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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Jan 23. 2017

<복수는 나의 것>

사람의 시야각 120도

(스포 多)

120도. 사람의 양안 시야각이다. 세기의 천재라 하더라도 한 번에 120도의 세상 만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120도라는 시야가 '뒷통수 맞는' 상황 만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좁은 시야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축복은 영화라는 콘텐츠다. 거대한 단면의 스크린이 눈을 전부 압도하는 극장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여행을 떠난다. 240도는 암흑에 빠지고 감독이 그려낸 120도의 세상만 남는다. 화양연화의 양조위와 장만옥의 불륜을,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애틋한 로맨스로 기억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관객은 영화가 말해주는 대로 인식하며 몰입감과 해방감을 느낀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은 비극이다. 세 명의 주연이 모두 목숨을 잃는다. 복수를 하다가 복수의 희생양이 된다. 그들의 복수는 언뜻 보면 인과관계가 옳은 듯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예로, 귀머거리 신하균은 누나의 장기를 얻기 위해 불법 장기매매단을 찾아갔다가 돈을 빼앗기고 자신의 신장을 적출 당한다. 이후 병원에서 누나에게 맞는 장기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 수술비를 얻기 위해 유괴를 한다. 유괴 사실을 알게 된 누나는 자신이 동생의 짐이 될 수 없다며 자살한다. 신하균은 자신이 유괴를 하게 된 이유(= 누나가 자살을 한 이유)가 장기매매단이라 생각해 복수를 시작한다. 사실 유괴를 가장 적극적으로 권한 것은 자신의 애인 배두나였지만 말이다. 배두나와는 섹스를 할 뿐이다.

'복수는 나의 것'은 마치 신하균처럼, 편할대로 세상을 바라본 뒤 판단하는 사람의 속성에 대해 말한다. "나 너 착한 놈인거 알아." "그러니까 너 죽이는거 이해하지?" 영화의 끄트머리, 신하균을 죽이기 위한 송강호의 앞뒤 안 맞는 핑계가 더더욱 영화의 주제의식을 강조한다. 사실 송강호의 딸을 죽인 것은 강가의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다. 더불어 무정부주의자 배두나는 자신의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망한 자본가인 송강호의 딸을 유괴하자고 적극 추천한다.

신하균처럼, 송강호처럼, 그리고 배두나처럼. 제멋대로 세상을 인식해 비극을 만들어내는 것은 하루에도 수천번씩 일어나는 일이다. 작게는 연애의 다툼부터 크게는 살인까지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그 핑계는 120도의 시야에 얽매인 스스로가 만들어낸다. "내가 취직 못하는 이유는 부모님 때문이야." "사람 관계? 나만 당당하면 됐지." "이게 다 걔 때문은 아닐까?" 240도를 무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는 피해자만 남는 혹은 가해자만 남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때문에 이러쿵 저러쿵 피곤한 사람들이 찾는 곳이 영화관인데, '복수는 나의 것'은 이를 다시 영화로, 그것도 아주 극단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으니 흥행에 참패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좁은 시야가 만들어낸 영화라는 축복. '복수는 나의 것'에는 통하지 않는다. 영화는 240도를 암흑에 묶어두고 싶은 관객들을 청각적 요소로 계속 괴롭힌다. 120도의 스크린 밖 너머 진짜 진실이 존재하고 있을 것 같다. 스크린 안에서 정확한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는다. 송강호의 딸을 부검하는 씬에서는 송강호의 표정과 날카로운 톱소리만 들려줄 뿐이다. 또한 신하균이 일하는 공장의 비인간성은 스크린 밖에서 어디선가 들려오는 어마어마한 소음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복수는 나의 것'은 보고나면 피곤하다. 스크린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스크린 밖에 어딘가 존재하는 진짜를 계속 상상하게 된다. 영화는 이렇게 관객을 끝없이 밀어부치며 주제를 만들어나간다.

송강호는 영화 마지막 본인이 알지도 못하는 선언문이 가슴팍에 박힌 채로 죽어간다. 비정하지만 120/360, 3분의 1짜리 이해심을 가진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곳이 이 세상이니, 모두 그렇게 상처 받고 살아가는 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득 가십거리를 읽다가, 혹은 주변에 상식을 벗어난 사람을 볼 때면 영화를 볼 때 들었던 의문이 다시 돌아온다. 인간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잘못 갈 수 있는 것인지, 그들이 바라보는 120도짜리 행동력은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말이다. '복수는 나의 것', 어렵고도 너무나 불 보듯 뻔한 최고의 복수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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