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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Jul 16. 2020

“아빠가 같이 가 줄까?”

얼마 전, 부동산에 갈 일이 많았다. 전세 만기가 끝나고 새로운 집을 알아봐야 했기 때문이다. 연장을 할까도 고민했지만 현재 사는 곳의 주변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치솟는 집값에 여러 번 멘붕도 오고 좌절도 하고, 미리 사지 않은 것에 후회도 했다.


후회해 봤자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이리저리 머리 굴려봤자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매매하기로 결정했다. 투자 목적이 아닌 실거주 목적이므로 집값에 너무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마침 우리의 우선순위를 충족하는 곳을 발견해서 빠르게 매매 결정을 내렸다. 급매로 뜬 매물이라 시가보다 조금 싸게 나와 있었고, 특수한 상황이라 집을 보지도 못하고 부동산과 전화로 가계약을 했다. 불안한 요소가 많았지만 부동산을 믿고 진행했다.


사실 이사를 가야겠다고 100% 확정한 상태도 아니었는데 이 매물을 네이버 부동산에서 보자마자 확신이 생겨서 급하게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양가 부모님께는 뒤늦게 이사 및 매매 소식을 알리게 되었다. 역시나 우리의 사정을 듣자 양가 모두 걱정하기 시작했다.


"아니 집을 안 보고 계약을 하는 게 어디 있어?"

"왜 시세보다 싸게 나온 거야? 하자 있는 거 아니야?"

"등본 잘 확인해 봤어? 계약금은 어디로 보냈어?"


나 또한 사기를 당하는 게 아닐지 많이 불안했다. 본계약을 하러 가는 날, 도착하기 30분 전부터 엄마, 아빠에게 번갈아가며 계속 연락이 왔다. 혹시 문제가 있는 건 아닐지 걱정되는 마음에 이런저런 질문들을 수없이 하셨고, 나도 불안하던 차에 부모님의 불안이 더해져서 결국 전화로 짜증을 내버렸다.


딸을 생각하여 걱정해주는 마음을 곱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짜증으로 받아쳐서 전화를 끊고 너무 속상했다. 그래도 엄마, 아빠는 철없는 딸에게 똑같이 짜증을 내기는커녕 계속 걱정해주셨다. 집주인을 만나서 사정을 듣고 나니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이해했고 비로소 우리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계약을 하자마자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시고는 이해하는 마음 반, 여전히 걱정되는 마음 반이셨다. 우리는 중도금을 치르는 날 등기가 바뀌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부동산에 또 가야 했다. 이 말을 듣자 아빠는 "그날 아빠가 같이 가 줄까?"라고 했다. 다 큰 30대 딸내미의 집 문제가 얼마나 걱정되었으면 부동산에 같이 따라올 생각을 하셨을까. 아빠의 그 마음이 느껴져서 통화를 하다 울컥했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안 와도 돼~ 나랑 조서방이 알아서 잘하니까 걱정 마"라고 안심시켜드렸다.






아빠의 그 말 한마디에 3년 전 일화가 생각났다. 결혼 전이라 부모님과 한 집에 살고 있던 때의 일이다. 아빠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고, 나는 내 방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내 방은 거실에서 한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해있다. 무슨 이유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나는 침대에 누워있다 급하게 뛰어내려 왔다. 그때 침대 위에 있던 이불이 미끄러져 발을 심하게 헛디뎠고 손으로 바닥을 지지할 새도 없이 얼굴을 바닥에 부딪히며 넘어졌다.


하필 나는 앞니로 장판을 콱 찍으며 넘어졌는데, 그 짧은 순간을 모두 보고 있던 아빠가 놀라면서 내게 달려왔다. 정말 큰일 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괜찮냐고 물어봤다. 난 아픈 것도 잠시 잊고, 아빠의 그런 표정을 보고 마치 길에 넘어진 네 살 아이가 된 것 마냥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다행히 내 앞니는 멀쩡했고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제야 아빠는 안심하며 “우리 딸 다치면 안 된다~”라고 다정하게 말했다. 나는 방에 들어가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또 울음을 터트렸다. 아빠의 놀란 표정과 진심어린 말이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 아니 10대 이후에도 아빠의 그런 표정을 본 기억이 없다. 60대의 아빠와 30대의 딸일지라도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30년 전과 변함없이 따뜻하다는 걸 느꼈다.






그렇게 우리의 우여곡절 첫 집 구매가 이뤄졌다. 다시 생각해도 부동산 가던 길에 부모님께 짜증을 냈던 게 참 미안하다. 신경 써주신건데 되려 짜증을 낸 내가 참 어린애 같다. 어쩌면 나는 평생 엄마 아빠에게 어린애 같은 존재니까 그래도 될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진짜 어른이 되어버리면 엄마 아빠가 서운해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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