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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Jun 18. 2020

갑자기 이렇게 되어 미안합니다

집 주인이 방 빼라고 했다

화요일 오전 10 58. 점심시간을 1시간 가량 남긴  시간에 문자가   왔다. 보통은 광고 문자이기에 팝업화면을 슬쩍 보고 제대로  읽곤 했는데,  문자는  달랐다. 'XX빌라입니다. 임대계약이 7월에 종료 예정인데  이후에는 재계약을   없을듯 합니다." ,  빼라는 통보  쉽네. 카톡 이별이 이런 기분인가? 나는 깜짝 놀라 주인에게 보증금이나 월세를 올려줘야하는 문제라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장했다. 집주인은 빌라를 허물고 신축을  예정이라 비워줬으면 좋겠다며 '갑자기 이렇게 되어 미안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 빡쳤지만 딱히 따질 말은 없었다. 어차피  집은  소유가 아니었으니까~ 미안하다는데 뭐 어째~



월세 30만원짜리 나의 집은 작지만 베란다, 부엌, 방이 잘 나눠져있어서 4년 째 살고 있었다. 햇빛 잘 들어오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옥탑도 반지하도 아닌 3층 집. 심지어 창문 앞에 막힌 것도 없어. 동네도 안전해. 우리 집에 놀러온 누군가는 누런 에어컨, 뽀사져가는 화장실 집기들을 보고 뭐라고 했지만 나는 이 집을 떠나기 싫었다. 30만원에 어디가서 이런 집을 또 구하나 싶었기 떄문이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깨끗이 설거지를 하거나, 선풍기를 틀어놓고 과일을 먹거나,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티비를 보고, 누군가를 초대해 술도 마시고. 30만원이면 나는 하루에 만 원꼴로 이 방을 빌리고 있었던 셈인데, 10년 간의 서울 생활 중 처음으로 '조금 집답다'는 느낌을 받았으니, 그야말로 킹갓가성비의 시간들이었다.


주인의 퇴거 통보 문자를 받은 이후로 나는 집에 들어갈 때마다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꼭 계약 연애를 하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끝을 아는 만남을 지속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좀 미련이 남았고, 만기를 채우자마자 바로 이사를 감행하던 과거의 모습과는 좀 다른 스스로에게 당황스러웠다. 10년 간의 서울생활에서 아마 집으로부터 이별통보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그랬나. 옛날에 계약 연장 안 한다며 쿨하게 찼던 집들아, '갑자기 그렇게 해버려서 미안하다.'


아무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9월 말 경에 길바닥에 나앉는게 현실이 된 나는, 또다시 2년 간 빌릴 집을 구해야하는 큰 미션이 생겼다. 집을 구하는 과정이 살갑기를, 또 새로 구한 집에 금방 정이 들 수 있기를, 이번 집을 싹 잊을만큼 모든 것이 적당하기를 바라며, 4년 전 지금 사는 집을 구해줬던 부동산에 들렀다.


"아가씨, 이 집은 어때요? 건축 중인데."

"근린생활시설 아닌가요? 대출이 안되지 않아요?"

"대출 되지!"

"엥? 전세자금대출 안 될텐데?"

"에이~ 신용대출하면 되지."


헤헤, 그래, 이게 이사의 맛이지. 

또 다시 이사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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