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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Oct 14. 2020

엄마를 이해하게 된 일곱 가지 순간

밥 짓는 냄새가 왜 좋아요?

나는 결혼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배웠다'라는 표현보다는 결혼 전에 모르는 게 너무 많았던 애송이라고 보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특히나 집안 살림을 하면서 엄마의 마음을 많이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인데 미처 몰랐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나처럼 엄마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던 철없는 딸, 아들이었다면 조금이나마 공감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적어본다. 결혼 이후 엄마를 이해하게 된 아주 사소한 것들을 모아보았다.  






1. "밥 짓는 냄새난다~ 너무 좋지?"


엄마는 밥을 할 때면 항상 밥 짓는 냄새에 감탄했다. 가끔은 얼굴을 가까이 대고 스팀을 쬐기도 하고, 나에게도 밥 냄새를 맡아보라며 권유했다. 그럴 때면 나는 퉁명스럽게 "잘 모르겠는데?" 하고 휙 돌아서 부엌을 나섰다. 사실 그땐 정말 몰랐다. 그 냄새가 왜 좋은지, 갓 지은 밥이 왜 더 맛있는지도 몰랐던 때였으니까. 


정말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결혼 전에 한 번도 밥을 지어본 적이 없다. 결혼 후에 내 손으로 밥을 해보고 나니 단 번에 엄마의 말을 알게 되었다. 밥 냄새에는 그 고유의 고소한 냄새가 좋은 것도 있지만 쌀을 씻고, 밥솥에 앉히고, 밥이 완료되어 뚜껑을 열었을 때 윤기가 좔좔 흐르는 모습에 대한 기대감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기에 더욱 밥 냄새가 좋게 느껴졌던 것이다. 


편하게 엄마가 해준 밥만 먹고살았던 나는 '밥'에 대해 어떠한 노력도 기대감도 담겨있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의 감정을 알지 못했다. 이제는 밥을 안쳐 놓고 거실에 있다가 밥 냄새가 솔솔 풍겨오면 항상 남편에게 쪼르르 가서 얘기한다. "여보 여보~ 밥 냄새난다! 너무 좋지?" 매번 똑같은 질문이지만 착한 남편은 내 말에 늘 긍정해준다. 이럴 때면 엄마의 질문에 무뚝뚝했던 과거의 나 자신에게 가서 꿀밤을 콩 때리고 오고 싶다. 




2. "사골국이니까 남김없이 다 먹어~"


엄마는 할머니를 위해 종종 사골국을 끓였다. 사골국은 몇 시간을 주방에 내내 붙어서 끓여야 하다 보니 시간과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이다. 물론 맛도 좋다. 나도 엄마가 사골국을 끓일 때면 밥을 말아서 김치에다 야무지게 먹었다. 하지만 사골국의 특성상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또 먹어야 한다. 그럼 첫날과 다르게 이튿날부터는 금방 질려서 조금씩만 먹었다. 혹은 먹다 말고 싫증이 날 때는 국물을 남기곤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사골국물인데 다 먹어야지 왜 남겨~"라고 핀잔을 줬다. 내가 볼 때는 그냥 허연 국물일 뿐인데 그것 좀 남기는 게 뭐 큰 일인가 싶었다. 


결혼 후, 양가에서 귀한 음식을 해주시거나 사다 주실 때면 나와 남편은 서로에게 말한다. "이거 몸에 좋은 국물이야. 다 먹자" 그리고서는 설거지하듯이 깨끗하게 국그릇을 비운다. 양가 어머니들께서 우리를 위해 좋은 음식을 해주신 걸 알기 때문에 이제는 그 정성과 사랑을 남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몸을 챙기는 나이가 돼서 그렇기도 하고. 이제는 친정집에 가서 밥 먹을 때 엄마가 퍼 준 국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는다. 




3. "밥을 왜 애매하게 펐어~ 밥통 싹 비워야지"


밥을 담는 사람은 주로 엄마였으나 나는 내가 먹을 만큼만 담고 싶어 해서 엄마는 내 밥그릇을 항상 따로 빼두었다. 엄마는 가족들이 먹을 만큼 알맞게 분배하여 밥을 담았고, 내가 먹을 양도 예상하여 딱 그만큼 남겨두었다. 하지만 나는 다이어트를 한다고 한 공기를 꽉 채우지 않고 항상 절반이나 2/3 가량만 담았다. 그러면 밥솥에는 애매하게 1/3 공기 정도의 적은 양이 남아 있었다. 


그러면 엄마는 "아니 이거 남겨서 어떡하라고, 싹 비워야지"라고 하였고, 나는 많이 먹기 싫다며 거부했다. 그 남은 밥은 엄마의 몫이 되었다. 그 자리에서 더 드시기도 하고, 혹은 찬 밥으로 두었다가 다음 날 드시기도 했다. 엄마의 그런 모습이 어릴 적에도 미안하긴 했지만 엄마니까 당연히 치러야 할 희생이라고 봤던 것 같다. 


결혼 후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나도 엄마처럼 남편에게 한 마디씩 꼭 한다. 이렇게 애매하게 남겨서 어떡할 거냐고. 그렇다고 억지로 먹으라고 할 수는 없고, 내가 먹기도 싫으니 애매한 양이더라도 냉동실에 얼려둔다.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 텐데 내가 주방 살림을 맡게 되니 이제야 알게 됐다. 




4. "밥 먹을 때 꼭 김치랑 같이 먹어~"


엄마가 나를 위한 1인상을 차려줄 때면 꼭 김치도 줄지 한 번씩 물어봤다. 왜냐면 나는 특정 음식을 먹을 때를 빼고는 김치를 잘 안 먹었기 때문이다. 국에 밥을 말아먹거나 카레와 같이 비벼 먹는 음식에만 김치를 곁들였을 뿐 평소 식사에는 김치 없이 먹었다. 그래도 엄마는 마른반찬만 먹으면 목 막히지 않냐며 김치를 같이 먹으라고 조금씩 내주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쪼끔만, 진짜 쪼금만 줘"라고 했다. 


