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주디 Aug 31. 2020

임신 초기,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임신 6~7주가 되었을 때 주변에 임신 사실을 조금씩 전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극초기라서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에는 조심스러워 가족과 회사 사람들에게만 먼저 알렸다. 회사에 일찍 말한 이유는 최대한 빨리 단축근무를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우리 회사는 모든 이의 경조사를 공유하여 함께 축하해주고, 위로해주는 특성이 있는데 역시나 나의 임신 소식을 대표님께 전하자마자 금방 전 직원에게 알려졌다. 


이전에 결혼 소식을 알릴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직원들은 내게 진심 어린 축하를 해주었고, 어떻게든 배려를 해주려는 마음이 많이 느껴져서 참 고마웠다. 시간이 조금 흘러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소식을 조금씩 전하기 시작했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뻐해 줘서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정말 대단한 거구나 새삼 놀랐다. 


사람들은 한 바탕 축하를 해주고 난 뒤 여러 질문들을 했다. 마치 결혼 소식을 알릴 때,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 "신혼집은 어디야?", "프로포즈 받았어?"와 같은 고정 멘트들이 뒤따라오듯 임신 소식에도 이러한 질문 레퍼토리가 있는 듯했다. 사실 주변에 임신한 친구들에게 내가 어떠한 질문을 했었는지 잘 기억도 안 날뿐더러 나는 그냥 예정일만 물어봤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예정일을 묻는 말 외에 모든 질문들이 낯설었다. 어떤 말은 참 고마웠고, 어떤 건 좀 의아했으며, 때로는 조금 속상하기도 했다.  






01. 컨디션은 괜찮아?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임신과 동시에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게 느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컨디션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갑자기 쏟아지는 잠 기운에 정신 못 차리고 헤롱거리기도 했다. 다행히 회사 동료나 지인들 중에는 임신을 직접 또는 가까이서 접한 사람들이 많았고 나의 컨디션에 대해 자주 걱정해주었다. 


어제 괜찮았다가도 오늘 다시 나빠지고, 오늘 오전엔 좋았다가도 오후에는 다시 엉망이 되는 게 임산부의 컨디션이기에 수시로 내 상황을 물어봐주는 게 참으로 고마웠다. "지금은 너 몸이 최우선이야.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너한테만 집중해!"라고 말해주는 선배 동료의 말에 특히나 큰 위안을 얻었다. 사실 업무에 방해가 될 정도로 컨디션이 떨어질 때도 있어서 나 때문에 우리 팀원들이 고생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매우 많았다. 하지만 팀원들도 내 상황을 이해해주고 어려운 커뮤니케이션은 팀장님이 대신해주는 등 많은 배려를 받아서 참으로 감사했다. 


지금껏 나는 임신한 친구들이나 동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먼저 건네지 못했던 것 같은데, 겪어보고 나니 이렇게 작은 말 하나가 많은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주변에 임산부 동지가 생긴다면 꼭 챙겨주고 싶다. 




02. 아기 성별은 나왔어?


임신을 하면 아들일지 딸일지 엄청 궁금할 줄 알았는데 첫 아이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다. 내 컨디션이 안 좋다 보니 이로 인해 아기에게 나쁜 영향을 주진 않을까 걱정만 앞섰지 아기 성별에 대한 궁금증은 오히려 임신 후에 사라졌다. 오직 아기가 건강하게만 태어났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무관심한 나와는 다르게 주변 사람들은 모두 지나가면서 한 마디씩 물었다. "아기 성별 나왔어?", "딸이면 좋겠어, 아들이면 좋겠어?" 우리 아기의 성별에 대해 이 정도로 관심이 많았던 걸까 조금 의아하기도 했지만 이런 질문은 결혼 소식에 으레 뒤따라 오는 "신혼여행 어디로 가?"와 같은 고정 멘트라 생각이 들어서 그러려니 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직 안 나왔어요~ 저는 그냥 건강하게만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럼 또 뒤이어 물었다. "그래도 딸이면 좋겠어? 아들이면 좋겠어?"라는 질문이 이어졌고, "딸이면 좋겠지만 아들이어도 상관없어요~"라고 답했다. 만약 내가 둘째나 셋째 아이를 임신한 거라면 성별이 무척이나 궁금했겠지만 처음이다 보니 그저 아기를 가졌다는 그 사실 자체에 감사할 뿐 성별을 따질 필요가 없어졌다. 양가 부모님 역시 특정한 성별을 원하기보다는 축복해주시고, 건강한 순산만을 바라고 계셔서 더욱 그런 것 같다. 




