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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Oct 16. 2020

새우깡을 보면 할머니가 생각나요

울할매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부모님께서 결혼과 동시에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으면 누구나 우리 엄마를 가장 안쓰러워한다. 37년이나 모셨으니 그럴만하다. 엄마의 희생 덕분에 나는 할머니와의 추억이 많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다. 그보다 더 어릴 적에는 할머니를 따라 노인정에도 자주 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틈에 섞여 고스톱 치는 걸 구경하기도 하고, 노인정 냉장고에서 멸치를 몰래 훔쳐다가 주변 길고양이에게 슬쩍 주기도 했다.


우리 할머니는 참 순한 사람이었다. 가족들에게 화를 내거나 나를 꾸짖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내 말에 뭐든지 좋다고 하는 할머니가 정말 좋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사를 가면서 내 방이 처음 생기고 할머니와 떨어져 자게 됐을 때는 너무 무서워서 종종 할머니 방에 가서 자기도 했다. 어느새 금방 나만의 시간이 익숙해지고, 할머니와 고스톱을 같이 쳐드리는 것도 지겨워졌다. 가족보다는 친구들이 좋았고, 거실에서 보내는 시간보다는 내 방에서 혼자 꼼지락거리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렇게 나의 10대, 20대를 지날수록 할머니와의 추억이 줄어들었다. 30년이란 세월을 같이 지냈는데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을 돌이켜봤을 때 어린 시절이 더 많이 떠오르다니 참으로 죄송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아주 매정한 손녀는 아니었다. 나는 아빠를 따라서 할머니가 좋아하는 간식을 종종 사다 드렸다. 아빠는 툭하면 할머니가 좋아하는 과자나 아이스크림 등을 대량으로 사 오곤 했다. 결국 할머니가 질렸다며 손을 휘두를 정도로 말이다. 아빠의 간식 구매 빈도가 줄어들 때쯤이면 내가 할머니 간식을 조금씩 사다 드렸다.


우리 할머니는 과자는 새우깡만 좋아하고, 아이스크림은 돼지바랑 메로나만 드셨다. 나름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에 더 좋고 비싼 것을 사다 드려도 원래 드시던 것만 고집하셨다. 그래서 나는 슈퍼에서 늘 고민 없이 간식을 집었다. 특히 일요일 오후 할머니와 단 둘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새우깡 한 봉지를 사 갖고 와서 할머니와 티비를 보며 나눠먹었다. 사실 할머니가 드시는 양은 20% 정도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다 내 몫이었다. 할머니를 위한 건 핑계고 그냥 내가 먹고 싶어서 산 걸지도 모른다.


 

2016년에 SNS에 남긴 글



어느 날은 쌀새우깡이 처음 나와서 한 번 사봤다. 고소하고 더 작은 사이즈라 할머니는 이 또한 맛있게 드셨다. 또 한 번은 매운 새우깡이 출시됐었다. 사실 할머니는 매운 걸 전혀 못 드셔서 싫어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내 호기심에 못 이겨 매운맛을 사들고 집에 갔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한두 개 집어 드시고선 못 먹겠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나는 혼자 남은 걸 맛있게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얄미운 짓이다.


할머니의 치매 예방을 위해 아빠는 우리 가족에게 특훈을 내렸다. 매일 할머니와 고스톱을 치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재미있게 쳤다. 원래 게임이라는 게 가족끼리 해도 다툼이 나는 게 당연하다만 어린 손녀가 할머니와 고스톱을 치다가 종종 다툼이 벌어지곤 했다. 할머니는 순서를 까먹고 연달아 두 번 치거나 두 번씩 패를 뒤집었다. 그럴 때면 답답한 마음에 짜증을 냈다.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는 마음이 급해서 본인의 차례를 까먹었을 뿐인데 나는 할머니가 고집부린다고 생각해서 같이 못 치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굳이 할머니를 이겨서 뭐하려고 그렇게 공정하게 하려 했는지 참으로 어렸다.



울할매가 좋아하던 바나나맛우유



할머니는 그렇게 우리 가족과 30년가량 함께 지냈고, 몸이 많이 쇠약해지셔서 여생을 마무리하기 위해 시골로 내려갔다. 시골로 내려가서 일 년 정도 지내신 후 몸이 더 안 좋아져서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에 가셨다. 할머니는 요양원에 계실 때 끼니를 대부분 거부하셨다. 유일하게 드시는 게 바나나우유라고 해서 나는 바나나맛 우유를 잔뜩 사다 드렸다. 너무 많이 산 바람에 드시다가 질렸을 수도 있지만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많이 사게 되었다. 이제야 아빠가 간식을 그렇게나 많이씩 사다 드린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할머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인데 더 많이 못해주는 게 아쉬운 마음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 바나나맛 우유를 끝으로 나는 할머니에게 더 이상 간식을 사드릴 수 없게 되었다. 우리 할머니는 고운 모습으로 천국에 가셨고, 가끔씩 내 꿈에 나와 안부를 전해주신다. 나는 슈퍼에 갈 때마다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던 과자 새우깡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2년이 되었는데 그 시간 동안 한 번도 새우깡을 먹지 않았다. 바스락하는 그 소리에 할머니와의 추억과 그리움이 모조리 되살아날까 봐 못 먹겠다. 지금보다 더 할머니가 보고 싶은 날에는 내가 먼저 찾아서 먹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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