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니은말고이응 Aug 24. 2017

모기와의 동거  

그 비극적 관계에 대하여

올해 여름 내도록 새벽 2시 즈음 나를 깨우는 기척이 있었다. 그것은 지겹도록 윙윙대며 나를 괴롭히는 불청객 모기였다. 불을 켜고 피의 복수를 하기 위해 에프킬러를 들었다. 예상대로 방 천장 한 구석 모기가 있었다. 나는 사정없이 에프킬러를 쏴댔다. 모기가 나풀거리며 추락할 때 승리의 쾌감이 들었다. 복수에 성공한 나는 기쁨을 만끽하며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까지도 피의 복수에 대한 쾌감은 찌꺼기처럼 남아있었다. 그 쾌감이 아~주 조금 죄책감을 들게 했다. 귀에서 윙윙 대는 것이 귀찮고 수면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생명‘씩이나’ 앗아 간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름의 합리화가 필요했다. 모기에게 탓을 돌리기로 했다. 나의 살생은 윙윙대는 날개를 아직까지 음소거형 날개로 진화시키지 못한 모기의 탓은 아닌가?


내 생각에 대해 친구는 다른 대답을 내놨다. 모기는 아마 네 귀가 윙윙 대는 소리를 못 듣게 진화하길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고 말이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모기 입장에선 내가 못 듣길 바랄 것이다. 근데 못 듣게 되면 나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겪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렇게 진화할 순 없다. 근데 알고보니 소리 나는 모기의 날개 또한 효율적 날갯짓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고 한다.


결국 서로에게 맞추려면 진화가 아니라 퇴화를 해야 하잖아?


모기가 윙윙대지 않는다면, 인간이 귀머거리이거나 가려움증을 느끼지 않는다면 모기와 인간의 관계는 꽤 괜찮은 동거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줄일 수 없는 다름의 간극은 무엇으로도 줄일 수 없다. 인간은 이미 모기와의 관계를 철저히 포기했기에 에프킬러, 홈매트, 모기장, 모기향을 발명한 것이다.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것이 최상의 동거임을 깨달은 지 오래다.


모기와 인간의 관계처럼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최상의 솔루션인 관계는 분명히 있다. 함께 하려면 서로가 퇴화해야만 하는 관계. 그렇게 갉아먹기만 하는 관계. 그런데 제어할 수 없는 주변의 환경들이 얼기설기 사람들을 엮기 시작하고, 한 번 엮이기 시작하면 끝을 낼 적절한 타이밍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난 저 사람을 다 이해할 수 있는 ‘쿨’한 사람이니까!"라는 핑계로 그 관계를 계속 이어나간다.


근 나는 그런 것들이 조금 피곤해져서 킬러처럼 말을 쏴대보기 시작했다. 그 사람에겐 내가 모기이고 본인이 사람이지만, 나에겐 그 사람이 모기이고 내가 사람이니까. 상대방을 질리게 만드는 말들. 치졸한 돈 이야기라거나. 찌질하고 찌질한 이기심들이거나.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관계를 아낀다면 전혀 드러내지 않을 가장 저열한 감정들을 그냥 에프킬러 쏘듯 확 쏴버린다.


보통 그러면 모기처럼 조금 비틀비틀거리다가 풀썩 전부 끝나버린다. 관계의 끝. 20대 초반에는 참 허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쉽사리 시도하지 못했지만, 그것 또한 반복되니 그저 일상일 뿐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기를 잡는 밤에 대해 다시 곱씹지 않듯,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게 딱 잠든 밤의 모기소리만큼 미친 듯 짜증이 났다가, 끝나버리면 이내 잊어버릴. 딱 그정도의 그런 것이 되버렸다.


에프킬러처럼 꽤 간편하게 끝낼 수 있는.

작가의 이전글 슬픔#4 <모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