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때 난청을 앓게 된 내가 '글'이라는 수단으로 내 이야기를 하기까지
5살 때 고열로 인해 난청을 앓게 되었고 지금까지 보청기를 착용해오면서 아무래도 남들보다 언어발달능력이나 말을 배우는 시기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언어치료를 일찍 받아 의사소통하는데 큰 무리 없이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문장 이해력이나 상황판단 능력 같은 언어적/비언어적 소통에 있어 남들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많다.
초, 중, 고를 일반학교를 나와 대학교까지 정말 평범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다사다난했던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결정적으로 극심한 우울감과 병원 치료를 받게 된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흔히 말하는 '은따'라는 수식어는 내 고등학교 시절 머릿속을 항상 지배하고 있었고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소위 '만만한 친구'로 또래 친구들에게 인식이 됐는지 같은 무리의 친구들로부터도 항상 무시당하고 놀림의 대상이 되곤 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과를 시도했지만(제가 다녔던 학교는 전공별로 과가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한 반에 남/녀 성비율이 2:8 일 정도로 나에게 맞는 친구를 찾기는 정말 힘들었다. 1학년 때 까지는 힘들어도 학업을 놓지는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 학교를 가는 것도 힘들어지면서 결석이 잦아졌고 학교에서도 위클래스* 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다. 어쩌면 고등학교 2, 3학년 생활은 내 기억 속에서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암흑 같은 시기였었다.
*위클래스: 학교 내에서 주의 산만, 대인관계 미숙, 미디어 중독, 학습 흥미 상실 등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상담과 교육 등을 제공해주고 있다. 현재는 더욱 확장된 개념으로 교육청에서 위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정말 운이 좋아 대학교를 진학하게 되었지만 마음속 깊이 난 생채기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고 결국 2주 만에 휴학계를 낸 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 교외활동인 동아리나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당시 어딜 가나 막내였던 내가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형·누나로부터 칭찬과 예쁨을 듬뿍 받을 수 있었고 소극적이었던 성격이 조금씩 자신감을 가지면서 내공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1년간의 내공을 통해 무사히 1학년으로 다시 복귀하여 학교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대학 졸업과 약 8개의 대외활동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눈에 띄는 성장과 배움이 있었지만 내 안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던 우울감과 무기력함은 불청객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불쑥 찾아오면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햇수로 11년이라는 시간 동안 약 복용과 함께 병원 치료를 받아왔다.
그렇게 20대를 보낸 내가 블로그· 브런치라는 공개적인 SNS에 내 이야기를 풀어내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항상 밝고 리액션이 큰 친구, 혹은 본인이 하고자 하는 분야에 있어 정말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친구로 늘 인식되어 있었고 그 이미지를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다. 하지만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감정 기복 속에서 '과연 남들에게 보여지는 이미지가 아닌 진짜 내 아픔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돌아본 적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며 나 자신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그리고 조금은 더 냉철하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년 여름, 힘든 시기가 크게 찾아오면서 병원 입원을 하게 되었고 퇴원 후에도 부모님과 공간 분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온전히 나 스스로 독립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됐었다.
그러면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고 평소 노트에 감정일기나 사소한 부분까지 메모를 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는 나는 병원 안에서의 제한된 생활 속에서(폐쇄 병동 내에서는 물건 반입이나 행동반경이 매우 제한된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기록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려고 많이 노력했다:
병원 입원했을 당시 거의 매일 다이어리에 일기를 적으려고 했고 단순히 감정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들었던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보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의료진 혹은 문제의 근원인 가족관계에서 어떤 부분이 충족되지 않아 속상했었는지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많이 노력했었다.
약 3주간의 입원 기간 동안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스스로를 계속 돌아보며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장점을 살려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기에 퇴원하고 나서도 내 몸 컨디션을 체크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퇴원한 작년 6월 말을 기준으로 꾸준히 블로그에 <우울증 일기>라는 주제로 어떤 증상으로 힘들어하는지, 그 증상으로 인해 삶에 있어서 어떤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지, 전반적인 치료과정과 건강해지기 위해 지켜왔던 루틴들을 적어나가며 많은 분들과 댓글로 소통을 하고 지인들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기도 하며 1년 가까이 연재를 해올 수 있었다.
대단한 무언가는 아니지만 치부라고 생각했던 내 아픔을 공개적인 sns에 올리면서 낫고자 하는 의지와 과정들을 한데 모아서 보니 ‘그래도 참 애썼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블로그를 통해 이미지로 보다 보여지는 방식으로 설명했다면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서는 정말 내면의 이야기, 그리고 비슷한 아픔•고민을 가지고 있는 분들과 보다 진솔된 나눔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