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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Apr 18. 2016

원룸살이와 '그날'

일원화된 해결 처와의 쟁투

나의 원룸은 환풍구가 일원화되어있다.

며칠 전 어머니가 잠시 자취방에 오셔서 부엌 환풍구를 돌리며 된장찌개를 끓일 때 나는 샤워를 하고 있었다. 화장실 안에서 찌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된장냄새와 함께 뜨거운 물을 끼얹고 있으려니 풀무원 두부가 된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부엌 환풍구가 화장실 환풍구와 연결되어있다니. 멀티플레이어 환풍구여.


6평. 가족들이 옹기종기 사는 아파트에 비해 턱없이 작다. 이곳에서 무언가를 해결할 통로가 하나뿐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원룸은 경제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제 1 목적인 거주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된장 냄새에 대한 불평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헤실헤실 웃으면서 화장실을 나왔다. 원룸의 효율성에 탄복했다.


는 뻥이고.

불쌍해 보일 것 같아서 앞선 문단을 저렇게 마무리했지만 사실 내가 헤실댔던 이유는 하나다. 샤워할 때 맡았던 그 된장 냄새는 집에 혼자 있으면 절대 맡을 수 없는 것이어서였다. 샤워할 때 누군가 동시에 요리를 하고 있다는 것.  어쨌든 원룸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일상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 나 혼자 산다! 가끔 외롭다!


사실, 원룸의 일원화된 해결 처는 환풍구뿐만이 아니다.


원룸살이는 '나'라는 일원화된 해결 처와의 끝없는 투쟁이다.

가끔 울 때는 젖는 베갯잇을 바라보며 "아 베개 빨기 귀찮은데 눈물 자국 생기네"라고 생각하며 파출부 및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동시에 수행하거나, 냉장고 청소를 하다 반찬을 엎지르면 "바보 같은 녀석!" "휴, 뭐 이럴 수도 있지"라고 외치며 엄마와 사고 친 딸의 대화를 혼자 구현한다. 정신병 같다고? 아니다. 요새 나 혼잣말한다 그랬더니 다른 자취하는 친구가 자긴 그런 지 오래됐단다.


이렇게 혼자 복작대며 잘(?) 사는 게 원룸살이다. 그런데 가끔 그런 시기가 간헐적으로 온다. 원룸이 인간으로 현신한 게 나라는 존재도 아닌데 왜 이렇게 혼자 모든 걸 해결하면서 살아야 하지? 책상도 됐다가 밥상도 됐다가 화장대도 되는 저 정체불명의 가구(원래는 책상). 헤어롤도 됐다가 커튼 집게 및 빨래집게도 되는 저 정체불명의 플라스틱(원래는 헤어롤 집게). 내가 그런 존재랑 묘하게 닮아가는 듯 해 서럽다.


그날, 텔레비전 앞에서 늦은 저녁을 먹다가

울컥 울음이 터졌다

멈출 수 없어 그냥 두었다

오랫동안 오늘 이전과 이후만 있을 것 같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밤, 다시 견디는 힘을 배우기로 했다


곽효환의 시, '그날'. 혼자 사는 화자는 텔레비전 앞에서 읽은 지 오래된 책(이자 냄비 받침)을 깔고 라면을 후루룩후루룩 먹었나 보다. 늦은 저녁이라니 텔레비전에서는 라디오스타일까, 무언가 깔깔대는 프로그램이 흘러나왔겠지. 문득 엉덩이에 리모컨이 걸려 텔레비전이 홱! 하고 꺼지면, 액정에 비친 자신 홀로의 모습. 아무래도 그런 순간. 그런 어렵지 않은 순간에 혼자 사느라 참아왔던 외로움들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시가 말하지 않는 가장 슬픈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펑펑 운 화자가 결국엔 냄비를 설거지했을 것이며, 코를 푼 휴지를 한 데 모아 잘 버렸을 것이란 것이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우는 것도 맘껏 울지도 못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나름 혼자 꽤 살았던 나의 건방진 경험에 따르면 결국 그 멀티 플레잉들이 일상을 더욱 견디게 해주는 동력이 되곤 했다. 설거지, 휴지 치우기. 나의 해결을 요하는 다양한 문제들이 내가 어떻게 이 현현한 일상 속에 존재하는지 알게 해준다. 어쩌면 시의 화자는 울었기에 견디는 힘을 배운 것이 아니라, 울면서도 설거지를 해야 했기에 견디는 법을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감성충 글쟁이와 분리숙er가 동시에 되고자 한다. 지금은 밤 9시 24분. 이렇게 또 하루를 견딘 원룸살이가 저물어간다.


(오늘 분리수거를 다 하면)

오랫동안 분리수거를 안해도 될 것 같아

(설레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밤, 다시 (분리수거를) 안하고 개기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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