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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May 16. 2016

코인노래방과 '황조가'

나는 고구려 유리왕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대학로에만 1년 새 2개의 큰 ‘코노’가 생겼다. 코노란 코인 노래방의 줄임이다. 코노는 예전 오락실에 작은 노래실 3~4개 있는 것과는 개념이 다르다. 20~30개에 달하는 노래실들이 큰 노래방이 있을만한 평수에 빽빽하게 들어있다. 나는 요새 자주 코노를 가는데 사람이 많아 항상 대기한다. 대기하는 인원의 대부분은 20대이다. 여럿이 온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이 더 많다.

24시 코인노래방!

누군가가 입구 쪽으로 나와 내 차례가 돌아오면 그 사람이 나온 빈 방을 찾아야만 한다. 찾으면서 다른 의 사람들을 흘낏흘낏 바라보게 된다. 혼자 1~2평 남짓한 공간에 앉아 노래들을 부르고 있다. 발라드, 댄스곡, 힙합… 참 다양하게도 부른다.


나도 방에 들어가 혼자 한창을 눈을 감고 삘 받은 채 고음불가로 ‘체념’을 부르고 나면 노래가 꺼진다. 와~ 95점이다! 까르륵거리기가 무섭게 옆방의 어떤 남자가 무시무시한 고음 장악력으로 야다의 진혼을 부르고 있다. 저 남자. 코인 노래방에서 불러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문득 저 남자도 내 노래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할까 생각을 하니 창피해진다. 그렇지만 이내 다시 선곡하고 노래를 한다. 이 순간만은 내가 박정현이다.

케이팝스타 유망주가 될테다.

나는 왜 ‘코노’에 가게 됐을까. 그냥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노래를 왜 부르고 싶었을까. 간단하다. 나는 고구려 유리왕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듯이 유리왕은 현전하는 최고(오래된)의 개인적 서정가요(시) ‘황조가’를 쓴 자다. 그렇다. 감정이 솟으면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쓰라고 우리 조상들은 후손들에게 누누이 가르쳐왔다. 가시리, 정읍사… 그 피가 나에게 이어졌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코인 노래방을 찾는 것은 N극이 S극을 찾는 것처럼 필연적인 일일 뿐이다.


훨훨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다운데
외로울 사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황조가, 유리왕)


빈 노래방을 기다리며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보는 이 청춘들 또한 마찬가지다. 지아의 ‘술 한 잔해요’를 부르는 저 여자. 혹은 크러쉬의 ‘잊어버리지 마’를 부르는 저 남자. 저 청춘들도 정치 싸움으로 인해 진정한 사랑 ‘치희’를 잃어버린 유리왕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외모지상주의 이데올로기 혹은 정치경제적 지위로 인해 사랑을 잃어버린 이 억울함을 코노에서 시와 노래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많기도 하다 이 방들.

하지만 유리왕의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이 있다면 유리왕은 그냥 숲 속에서 꾀꼬리를 보며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던 모양이지만 지금의 청춘들은 죄다 반지하 2평짜리 방에 틀어박혀 있다는 점이겠다. 또, 유리왕은 자신의 마음과 꼭 맞게 작사, 작곡을 했지만 지금의 청춘들은 수십 개의 곡 중에서 자신의 마음과 가장 흡사한 곡을 힘겹게 찾아 부르는 것이겠다. 찾다 찾다 딱히 못 찾아 인기차트로 넘어가기도 한다.


우리네 20대의 시와 노래들은 뚜렷한 방향성을 못 찾고 있다. 나에게 꼭 맞는 적절한 인생의 무대를 찾고 스스로의 발언을 창작해내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유리왕의 시대처럼 ‘왕’이 있는 세상도 아닌데 대체 누군가의 눈치를 보기에? 나는 내 옆 칸 ‘야다’를 부른 남자의 눈치를 봤고, 그 남자는 ‘체념’을 부른 내 눈치를 봤을 것이다. 사실 전부다 솔직한 노래를 목청 터질 때까지 부르고 싶으면서 내가 이런 짓을 하는 게 왜인지 창피하다며 그런저런 감정으로 눈치게임만 하는 것이다.

술자리 아니면 코노지.

‘감성충’, ‘오그라든다’, ‘손발 상실’. 감성은 언제부터 음지화 됐을까. ‘술 먹을 때만 별안간 인생이 생각난다’는 류근 시인의 말처럼 우린 언제부터 반지하의 코노에서 혹은 거하게 취한 3차에서만 사랑을 말하게 됐을까? 자신의 감성에 조금 더 시간을 기울이는 것은 이 시대의 ''과 같은 사람들의 전유물일까? 오늘도 나는 야근하는 회사에 앉아 코인 노래방을 꿈꾼다. 일찍 퇴근하면 갈 수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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