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야외 시장. 커다란 파라솔 아래 온갖 바구니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시장 한복판에서 구루마(쇼핑 카트)를 끌고 온 할머니가 지갑을 여는 대신, 바지 지퍼를 내리기 시작한다.
지퍼 안에 감춰져 있던 누런 속바지가 얼굴을 내밀었다. 속바지 한가운데에 있는 네모난 속주머니엔 짤랑짤랑 동전과 지폐가 뒤엉켜있다. 눈처럼 새하얬던 속바지는 어느새 누렇게 변하고 군데군데 작은 구멍까지 슝슝 뚫렸지만 할머니는 시장에 갈 때마다 전투복처럼 속바지를 챙겨 입으신다. 지갑보다 안전한 할머니의 금고니까.
6,000원을 내기 위해, 예고도 없이 바지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는다. 바지가 완전히 흘러내리지 않게 다리를 쫙 벌리고, 등을 동그랗게 말아 고개를 푹 숙인 채, 꼼지락꼼지락 속주머니를 뒤적거린다. 지폐 뭉치를 꺼내면 누가 잡아채갈까 봐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모양새다.
가게 주인은 신기한 듯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손가락질하며 쑥덕거린다. "어머, 저 할머니 좀 봐." 창피해진 나는 일행이 아닌 척 한 걸음 떨어져서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바닥에 신발을 끌며 딴청 피운다. 그러다 더디 흘러가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할머니에게 다가간다.
"(속닥속닥) 할머니.. 창피해... 빨리 좀 찾아... 그러게 돈은 내가 갖고 있는다니까."
"야! 네가 말 시켜서 어디까지 셌는지 까먹었잖아. 다시. 하나, 둘, 서이, 너이.."
여러 색의 지폐들이 뒤섞여서 당최 뭐가 천 원짜리인지 구별이 안 된다. 한참 동안 속주머니 안을 주물럭주물럭대다가 드디어 6,000원을 골라냈다. 잠깐, 여섯 장 맞지? 손가락에 침을 퉤퉤 뱉고 다시 지폐를 비비적거린다. 여섯 장 맞네. 그제야 체온이 진하게 남은 뜨끈뜨끈한 돈을 가게 주인에게 건넸다.
콩나물 가게에서도 지익, 과일가게에서도 지익. 가게를 옮길 때마다 바지 지퍼를 내리는 이상한 할머니. 여기서 세 집 더 건너가면 친구네 엄마가 일하시는 생닭 가게가 나오는데.. 제발 저 집 말고 딴 데로 가자고 사정했지만, 무조건 싼 게 중요한 할머니는 내 낯짝 사정까지 봐줄 리 만무했다. 망할 놈의 속바지, 전부 다 태워버릴 거야!멀쩡한 지갑을 놔두고 도대체 이러시는 건지.
우리 할머니를 소개하자면, 취미도, 특기도 '걱정'이요. 뉴스에 나오는 전 세계 오만가지 사건을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며, 걱정거리가 하루라도 떨어질까 봐(?) 걱정하시는 분이다. 밤중에 도둑이 들어올까 봐 매일 밤 이부자리 밑에 현금과 통장을 깔아놓고 주무신다. '아니, 도둑도 생각이 있지. 척 봐도 다 낡아빠진 집인데 뭐 훔쳐갈 게 있다고 여길 들어와? 쯧쯧. 걱정도 팔자다, 팔자야.' 늘 할머니 몰래 혀를 끌끌 차곤 했다.
둘째 고모가 할머니를 한의원에 모시고 간 날이었다. 할머니의 등 뒤가 이상하게 불룩해서, 이게 뭔가 싶어 옷을 들쳐봤더니 글쎄, 이부자리 밑에 있던 통장 보따리를 보자기에 싸서 허리춤에 묶고 온 것이다. 그런 할머니를 볼 때마다 밀려드는 창피함에 할머니와 함께 외출하는 게 꺼려졌다. 할머니와 길을 가다가 혹시나 친구들을 마주칠까봐 늘 주변을 살피며 눈치를 봤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없다는 창피함, 할머니의 특이한 행동들로 인한 창피함. 나의 어린 시절은 창피함으로 가득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할머니에 대해 알게 됐다. 할머니가 중학생일 때, 할머니의 엄마가 친구들과 뱃놀이를 다녀오마 하셨는데, 그땐 설마 그게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몰랐단다. 물에 빠져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할머니의 엄마.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래서 할머니는 엄마 없는 날 더 불쌍히 여기셨을까? 4남매를 키우느라 갖은 고생을 다 하고선, 또다시 핏덩이였던 나를 거두셨던 할머니. 엄마 없는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아셨기에, 이미 고장나버린 무릎에도 아랑곳 않고 나를 업어서 키우셨을까?
