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실험’ 삼아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으로 삼는다면
최근 '실패사연 공모전' 혹은 '실패 데이'처럼 실패라는 주제로 다양한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서점에 가면 자기 계발서, 흔히들 말하는 '악착같이 버텨야 살아남는다'와 같은 동기부여 서적들이 매대 한 부분을 가득 차지했던 것을 다들 기억할 것이다. 여전히 자기 계발서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자수성가 이야기는 나오고 있지만, 바로 옆 에세이 코너만 가도 분위기가 한층 다르다. “넘어져도 괜찮다”. “실패하면 뭐 어때! 다시 일어서면 되지” 와 같은 담담하지만 따듯한 위로를 건네주는 힐링 에세이가 주를 이루는 출판시장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남에 대한 의식과 보여지는 영역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살아간다. 실패하면 안 될 것 같고, 나의 아픔과 건강하지 못한 부분은 남들에게 절대 보여지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이 누구나 마음 한켠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듯한 기준, 잣대에 나의 목표를 맞추다 보면, 그것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실패'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필자 또한 남들에게 보여지는 영역에 있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자유롭지 못한 편이다. 당장 저번 달까지 종이책을 목표로 출간 준비를, 마라톤 하프코스 완주를 목표로 했었지만 두 개 다 완수하지 못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기복 속에서 무언가를 끝마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을 가져오는 일이었고 그 부담이라는 걸림돌에 넘어지고 말았다.
작가라는 타이틀이 물성이 느껴지거나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한 권의 책으로 증명되는 것 같아 하루빨리 종이책으로 출간하고 싶은 바람. 기간이 점점 길어질수록 몸과 마음이 지쳐 결국 손을 놓아버리는 단계가 오지 않을까라는 두려움. 꾸준히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감이 점점 떨어지면서 스스로에 대한 불신 등 무수한 감정들이 나를 옥죄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더욱 뚜렷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평소 한 분야에서 뚝심 있게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동기부여를 받곤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필명을 '뚝'으로 정하면 어떨까 싶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복 속에서 자주 넘어지곤 하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훌훌 털고 일어서고 싶은 마음에서도 뚝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갔다.
앞서 서두 부분에 ‘실패 데이’, ‘실패 사연 공모전’을 언급했었는데 얼마 전, 비슷한 주제로 같은 지역 소속 청년들과 함께 2달간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슬로건은 “실패에 치어쓰!” 로 우리의 고민과 실패 사연을 서로 나눠보고, 보다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이라는 예술형태로 표현해보는 시간이었다. 전문 강사 지도 하에 2달간의 워크숍을 거친 후, 시민들 앞에서 거리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잘 모르는 사람들과 조금은 사적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그것도 누군가에게 몸동작으로 표현해보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비슷한 관심사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런지 차츰 본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보면서 집중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로의 나이, 직업 등 배경을 몰라도 그 시간만큼은 음악에 몸을 맡겨 서로가 추는 동작을 따라 해 보고, 몸을 맞대 보기도 하고, 처음과 끝의 동작을 이어 보면서 서로가 하나 됨을 느낄 수 있었다. 손동작 하나하나 사이로 연결되면서 서로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고스란히 느끼고, 본인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보며 각각의 동작들이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하나의 선으로, 개체로, 더 나아가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실패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무거운 느낌이 단순히 '낙오', '탈락', '낭패'와 같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가 아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지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절망스러운 순간에서 조금이나마 빨리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라톤으로 치면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 통증으로 인해 중간에 잠깐 멈추고 스트레칭을 하거나 천천히 걷는 식으로 잠깐 ‘쉼'의 시간을 가졌다가 결승지점을 향해 마저 달리듯 말이다.
우리의 삶엔 실패도 있고 좋은 날도 있듯, 그저 수많은 날 중 하나이니 실패라는 감정에 압도되어 스스로의 가치를 너무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낙담은 할 수 있으나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훌훌 털고 일어나 보자.
우리는 앞으로도 꾸준한 실패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일하는 장면에서,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장면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겠지요. 우리는 그때마다 우아한 쇠퇴, 우아한 실패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점차 늘려갈 회복탄력성에 기반해, 내가 지금 실패한 이 지점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는지 거리를 두고 생각할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 자신의 의존성을 비난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그저 유연히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나의 의존성과 취약성, 나의 감정적 약점과 개인적 결함들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이런 건 실패가 아닙니다. 실패일리가요. 이미 배웠잖아요. 대부분의 사람은 원래 의존적이며 사회적인 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차차 나의 이 조각들을 불편감 없이 자연스럽게 바라보고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 실패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래 왔듯 (일희일비는 고사하고) 일비일비 할 필요는 없음을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과 신념들에서 부드럽게 물러서고 당신의 삶을 그렇게까지 싸잡아서 0 혹은 1 단 두 가지의 결과로 규정하지 않고 해야 하는 일에는 할 수 있는 만큼만 (당신과 당신의 사람들이 불행하지 않을 만큼만) 전력을 다하고 그 이후로는 운명의 시간으로 떠나보내기를 바랍니다.
(C) 허지원 심리학과 조교수, 출처: 정신의학신문, <실패에 우아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