03. 태교 여행은 안 가?


누군가에게 이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아직 임신 초기라서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불안하던 때였으며 또한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간다는 게 불가능한 시국이기도 해서이다. 물론 코로나가 지금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어서 국내로 여름휴가를 가는 사람들도 제법 있던 때였다. 그래도 임산부이기에 더욱 이동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런 질문을 받자 황당했다. 


이 질문을 한 사람이 단 한 명이 아니라는 게 더욱 놀라웠다. 임신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대부분 임신 경험이 있는 엄마 또는 아빠분들의 질문이었다. 이만큼 태교여행이란 게 모든 임산부들의 관례인 줄은 모르고 있었다. 듣고 보니 이때가 아니면 남편과 단둘이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쉽게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최후의 식사인 것처럼 태교여행을 다녀온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됐다. 


하지만 내 최대의 관심사는 임신 초기의 안정이었다. 유산 확률이 가장 높은 때라서 걱정도 많이 했고, 무엇보다 컨디션이 정말 심각하게 떨어지는 날이 많아서 나와 아기의 건강에만 신경 쓸 뿐 태교여행 따위는 정말 안중에도 없었다. 시기에 맞지 않는 앞선 질문이 나같이 예민한 임산부들에게는 큰 당황스러움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04. 회사는 계속 다니려고?


다른 질문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 마지막 질문은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우리나라 워킹맘에 대한 한계 때문인 건지 아니면 나의 평판 때문인 건지 혼란스러웠다. 사실 나는 퇴사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다. 출산 및 육아 휴직 이후에도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다. 아이도 소중하지만 이 직업을 얻기 위해 달려온 20대와 그간 쌓아둔 나의 커리어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내 바람일 뿐이다. 육아라는 거친 현실에 부딪혀서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임신과 동시에 퇴사 얘기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어쩌면 배려의 말일지도 모른다. 임신 중에 최대한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회사라는 공간은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를 받는 장소이기에 아이를 위해 퇴사를 선택하는 게 현명한 판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선택지에는 없던 사항이기 때문에 쉽게 배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누군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쟤는 결혼하면 바로 회사 그만둘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현모양처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해 보이는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내가 임신을 했을 때 '쟤는 그럼 이제 회사 그만두겠네'라고 생각했다면 마음이 쓰릴 수밖에 없다. 내가 업에 대한 열정이 부족해 보여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임신, 육아와 동시에 일을 포기해야 하는 그러한 슬픈 사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회 내에 워킹맘에 대한 배려가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사실 나 조차도 그랬다. 지금 내가 회사에서 받고 있는 배려들이 너무 죄송하게 느껴졌다. 업무량을 조절해주고, 2시간 단축근무를 시행하는 게 타인들에게 방해가 되지는 않을지, 혹은 '임산부 특혜 아니야?'라는 생각을 갖게 하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이러한 내 걱정거리를 친구에게 말했더니 "네가 회사에서 8년 넘게 근속해왔는데 그 정도의 배려는 당연한 거다. 미안해하지 말아라."라고 나를 토닥여줬다. 그리고 나와 같은 케이스를 회사 내에 많이 만들어 내서 여성 직원들이 임신 후에도 편하게 회사에 다닐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친구의 말처럼 이러한 배려가 당연시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임산부 특혜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 설문조사에서 지하철에서 임산부를 위한 자리를 비워두는 것을 '특혜'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이 꽤나 많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이러한데 어떻게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지금껏 이러한 시선 속에서 견뎌온 선배 워킹맘들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임신을 하고 나니 몰랐던 세계가 하나 더 열린 것만 같다. 아이를 낳고 나면 이보다 더 큰 세계가 또 열린다고 한다. 지금껏 그 길을 묵묵하게 걸어온 선배 엄마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내가 받은 배려를 누군가가 다시 느낄 수 있도록, 상처는 다시 느끼지 않도록 나 또한 좋은 초석을 깔아놓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두 줄을 보고 울 줄은 몰랐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