엄마 없이 홀로 간 시장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단 얘기도 들었다. 아.. 그래서 속주머니를 만든 거구나. 남의 할머니들에겐 예의 있게, 친절하게 잘만 하면서, 나이 든 어르신들이 다 그렇지, 세상 너그러운 척은 다 하고선 정작 우리 할머니는 창피하게만 생각했던 나였다. 그런 얘길 진작에 알았더라면 남들이 손가락질할 때 할머니 속바지를 가려줄걸, 그럴 수밖에 없는 할머니 마음을 더 짠하게 여겨줄걸 후회하면서도 죄송스런 마음을 말로 표현하긴 부끄러워, 다음날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인절미 떡을 사다드린 것으로 마음의 짐을 덜었던 기억이 난다.
이북에서 내려온 할머니는 가족들과 헤어지고 6.25 전쟁통까지 겪었고, 투쟁 같던 삶의 흔적은 성격과 말투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어떻게든 내 돈을 지켜야 해. 어떻게든 내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해.'라는 생각으로 할머니의 머릿속은 가득차 있었다. 할머니 집안이 원래는 잘 살았다는 말을 들었다. 부잣집에서 공주님처럼 귀하게 자랐다면, 온실 속의 화초처럼 풍파 없이 살아왔다면 괄괄하던 우리 할머니도 고운 소녀처럼 나이들 수 있었을까? 최소한 이마에 깊이 패인 주름들 몇 개정도는 지금보다 옅지 않았을까?
괴팍스러운 할머니와 무뚝뚝한 할아버지 때문에 내 삶이 고달프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지금 시대는 금쪽 같은 내새끼겠지)를 보고 자라면서 역시 나는 피해자일 뿐이라고 철썩같이 믿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도 팍팍한 삶의 피해자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괜한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가끔이라도 원망하고 미워할 수 있는 대상을 잃어버렸다.
아들(우리 아빠)이 술을 끊는 게 평생소원이었던 할머니는 어린 나를 업고 기도원에 많이 가셨다. 참 희한하게도 사람들이 많이 모일 때만 되면 내가 기저귀에 푸짐하게 똥을 쌌다고 한다. 어떤 분이 노골적으로 코를 틀어막으며 눈살을 찌푸리자, 할머니는 민망해하긴 커녕 되려 더 큰 소리를 치셨다. "하이고, 누군 똥 안 싸고 사나? 유난도 별스럽네." 역시 우리 할머니다운 뻔뻔함이었다.
할머니는 한순간도 날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게도 늘 주눅 들지 말라 말씀하셨다. "엄마 없다고 창피하게 생각하지 마. 넌 엄마만 없을 뿐 다른 애들보다 못난 거 하나 없어." 병원에 갈 때도 그랬다. "바보 같은 애들이나 주사 맞고 우는 거야. 저런 거 가지고 울면 맹추(멍청이)야. 넌 잘 맞을 수 있지?" 그럼 나는 잔뜩 겁이 났으면서도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씩씩하게 주사를 맞았다.
할머니의 거친 표현들이 참 싫었는데, 어쩌면 그게 험난한 인생을 사는 동안 오래전부터 자기 자신에게 했던 말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로 바보같이 울면 안 돼.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면 안 돼." 그렇게 평생을 살아온 사람, 그렇게 살아내야만 했던 여자.
고단한 할머니의 삶을 알고 나니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행동들도 퍼즐 조각처럼 착착 들어맞았다. 아, 삐죽 튀어나온 거친 말들이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셀 수 없이 많던 걱정들이 그래서 그랬구나. 이래서 사람 인생을 모르면 그 사람에 대해 함부로 얘기해선 안 되는 건가 보다. 할머니의 이상한 습관도 다 이유가 있구나. 이상한 습관은 사실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이유 없는 행동은 없었어. 다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