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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Sep 08. 2020

엄마에게선 지나간 유행이 보인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좋아하여 출퇴근길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관찰대상이 된다. 저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을까 궁리하는 재미에 빠지기도 한다.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맴돌던 한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전형적인 곱슬머리의 60대 아줌마였다. 평범한 옷차림이었지만 내 시선을 끈 건 손에 들린 핸드백이었다. 반짝거리는 은색의 주름진 핸드백으로 작년에 한 차례 잠깐 유행하고 사라진 가방 디자인이었다. 아주머니가 그 화려한 가방을 사셨을 것 같진 않고, 저건 분명 딸이 싫증 나서 안 쓰는 가방을 엄마가 들고 나온 게 분명했다.


그 후로 며칠간 주변의 모든 아줌마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한껏 차려입은 어머니들에게 이런 언발라스를 찾을 순 없었지만 대체로 소박한 어머니들에게선 그런 특징들이 눈에 띄었다. 자식이 신던 휠라 어글리 슈즈를 신으신 어머니도 있었고, 20대 여성들이 한창 들고 다니던 에코백을 멘 어머니도 볼 수 있었다.




물론 어머니들의 취향일 수도 있고 혹은 딸이 직접 엄마를 위해 사준 것일 수도 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내가 쓰던 것을 자주 물려받았다. 그때는 몰랐다. 나는 그냥 버리려던 건데 엄마가 왜 버리냐며 가져가실 때면 '내 꺼가 마음에 드셨나?'라는 철없는 생각뿐이었으니까.






나에겐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던 나이키 운동화 한 켤레가 있었다. 나름 비싼 돈 주고 샀지만 막상 사놓고 보니 색깔이 마음에 안 들어서 자주 신지 않게 되었다. 그 운동화는 자연스레 엄마 것이 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운동화를 주면서 괜한 생색을 냈다. "엄마~ 이거 신상으로 산 거야. 엄마 신어!" 그렇게 나이키 운동화는 결혼할 때 자연스레 친정집에 두고 왔고 내 머릿속에선 차츰 사라졌다.


1년 후,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부모님은 오랜만에 딸과의 여행에 많이 설레어 보였다. 그때 엄마가 신은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두고 간 나이키 운동화였다. '편하니까 신었나 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제주에서 찍은 사진들을 카카오톡으로 엄마에게 보냈다. 엄마는 재빠르게 프로필 사진을 제주 여행 사진으로 바꿨다. 나는 엄마의 프로필 사진을 본 김에 이전 사진들까지 옆으로 넘기며 보기 시작했다. 엄마는 대부분 아빠 또는 친구들과 나들이 갔을 때 찍은 사진을 프로필로 해두었다.


엄마의 사진을 넘기다 보니 모든 신발이 똑같았다. 내가 준 나이키 운동화였다. 엄마는 다른 신발도 많았지만 여행, 나들이와 같이 특별한 날에는 그 신발을 신고 간 것이다. 나에겐 한참 마음 떠나버린 옛 신발인데 엄마에게는 아직도 소중한 운동화였던 것이다. 딸이 준 운동화, 그것도 새것이나 다름없는 좋은 운동화란 생각에 놀러가는 날에만 아끼듯이 신고 계셔서 마음 한 구석이 찌릿해졌다.


생각해보니 엄마에겐 내 물건이 참 많다. 내가 사회초년생 때 주로 입던 블라우스들을 버릴 때, 엄마는 멀쩡한 옷을 왜 버리냐며 따로 챙기셨다. 그리고 그 옷을 가족 외식을 할 때나 친구들을 만날 때 종종 입곤 하셨다. 20대 중반에 사 둔 꽃무늬 백팩도 나는 2~3년 쓰고 금방 싫증이 나서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엄마는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 나의 백팩을 쓰곤 하셨다.


엄마는 단순히 아까워서 내 물건을 그렇게 오래 소중히 여기셨을까? 엄마의 알뜰함도 한 몫 했지만 엄마는 어쩌면 딸이 쓰던 거라 더 아끼는 마음으로, 쉽게 버리지 못하고 오래오래 쓰셨던 것 같다. 차라리 내가 좋은 것들을 썼더라면 엄마에게 덜 미안할 텐데 나이키 운동화를 제외하고는 한 철 유행하던 제품을 샀던 거라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오래 아끼지 않아도 될 만한 물건인데 '딸'이 썼던 것에는 특별한 애착이 생기셨나 보다.






나는 오늘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본다. 노스페이스 백팩을 메고 가는 중년의 아저씨가 보인다. 한 번 눈에 띄고 나니 동일한 백팩을 멘 아저씨들을 며칠간 여러 명 만날 수 있었다. 10~15년 전 젊은이들에게 유행하던 저 가방은 이제 모두 부모들의 소유가 되었다. 버려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쓰인다는 것은 좋은 거지만 왜 괜스레 슬퍼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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