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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May 01. 2017

아이돌 덕질은 왜 재미있나

결국 가장 강력한 콘텐츠는 사람

연휴의 이틀을 덕질에 썼다. 그것도 아이돌 덕질에 말이다. 나도 내가 평생 이럴 줄은 몰랐다. 네이버 TV캐스트에 들어가서 상위에 랭크된 프로듀스101 모 후보생의 직캠을 보고 소위 ‘덕통사고’라는 것을 당했다. 그리고 밤을 새서 영상을 찾아 보다보니 목소리도 좋고, 손도 크고, 웃을 때 표정도 취향 저격이었다. 6 년차 그룹의 메인보컬인 그는 프로듀스101에서 재데뷔를 원하고 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몇 번이고 투표했다.


세상에 수많은 콘텐츠가 있지만 그중 가장 극렬한 덕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단연코 아이돌임을 뼈저리게 느낀 연휴의 이틀. 평생 하지 않았던 아이돌 덕질을 하며 마음 속 한 구석 (자괴감과 함께) 궁금증이 생겼다. 아이돌 덕질은 대체 왜 이렇게 재미있을까?


광고 업종에서 일하며 다양한 형태의 드라마부터 예능까지 성공하는 콘텐츠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업이 됐다. 매주 전사에 콘텐츠 관련 사보 메일링을 하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보다보면 아주 당연한 공식인 것 같지만 쉽게 잊는 부분을 다시금 깨닫는다. 바로 모든 성공하는 콘텐츠에는 상당히 매력적인 사람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드라마를 생각하면 스토리가 좋아야할 것 같고, 예능을 생각하면 웃긴 기획이 중요할 것 같지만 결국은, 사람이다.


최근 비슷한 컨셉의 두 가지 웹드라마를 봤다. 전지적 짝사랑 시점 시즌2와 연애 플레이 리스트 시즌 1이다. 둘 다 대학생 때의 풋풋한 연애담을 담은 드라마이다. 개인적으로 스토리는 비슷하게 재미있고, 만듦새는 연애 플레이 리스트가 더 좋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화제성 측면에서는 전지적 짝사랑 시점이 더 나았는데, 그 이유에는 ‘쓰레기성’, 조기성이라는 캐릭터와 ‘양아치’, 양혜지라는 캐릭터가 있었다. 반면 연애 플레이 리스트는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 캐릭터가 없었다.


화제몰이가 끊이지 않는 나영석 예능도 마찬가지다. 밥 세 끼를 해서 재미있는 게 아니라, 유해진이 참 인간미가 넘치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이다. 외국에 나가서 식당을 해서 재미있는 게 아니라, 정유미가 너무 사랑스럽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죽여 놓는 것은 밥 세 끼를 하거나 외국에서 식당을 하는 그 기획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매력적이기 때문이고, 그 사람의 매력이 전엔 몰랐던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창의적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람 자체가 콘텐츠인 아이돌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가장 재미있는 콘텐츠가 된다. 새로운 아이돌은 새로운 매력이자 새로운 재미이고, 전에 본 적 없는 강력한 창의성이 된다. 아이돌의 끝판왕인 마블 유니버스의 영웅들이 그래서 예전의 스토리를 다 무시하고 얼토당토한 스토리로 전개하는 만행을 벌일 수 있는 것이다. 매력적인 캐릭터 앞에서 개연성을 부수적인 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문제적 아이돌을 어이없게 옹호한다.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은 똥도, 가난도, 죽음도 아닌 본인이 싫어하는 사람이다. 혐오하는 만큼 사랑한다는 오랜 격언에 비춰봤을 때,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도 결국,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이다. 창의적인 콘텐츠는 새로운 기법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서 발굴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첫 아이돌 덕질이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려면 기술적 기법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과 끊임없이 부대끼는 것이 해답이었다.


여기까지 쓰고나니 어제 밤새 영상을 보느라 혹사한 눈이 더 침침하다. 덕질에 의미부여를 해야 덕질을 더 할 수 있는 명분이 되기 때문에 이 글을 더 쓴 것일까. 그러나, 어쨌든 내 생각은 그렇다. 스토리는 거들 뿐, 모든 인생처럼, 모든 콘텐츠의 핵심이자 콘셉트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좋은 크리에이터가 되려면 사람을 사랑해야만 한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의 아이돌을 사랑하고자 한다. 안다. 핑계 한 번 정성스럽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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