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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May 29. 2017

참을 수 없는 실패의 무거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실패의 이야기엔 고전적인 3단계가 있다. 첫째, 실패자가 아픔을 극복한다. 둘째, 실패자가 다시 도전한다. 셋째, 실패자가 재도전에 성공한다. 이로써 저번의 실패는 성공을 위한 발판이었다는 이야기의 의미가 드러난다. 고전설화부터 시작된 이 전형적인 플롯은 2010년대까지 널리널리 학습되고 있다. 약간의 변용은 있지만 실패에 관한 모든 서사는 이 흐름을 따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이야기의 학습 효과인지 실패를 벗어나려 하는 것이 사람의 기본적인 욕망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를 하면 어서 극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렇다. 실패에 오래 동안 머물러 있을수록 ‘실패 극복-다시 도전-성공’이라는 3단계를 빨리 해치워 버릴 수 없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무언가 뜻하는 대로 풀리지 않으면 얼른 극복하려고 최선을 다하곤 했다.


그러나 실패는 본인의 생각보다 무거운 경우가 많다. 얇고 힘없는 분침에 속절없이 떠내려갈 만큼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어떤 실패는 그냥 그 자리에 오래 무겁게 머문다. 보기 싫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실패를 바라보면 더 화가 난다. 빨리 극복해야 성공할 수 있는데, 저 놈이 나를 집어삼켜 이대로 실패자로 머무를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실패의 무거움이다.


실패자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이 실패를 감당해야 하는 나라는 존재가 너무나 가볍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일 뿐인 나는 정말 작고 평범하다. 너무나 가벼운 나에게 무거운 실패가 와서 ‘나만의 실패’라는 제목을 달 때, 그토록 벅찼던 것이 세상 속에서는 깃털처럼 가볍고 사소해진다. 존재의 가벼움과 실패의 무거움 사이의 괴리감이 더욱더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든다. 실패의 이야기를 나도 완성할 수 있을까 불안해진다.


그러나 먼 미래의 이야기를 과정 중에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야기는 과거를 돌아보며 인생을 정리할 때 읽기 좋게 갈무리하는 것이지, 그때 그때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이미 다 정해진 양 써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야기의 트랙에 본인의 삶을 올려놓으려는 욕심은 내려놓고 지금의 실패 그 자체를 대면해야 한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조금 쉬워진다.


실패를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나라는 바닷가에 하염 없이 앉아있는 것과 같다. 인생의 실패는 파도의 밀물처럼 무겁게 내 안으로 쓸려 들어왔다가, 아무 일도 아닌 양 가볍게 세상 밖으로 썰물이 되어 나간다. 무거움과 가벼움, 밀물과 썰물의 계속된 반복으로 철썩대며 실패의 상처를 평탄하게 만든다. 과정은 지루하다. 바다의 파도를 오래도록 재미있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견뎌야만 한다. 


물론, 이야기의 끝은 누구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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