나와 반대로 남편은 김치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사람이다. 연애 시절에는 크게 인지하지 못했으나 결혼 후에 밥상에 김치가 빠져 있을 때면 남편은 늘 김치를 찾았다. 결혼하면 닮아간다더니 남편의 식습관이 금세 베였다. 밥 먹을 때 김치는 필수, 없으면 이를 대체할 아삭한 무언가가 꼭 필요하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생각해서 한 번씩 꼭 물어봤던 건데, 왜 자꾸 물어보는지 의아했던 내가 참 바보 같다. 지금이라도 엄마의 뜻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이제는 늘 친정집에 가면 김치부터 찾게 되고, 집에 갈 땐 한 통씩 얻어온다.




5. "전 부치는 것만 같이 도와주라~"


우리 집은 명절 때 차례를 지내진 않았지만 할머니를 모시고 있어서 연휴 마지막 날 친척들이 모두 우리 집으로 모였다. 그래서 엄마는 혼자서 친척들을 위한 명절 상을 준비했다. 물론 아빠도 함께 도왔지만 대부분은 엄마의 몫이었다. 아빠가 도와준 건 전 부치기 뿐이었다. 물론 전 부치기도 혼자서 다 하기엔 어려운 메뉴이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나와 오빠에게 도움 요청을 했다. 


나는 열심히 도와줄 때도 있고, 조금만 하다가 힘들다며 도망친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철없는 행동이다. 시댁에 와서 작은 어머니 두 분과 함께 전을 부치는 데도 허리가 빠질 듯이 아프고 기름 냄새에 질려 오는 걸 처음 느꼈다. 옆에서 도와주는 누군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모르고 도망 다닌 철없던 내 모습에 큰 반성을 했다. 


 


6. "집에선 머리 좀 묶고 있어"


나는 대체로 긴 머리 스타일을 유지했고, 묶고 지내는 일은 드물었다. 집에 와서도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있었다. 엄마는 그런 내게 머리 좀 묶고 있으라며 잔소리를 했다. 나는 머리를 묶는 게 싫어서 엄마의 말을 무시했다. 드라이기를 쓰고 난 후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직접 치웠지만 알게 모르게 거실, 부엌 곳곳에 내 머리카락은 잔뜩 떨어졌을 것이다. 그때는 그게 지저분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결혼하자마자 나는 내 머리카락이 이렇게 많이 떨어지는지 처음 알았다. 결혼 후에 남자들이 깜짝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와이프의 머리카락'이라는 말을 우스개 소리로 듣곤 했는데 남편보다 내가 더 놀랐다. 그래서 집에 오면 무조건 머리부터 먼저 묶었고, 떨어진 머리카락이 눈에 보이면 바로바로 치우게 되었다. 덩달아 시댁이나 친정집에 갈 때면 꼭 머리끈을 챙겨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머리를 묶는다. 




7. "우리 딸~ 청소해줘서 너무 고마워"


나는 가끔 주말에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집안 청소를 했다. 청소를 즐겨 하진 않았지만 유일하게 청소기를 돌리는 일에는 흥미를 느꼈다. 그렇게 집안을 다 청소하고 나면 아주 가끔씩 걸레질까지 했다. 실내용 대걸레가 있었지만 깨끗하게 닦이는 맛이 없어서 손걸레로 닦았다. 그렇게 걸레질까지 마치고 나면 온 몸에 땀범벅이 되었지만 뿌듯한 마음으로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엄마가 집에 오자마자 나는 바로 "엄마 내가 청소기 돌리고, 걸레질까지 다 했어!"라고 생색을 냈다. 엄마는 정말로 감동한 듯이 내게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가끔은 엄마에게 예쁨 받는 게 괜히 쑥스러워서 청소한 걸 비밀로 하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는 먼저 알아차리고 고마워했다. 난 그냥 내가 치우고 싶어서 치운 건데 엄마는 왜 저렇게 좋아하실까 생각도 들었다. 


결혼 후, 이전 집보다 절반 이하의 작은 신혼집임에도 남편과 둘이서 치우려니 생각보다 꽤 힘들었다. 여전히 청소기 돌리는 일은 재미있지만 걸레질이 너무 힘들었다. 자연스레 바닥 걸레질은 남편의 몫이 되었다. 가끔 남편이 없을 때 물티슈로 부엌이나 거실 바닥만 닦는데 그때마다 참 엄마가 생각난다. 40년 가까이 혼자 청소를 해 온 엄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함께 살 때 더 많이 도와주지 못해서 죄송하다. 지금은 친정집에 물걸레 청소기가 생겼다. 손걸레보다는 잘 안 닦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엄마의 짐을 조금 덜어줄 수 있는 녀석이 생겨서 다행이다. 








돌이켜보면 왜 이렇게 쓸데없는 걸로 고집을 많이 부렸는지 모르겠다. 남들이 볼 땐 곧게 자란 딸이지만, 정작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무심한 딸이었던 것 같다. 나의 출가와 함께 엄마는 더 이상 내게 할 잔소리가 사라졌다. 친정집에 가서도 달라진 내 모습에 엄마도 어지간히 놀랐을 것이다. 뒤늦게나마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죄송함과 감사한 마음이 뒤섞여서 엄마만 생각하면 늘 눈물이 난다. 참 주책이다. 엄마에게 나는 어떤 딸로 기억되고 있을까. 아쉬운 마음 남지 않도록 있는 힘껏 잘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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