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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Apr 27. 2016

느낌 있는 '골목의 각질'

여전히 아름답고 여전히 우울하다

상경하고 ______을 처음 봤다.

저 밑줄에는 어쩐지, 연예인? 스타디움? 복합쇼핑몰? 과 같이 화려한 단어가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답은 ‘골목’이다. 박통 시절 조성된 계획도시에서 자란 나는 ‘골목다운 골목’을 본 적이 없었다.


골목을 만난 첫 기억은 20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오빠와 함께 살 투룸을 구하기 위해 부모님과 올라온 서울. ‘피터팬의 원룸 구하기’에 올라와있던 2000에 40짜리 방을 찾아갔다. 무슨 여행사의 신종 상품 골목투어도 아니고. 그야말로 언덕의 언덕, 서투른 미장 실력으로 발린 계단, 비루하게 솟은 가로등 아래 그 집이 있었다. 부스스한 남학생 두 명이 ‘저희 집 좋아요’라고 반겨주었다.


물론, 나는 거기가 싫었다. 골목은 생경하고 두려우니까. 귀가하다가 벽돌로 뒤통수를 맞고 질질 끌려간 뒤 4885가 내 장기를 팔아넘기는 시나리오가 절로 써졌다. 그렇지만 유구한 역사를 지녔으면서 집값도 천정부지인 이 도시에서 골목을 들어가지 않고서는 가성비 좋은 집을 구하긴 힘들었다. 결국 저곳은 아니어도 골목 초입보다 좀 더 들어서야 있는 방을 선택했다.


이렇게 된 이상, 갈라진 길바닥에 시멘트를 다시 덧대고 덧대어 아득바득 길로서의 제 역할을 해내는 골목처럼, 나 또한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려고 아득바득 대는 것이 답이었다. 그렇게 한 7년 살다 보니 20살 땐 좁다란 길에 들어서자마자 집으로 전력질주를 했던 내가, 이젠 골목이 소위 ‘느낌 있다’고 주장하게 됐다.


“느낌 있다고?” 친구들은 뭔 소리냐고 했다. 골목을 변호하는 나의 궤변은 다음과 같다. “골목은 건방지다. 길인 주제에, 집 안에 살고 있는 누군가의 손길이 잔뜩 타있어 거주민의 냄새가 난다. 야, 이거 봐라. 이 투박한 국화 화분들이 대문 옆 쪼르르 서있는 모양새. 빨랫감에서 떨어졌을 것 같은 이 양말 한 짝은 대체 왜 있는지. 캬. 여기서 떠들지 말라는 이 멋진 협박성 낙서!” “사람 사는 냄새나는구나?”“그렇지. 캬.”


그러나, 이제야 고백하는데 사실 그 냄새에 우울이 없다면 거짓말이겠다.

어쨌든 ‘가성비’를 생각하며 기어 들어온 골목 안 수많은 사람들. 골목의 ‘느낌’에는 그 언젠가는 골목을 탈출해 높은 고층에서 구불거리는 길들을 조망하고 싶은 희망도 존재한다. 어쩌면 희망이 아니라 욕망일까? 화분: 정원 가꿀 공간이 없는 누군가의 갑갑함. 양말: 드럼세탁기를 꿈꾸며 공동 세탁실을 찾던 누군가가 흘린 불편함. 낙서: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곳에 살기를 원하는 누군가의 짜증. 그게 집 밖에 삐쳐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골목은 동굴이다

늘 겨울 같았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었다

누군가 한 사람만 익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공용 화장실이 있는 방부터  

베란다가 있는 곳까지, 오리온자리의  

1 등성부터 5 등성이 동시에 반짝거렸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표현처럼

구멍가게는 진부했다 속옷을 훔쳐가거나  

창문을 엿보는 눈빛 덕분에

골목은 활기를 되찾기도 했다  

우리는 한데 모여 취업을 걱정하거나

청춘보다 비싼 방값에 대해 이야기했다

닭다리를 뜯으며 값싼 연애를 혐오했다

청춘이 재산이라고 말하는 주인집 아주머니 말씀

알아들었지만 모르고 싶었다

우리가 나눈 말들은 어디로 가 쌓이는지

궁금해지는 겨울 초입

문을 닫으면 고요보다 더 고요해지는 골목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인기척에 세를 내주다가

얼굴 없는 가족이 되기도 했다

전봇대, 우편함, 방문, 화장실까지

전단지가 골목의 각질로 붙어 있다 붙어 있던  

자리에 붙어 있다 어쩌면  

골목의 뒤꿈치 같은 이들이

균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굳어버린 희망의 자국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윤미의 ‘골목의 각질’은 정말 ‘사람 사는’ 냄새나는 시다. 외부자의 시각에서 골목을 바라보기보다는 완벽히 그 안에서 보고 있다. "우울하다고요? 그럼 골목길에 사는 건 별론가요?"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이렇게 묻는다면 "골목이 느낌 있다"고 한 내 주장을 번복해야 할까? 그러고 싶지 않다. 골목을 모태로 아름다운 언어를 뽑아낸 강윤미 시인의 시가 내 주장의 좋은 근거가 될 것이다.


요새 나는 다른 동네로의 이사를 결심하고 더 자주 우리 동네를 의도적으로 쏘다니고 있다.

여전히 아름답고 여전히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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