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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May 04. 2016

취준생과 '스파게티'

병원에서 멍을 보여주며 처방을 구하는 사람은 없다.

카카오톡이 아닌 문자를 더 기다릴 때가 있었다.

‘취준생’ 일 때였다. “[Web발신]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그리고 기대하던 내용이 아닌 문자를 더 자주 받았다. 난 온몸으로 빵! 하고 부딪혔는데 손가락으로 틱! 튕긴 거 한 방에 날아가버린 느낌. 떨어지고나선 문자가 아니라 카카오톡을 기다렸다. 좌절 이후엔 응당 그렇듯 ‘괜찮아?’ ‘힘내!’ 누군가가 보낸 작은 연락 하나 간절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힘들다는 극악의 취업난. 게다가 사람을 잘 뽑지 않는다는 방송 업계에 취업 준비를 하다 보니 탈락은 일상이었다. 숨 쉬듯 서류 탈락, 외식하듯 1차 탈락, 머리 하듯 최종 탈락. 그 정도의 빈도로 겪었다. 그러니 어찌 매번 탈락했다고 상황을 전하고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마음엔 피멍이 들었지만 멍은 멍일 뿐이었다. 병원에서 멍을 보여주며 처방을 구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쿡 안 눌리 혼자 조심할 뿐.


그러나 스치는 접촉에도 따가워 일상을 불편하게 하는 멍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 콕콕 찔리곤 했다. ‘요새 뭐해?’라는 데면데면한 친구의 짧은 질문에도, ‘나 또 떨어졌어.’라는 연락에 오래 간 답이 없는 연인의 부재에도 그렇게 따끔거릴 수가 없었다. 내가 어리석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탈락, 연인의 부재, 인간관계… 멍을 아프게 하는 이 모든 것들은 나의 모자람으로 인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모자란 나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사람을 잃을까 그 멍의 존재를 무시했다. 그러나 작년 말, 열심히 준비한 회사에서 허무하게 탈락한 후 결국 나는 무시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철저히 숨길 수 없었기에 이미 사람을 예민하게 대하고 있었고 조금씩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 친구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


 “나 요새 너무 힘들어. 진짜 자존감이 너무 많이 떨어져서… 취준 하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 모습은 전부 다 사라진 것 같아. 이런 이야기하면 다들 싫어할 것 같고… 내 이런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나와 어울렸던 게 아니잖아.”


내가 말을 쏟아낸 그 친구는 당시 1년간 취업 준비를 하다 6개월의 긴 전환형 인턴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쩌면 더 힘든 일상을 마주하고 있던 친구는 나에게 카카오톡을 보냈다. 길지 않고 단호한 내용이었다.


“난 네가 방송 쪽에서 언젠가 일할 거라 생각해서 친하게 지냈던 게 아니야. 잘 놀고 잘 웃고 자유로운 모습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야. 옛날부터 네 생각들이 좋았던 거야. 그 생각들은 네가 살아오면서 형성된 거였고, 그게 바로 너고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아.”


취업준비를 하던 시기, 가장 힘이 됐던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이 친구의 이 카카오톡을 받았던 때라고 말할 수 있다. 청춘을 위로하기 위한 테라바이트의 콘텐츠가 떠도는 세상, 친구가 보낸 이 작은 킬로바이트의 문자가 선명히 마음에 들어왔다. 현실에도 해피엔딩은 있는지 결국 이 시기를 조금 넘기고 나는 취업을 했고, 친구도 인턴을 하던 곳에서 취업을 했다.


최근 배달의 민족에서 ‘배민신춘문예’라는 마케팅을 한다. 음식 이름으로 짧은 시를 짓는 행사이다. 하상욱 이후 시가 이런 방식으로 자주 소비가 되었기에 딱히 새롭지는 않았다. 그 와중, 스파게티라는 시를 보았다.


스 스로 아무것도 아니라 느낄 때

파 도에 밀려온 미역 떼기 하나도

게 에게는 마지막 이유일 수 있다

티 안 나는 인생도 훌륭한 인생이다


뜬금없이 만난 이 4행'시'를 보며 취준 시기, 미역 떼기 같은 친구의 톡 한 통이 상기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일은 생각보다 거창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시의 심오함을 찾지만 스파게티 하나가 우연한 위로의 메시지를 만들어내듯 말이다. 미역 떼기처럼 밀려온 친구의 카카오톡. 미역 떼기처럼 써진 스파게티라는 시. 이 작은 것들이 티 안 나는 게들에게는 충분할지도 모른다.


p.s. 아 참, 친구가 배달의 민족 PPT로 최종 합격했었다. 우연..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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