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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Aug 25. 2017

핀란드에서 만난 '쉬운 행복'

5박 6일 핀란드 여행기

나에게 행복은 기다림이었다. 19년의 학창시절 때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나를 기다렸고, 5년간의 대학생 때는 원하는 직장에 취업한 나를 기다렸으며, 지금은 어떤 누군가를 만나 안정된 가정을 꾸린 나를 기다린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내 인생에서 내가 기다렸던 무언가가 왔을 때의 순간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능을 끝내고 먹었던 해물찜, 인사팀 차장에게서 온 통화는 있었지만, 그게 내가 기다렸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룬다'는 것은 이토록 참 부질없다. 아니, 분명히 부질은 있다. 그러나 그 성과의 전체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학생증이나 사령증과 같은 어떤 물건이 성과를 대변할 수는 있지만, 절대 그 성과의 전체와는 같지 않다. 기다림 이후 내가 만지작대는 것은 플라스틱이나 인쇄된 종이에 불과하다. 인간은 작고 귀여운 강아지처럼 보거나, 듣거나, 느낄 수 있는 존재를 더 쉽게 사랑한다. '이룬다'는 관념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에게 참 어렵다.

   

헬싱키에서 약 40분 정도 떨어진 마을 '뽀르보'
헬싱키 대성당과 광장


핀란드 헬싱키의 여름은 공기도 맑고, 물도 좋고, 선선하고, 여유로웠다. 소위 '볼 것'은 없어도 자연과 환경이 너무 깔끔해서 조깅하는 사람들과 함께 뛰고 싶었고, 바다를 수영하는 사람들과 수영하고 싶었고, 사우나를 즐기는 사람들과 사우나를 하고 싶었다. 음식의 재료는 정말 신선했다. 그들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쉬운 행복' 앞에서 그냥 행복했다. 아, 자연이 참 아름답다, 음식이 맛있다, 그런 직관적인 행복들 말이다.     


맑고, 차갑고, 아름다운 발틱해
그리고 발틱해안에서 저녁을 즐기는 사람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런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참 많은 장벽들을 넘어서야 한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사회 시스템의 변화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또다른 큰 장벽 중 하나는 스스로의 '심리적 여유'다. 행복해지는 방법이 눈앞에 있음에도, 나는 응용문제를 찾아나서는 모범생처럼 사회적 진출이나 시험 합격처럼 조금 복잡한 행복의 길을 찾아 나서곤 했다. 어려운 만큼 더 희소하기 때문에 원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어차피 행복은 남에게 팔아치우는 무언가가 아니다. 행복은 나만 평생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시장의 재화처럼 희소성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도리어 행복은 쉽고 빈번할수록 더 좋다. 그리고 솔직하고 직관적일수록 재빠르다. 자주, 많이, 빨리 행복하면 금방 활력을 얻고 인생의 재미를 더 많이 느낀다. 그런데도 '어려운 행복'을 기다리는 데 익숙해진 나는 아주 먼 곳에서만 가치 있는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처럼 굴었다.


참 맛있었던 송어요리
건강한 재료가 가득한 연어요리


5박 6일 간을 핀란드에서 머물며 나는 정말 많이 행복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헬싱키가 볼 게 없단 조언을 듣고, 어떤 특별한 경험을 할 수나 있을까, 내가 즐거울 수나 있을까 우려스러웠다. 실제로 도착한 헬싱키에는 유명한 관광지가 없었다. 그러나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산책한 바닷가가 너무 깨끗해서, 또 함께 여행간 좋은 사람들과 마신 커피가 즐거워서, 브런치로 먹은 연어가 달달해서, 도시가 정말 깔끔하고 평화롭고 고요해서 행복했다.


핀란드의 숲 속. 베리를 딸 수 있다!


핀란드의 숲에선 누구나 베리를 따먹을 수 있다. 보이면 따면 되고, 따면 슥 닦아서 입 속에 넣고 달콤함을 느끼면 된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숲에서 우리는 '심봤다'를 외칠 순간만을 헤매이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덩굴덩굴 사이로 얻을 수 있는 아주 조그만 행복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행복이라고 인지하지를 못할 뿐이다. 이번 여행이 끝난 후, 나는 우리나라가 핀란드와 같이 여유로운 사회가 되기를, 또 그런 마음을 지닌 내가 되기를, 바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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