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인이 방 빼라고 했다
화요일 오전 10시 58분. 점심시간을 1시간 가량 남긴 그 시간에 문자가 한 통 왔다. 보통은 광고 문자이기에 팝업화면을 슬쩍 보고 제대로 안 읽곤 했는데, 그 문자는 좀 달랐다. 'XX빌라입니다. 임대계약이 7월에 종료 예정인데 그 이후에는 재계약을 할 수 없을듯 합니다." 아, 방 빼라는 통보 참 쉽네. 카톡 이별이 이런 기분인가? 나는 깜짝 놀라 주인에게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려줘야하는 문제라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장했다. 집주인은 빌라를 허물고 신축을 할 예정이라 비워줬으면 좋겠다며 '갑자기 이렇게 되어 미안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빡쳤지만 딱히 따질 말은 없었다. 어차피 그 집은 내 소유가 아니었으니까~ 미안하다는데 뭐 어째~
월세 30만원짜리 나의 집은 작지만 베란다, 부엌, 방이 잘 나눠져있어서 4년 째 살고 있었다. 햇빛 잘 들어오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옥탑도 반지하도 아닌 3층 집. 심지어 창문 앞에 막힌 것도 없어. 동네도 안전해. 우리 집에 놀러온 누군가는 누런 에어컨, 뽀사져가는 화장실 집기들을 보고 뭐라고 했지만 나는 이 집을 떠나기 싫었다. 30만원에 어디가서 이런 집을 또 구하나 싶었기 떄문이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깨끗이 설거지를 하거나, 선풍기를 틀어놓고 과일을 먹거나,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티비를 보고, 누군가를 초대해 술도 마시고. 30만원이면 나는 하루에 만 원꼴로 이 방을 빌리고 있었던 셈인데, 10년 간의 서울 생활 중 처음으로 '조금 집답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그야말로 킹갓가성비의 시간들이었다.
주인의 퇴거 통보 문자를 받은 이후로 나는 집에 들어갈 때마다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꼭 계약 연애를 하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끝을 아는 만남을 지속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좀 미련이 남았고, 만기를 채우자마자 바로 이사를 감행하던 과거의 모습과는 좀 다른 스스로에게 당황스러웠다. 10년 간의 서울생활에서 아마 집으로부터 이별통보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랬나. 옛날에 계약 연장 안 한다며 쿨하게 찼던 집들아, '갑자기 그렇게 해버려서 미안하다.'
아무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9월 말 경에 길바닥에 나앉는게 현실이 된 나는, 또다시 2년 간 빌릴 집을 구해야하는 큰 미션이 생겼다. 집을 구하는 과정이 살갑기를, 또 새로 구한 집에 금방 정이 들 수 있기를, 이번 집을 싹 잊을만큼 모든 것이 적당하기를 바라며, 4년 전 지금 사는 집을 구해줬던 부동산에 들렀다.
"아가씨, 이 집은 어때요? 건축 중인데."
"근린생활시설 아닌가요? 대출이 안되지 않아요?"
"대출 되지!"
"엥? 전세자금대출 안 될텐데?"
"에이~ 신용대출하면 되지."
헤헤, 그래, 이게 이사의 맛이지.
또 다시 이사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