하니 친구들이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든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을 붙잡고 무섭다며 펑펑 울었다. 친구들에게 거짓말로 대답한 걸까? 아니다. 실제로 출산을 앞둔 임산부의 마음은 이렇게 오락가락한다.


어느 날은 ‘진통’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궁금하기도 하고, 어떻게 준비하면 지혜롭게 그리고 덜 고통스럽게 지나갈 수 있을지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생생한 출산 후기를 보다가 “아기를 만나는 기쁨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이 크지만 진통은 정말 더 표현할 수 없이 엄청 아파요..” 와 같은 글을 볼 때면, 기쁨보다는 고통에 초점이 쏠리며 두려움이 한순간에 몰려온다.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설렘과 걱정이 소용돌이치는 요즘이다.

언제 올지 모를 진통에 대한 임산부의 걱정을 죽음을 앞둔 노인의 마음과 비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때론 그런 감정을 느낀다. 당연히 건강하게 순산할 것이라 믿지만 내가 우리 집을 오랜 시간 비우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많은 것들을 정리하게 된다. 집안을 더 깨끗하게 치우고, 더 이상 식재료를 구입하지 않고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처분하게 된다. 물론 죽음과 비교하기에 출산은 새로운 탄생이라는 엄청난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이지만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게 받아들여야지’라는 생각과 ‘낯선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곧 끝으로 맺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공존할 때면 마치 죽음과 같다는 생각까지 뻗게 된다.


좋은 생각만 하라는 부모님의 조언과는 달리 끝을 걱정하는 내가 우습고, 아기에게도 미안하지만 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럴 때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젊은 시절 나의 마지막 자유시간이 될지도 몰라!’라는 생각으로 재빨리 돌려야 한다. 고요한 집안에서 내 마음대로 시간을 조절해서 채워나가는 하루하루가 몇 주 후면 얼마나 그리워질 나날이 될까. 그렇기에 메모장에 적어둔 출산 전 버킷리스트를 다시 한번 쳐다본다. 예정일에 임박해오니 사실 하고 싶은 것들은 거의 다 했다. 이제 진짜 모든 마음의 준비는 끝났다.


아가야 건강하게 엄마에게 오렴!
이 집안이 너의 울음소리로 채워지고,
매일 수면 부족으로 힘겨워져도 괜찮으니
이제 언제든지 세상 밖으로 나와도 된단다!





다른 산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대체로 이렇듯 불안하기도 설레기도 하는 마음이 뒤섞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무섭지 않냐고 묻기보다는 그저 순산을 기도해주는 게 최고의 위안이 된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모든 엄마들이 겪은 일이니 별거 아닌 일이야라고 가볍게 넘기지도 않았으면 한다. 우린 아직 안 겪어봤기에 두려운 것이다. 한 번 겪어본 사람들도 심지어 그걸 알기에 더 떨리고 무섭다고들 한다. 경이로운 새 생명의 탄생, 그 자체에만 집중하기에는 나의 멘탈은 보통 수준이라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렇게 떨리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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