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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수수 Oct 05. 2020

여행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파리에 못 간 이유

 파리에 여행 가는 것을 자주 상상했었다. 각종 매체에서 심어준 판타지에 걸맞게 상상 속의 나는 센 강변에서 자전거를 탔고, 오래된 서점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글자들이 가득한 책을 골랐고, 에펠탑이 잘 보이는 풀밭에서 맥주도 마셨고, 카페테라스에 자리 잡고 앉아 커피도 마셨다. 미술관 투어나 쇼핑을 하지 않아도 그냥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완벽할 것 같았다.


 언젠가 한 번은 시누이와 수다를 떨다가 파리에 가고 싶다고 말하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 모습을 본 시누이는 파리행 티켓을 끊어주겠다 했다. 아이를 맡기고 갈 수도 없었고 데리고 가면 고생길이 훤했다.


 파리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항상 많았다. 이십 대엔 돈이 없었고, 결혼을 하고 나니 남편이 가고 싶어 하지 않았고, 돌보아야 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가지 못했다.


 파리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항상 많은데 나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편이 속한다. 주로 남편이 가고 싶은 나라였다. 남편은 가족 여행을 주도했고 나는 그것에 따랐다. 대체로 편안하고 안전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로 하늘 길이 닫히고,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 이어지자 의문이 찾아왔다. 나는 왜 파리에 가지 못했나?


 내게 용기가 없었다는 걸 깨닫는다. 남편 없이도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든 잘 가고 잘 노는 사람이라 자부했는데, 정작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용기가 없었다.


 모아둔 돈을 헐어서 내가 가고 싶은 나라에 여행 가겠다는 용기. 힘들게 모은 돈을 쓸 정도로 그곳이 정말 가고 싶나? 엄마를 찾아 울게 빤한 아이를 두고 가면 좋을까? 아이를 데리고 가면 내가 그곳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비행이 힘들지 않을까? 인종차별을 당하진 않을까?


 누군가는 그만큼 가고 싶지 않은 거라고 할 거다. 그런데 수백 번을 생각해봐도 파리에 가고 싶다. 정말 가고 싶나? 정말 사고 싶나? 이 쓸모없는 걸 사서 뭐하지? 나는 항상 처한 현실을 택하는 편이었다.


 모든 일엔 할 수 있는 때가 있다. 돈과 시간도 중요하고, 건강과 열정도 뒤따라 와줘야 한다. 시누이가 파리에 가라고 부추길 때 갈 걸... 이제와 후회해보지만 전염병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백신이 나온다면 나는 파리에 갈 거라고, 이번엔 용기를 내서 꼭 가겠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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