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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Aug 12. 2020

내가 두 줄을 보고 울 줄은 몰랐어

소중한 생명이 찾아온 순간

결혼한 지 만 2년을 채우고 우리 부부에게 소중한 축복이 찾아왔다. 예상보다 빠른 소식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식이라 허둥지둥 아기를 맞이한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바로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한 그 날이다. 


생리 주기가 정확한 편인데 예상일에 시작하지 않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퇴근길에 테스트기를 사 왔다. 사실 그 날은 남편이 며칠 전 사다둔 비싼 맥주를 개봉하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에이 임신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90% 였지만 혹시라도 임신이 맞다면 맥주를 마시면 안 된다는 생각에 바로 테스트기를 샀다. 


어쩐지 요즘 잠이 많아졌다 싶었는데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테스트기를 해보았다. 대조선에 선명한 한 줄이 생겼고 '역시 아니네 오늘 맘 편히 맥주 마셔야겠어'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테스트선에 조금씩 희미하게 한 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5분 정도 지켜봐야 한다기에 바닥에 테스트기를 내려놔 수평을 맞추고 잠시 화장실에 우두커니 서서 테스트기를 바라봤다. 



3분가량 지나자 양쪽에 선명한 두 줄이 보였다. 임신테스트기를 해 본적이 몇 번 없어서 이게 진짜 임신이 맞나 헷갈리면서도 왠지 모를 확신이 들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벅찬 감정이었다. '내가 아이를 가졌다니..!' 갑자기 두 눈에 눈물이 흐르고 감사한 마음이 솟구쳤다. 한편으로는 순간적인 패닉도 느꼈다. '아직 우린 아무런 준비가 안 되었는데 어쩌지..' 하며 당황스럽기도 했다. 


정신을 차리고 거실로 가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생각에 빠졌다. 이 중대한 소식을 남편에게 재빨리 말하고 싶은데, 한 편으론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집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남편이 집에 도착하기 전, 그 짧은 찰나에 아무렇지 않은 척 메시지를 보내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전까지 계속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임테기 사진을 찍어서 육아카페에 물어봤다. "조금 연하게 두줄이 뜬 것 같은데 임신이 맞나요?"라는 물음에 많은 선배 엄마들이 줄줄이 댓글을 달아주었다. "아주 선명한 두 줄인걸요! 임신 축하드려요!" 그 댓글들을 보고 또 한 번 벅찬 마음에 펑펑 울었다. 


몇 분 후 남편이 집에 도착했다. "왔어? 얼른 씻고 밥 먹어"라고 나름 연기를 하고 부엌에서 그의 행동을 기다렸다. 임신테스트기는 화장실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남편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그것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어? 이게 뭐야.. 설마" 하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남편 눈이 촉촉해지려는 것을 보자마자 나는 눈물이 터져버렸다. "여보 우리 아이 생겼어.. 엉엉" 내가 너무 크게 울어버리자 남편은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새로운 임신 테스트기로 한 번 더 확인을 해보았고 다시 선명한 두 줄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임신 4주밖에 안 되는 극초기라서 부모님께는 당분간 소식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병원에서 아기집과 난황을 확인한 후 알려드리기로 했다. 며칠 후 초음파로 난황을 확인하였고 주말에 친정집에 갔다. 




친정집에 가기까지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는 게 또 어려웠다. 마치 어릴 적 엄마 몰래 연애를 할 때 비밀로 하던 느낌이랄까. 부모님께 소식을 전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우리는 미리 알리지 않고 꼭 직접 전하고 싶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 아빠에게 선물이 있다며 잠깐 앉아보라고 했다. 남편은 내 뒤에서 슬쩍 카메라를 꺼내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지인에게 선물 받은 배냇저고리 상자 안에 초음파 사진과 작은 쪽지를 적어서 넣어뒀다. 마치 우리 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쓴 듯한 내용으로 적었다. 


부모님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상자를 꺼냈고, 뚜껑을 여는 순간 마주한 정체를 보고 깜짝 놀라시며 "어머 너.." 하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 아빠는 잠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눈이 휘둥그레졌고, 엄마는 연달아 "정말 축하한다!" 하며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엄마의 그 목소리와 표정을 보고 내가 먼저 울음이 터져버렸다. 내심 엄마 아빠가 감동해서 우는 모습을 영상에 담고 싶었는데 내가 선수 치는 바람에 엄마 아빠는 나를 달래주기만 하였다. 뒤늦게 엄마의 눈시울도 붉어지며 글썽거리셨고 그 모습을 보니 정말 내가 큰 선물을 안겨드린 것만 같아서 행복했다. 


마찬가지로 시부모님들께도 똑같이 서프라이즈로 소식을 전하였다. 두 분도 진심으로 기뻐해 주셨고, 시댁에서도 또 나 혼자 울음이 터져 뒤돌아서 몰래 눈물을 훔쳤다. 안 그래도 울보였던 나는 아이를 갖고 나니 감정이 더 격해졌는지 수시로 눈물이 났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기쁜 소식을 전달하는 일이 얼마나 가슴 떨리고 귀한 일인지 이번 일을 통해 처음 느꼈다. 건강하게 출산하여 예쁜 손주를 얼른 안겨 드리고 싶다는 마음도 커졌다. 그리고 이렇게 소중한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우리 아이에게도 고마웠다. 아직 아무것도 준비 안 된 예비 엄마이지만 이때의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며 아이와의 만남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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