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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Aug 16. 2021

아기에게 쓰는 첫 번째 편지

배 위에 잠든 아기를 보며

아가야, 오늘은 네가 태어난 지 169일 된 날이야.

사실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엄마에겐 너와 함께하는 모든 나날이 소중하기에 오늘을 기록하고 싶어.


겨우 손가락만 꼬물거리던 네가 어느새 뒤집기 달인이 되어 있고, 모든 물건을 잡아서 입으로 가져가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 생각해. 미묘하게 다른 울음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도 웃기고.


순둥이 아가와 무던한 엄마가 만나서 남들보다 못해주는 것은 많지 않을까 걱정도 해. 이렇게 편하게 육아를 해도 되는 걸까? 너는 손수건 한 장만 쥐어줘도 재미나게 놀고, 엄마가 부엌에서 일하다 거실에 있던 너와 눈만 마주쳐도 까르르 웃어주는 천사 같은 아이란다. 이런 너를 만나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해.


너에게 내가 어떤 존재가 되어 줄까 곰곰이 생각해봤어. 친구 같은 존재가 되어줄까? 글쎄. 네가 친구를 사귀기 전까진 그럴 수 있겠지만 학교를 다니고, 엄마 아빠보다 친구가 더 좋아지는 시기가 올 텐데 말이야. 커가면서 생기는 너의 모든 고민을 엄마에게 털어놓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그저 네가 독립하기 전까지 엄마는 묵묵하게 너를 뒷받쳐 줄 거야. 그럼 버팀목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걸까. 엄마라는 것이, 부모라는 것이 원래 그런 존재인 거겠지?


아가야. 너는 엄마 배 위에서 자는 걸 제일 좋아했어. 엄마도 너의 온기를 느끼며 자주 같이 잠들 곤 했지. 네가 점점 무거워진다고 아빠에게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엄마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아. 네가 아빠 배 위에서는 잘 안 자고, 엄마에게만 의지한다는 것이 좋았어. 태아 때처럼 엄마의 심장 소리를 느끼며 자는 걸까. 이 시간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지금이 더욱 소중해져.


오늘도 아빠와 같이 집 앞 산책을 나갈 때 엄마가 일부러 너를 안고 나갔어. 허리도 아프고 땀도 나지만 엄마는 너를 안고 있는 시간이 무척 좋거든. 아기 때 너무 안아주면 부모 허리가 고장난다는데, 엄마는 지금의 너를 몸으로 기억하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더 안아주고 싶었어.


아가야. 엄마의 두서없는 편지가 당황스럽더라도 이해해줘. 잠든 너를 보면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다니거든. 오늘의 나를 반성하고, 내일은 더 잘해주고 싶다가도 잘해준다는 게 뭘까 다시 한번 고민하게 돼. 엄마의 희생만이 아이를 위한 건 아니란 생각에 엄마는 오늘도 편하게 너를 키워. 엄마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을 거야. 너는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 있을 테니까. 너무 별거 아닌 작은 고민들을 하느라 시간과 마음을 쓰지 않을 거야. 그 마음을 너에게, 그리고 엄마를 위해 쓸 거야.


하고 싶은 말이 아직도 수십 가지이지만 오늘은 여기서 마칠게. 이 편지는 네가 초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 대학교 1학년 그리고 서른 살이 넘어서 꺼내보았으면 좋겠어. 너의 성장의 깊이만큼 편지에 담긴 엄마의 마음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엄마는 너를 정말 많이 사랑해.

그 어떤 마음보다 가장 변함없을 거라고 확신해.

내일도 엄마와 함께 잘 지내보자.


2021년 8월 16일 밤,

너를 내 배 위에 눕힌 채로 써 내려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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