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처음과 끝이 아닌 중간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한창 치고 올라가는 시점인 성장기와 끝없이 내려가는 쇠퇴기가 아닌 이상, 묵묵히 그저 앞을 향해 걷는 사람들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결과가 어떤 형태로든 보여져야만 그제야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간의 과정들이 주목을 받는다. 우리는 종종 “중간만 하자”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시점에서, 아직 눈에 띄는 성과가 없는 '중간'은 어딘가 애매하고 답답하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있는 사람들에겐 희망보단 절망이 더 가까이 느껴진다. 노력은 계속하고 있는데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면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오기가 여간 쉽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스스로의 인정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누군가의 시선,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주류도, 비주류도 아닌 어중간한 어딘가에 있을 때, 그 어떤 집단에도 속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공감과 인정을 받기가 힘들다. 그럴 때면 마치 낯선 땅에 홀로 떨어진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아픔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드러나는 상처가 아니기에, 그 골이 깊어지고 곪아터질 즈음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아차리곤 한다. 당사자조차 속에서 진물이 날 때까지 인지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남들은 어떻겠는가.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의 아픔을 알아주기 어렵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고 다루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이해를 구할 필요는 없지만,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실체 없는 감정을 구체화해보는 과정이 때로는 필요하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일이다. 가슴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머리로나마 이해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존중은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최근 필자는 몸이 많이 약해지면서 자주 비관적인 생각에 빠지곤 했다. 꾸준히 해오던 운동조차 기력이 없어 손을 놓았고, 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나마 현상유지라도 했던 날들은 머나먼 이야기처럼 느껴졌고, 이곳저곳 고장 난 부속품들을 억지로 이어 붙이며 버티는 기분이었다. 정신과 약을 복용한 지도 어느덧 17년째. 몸과 마음은 탈이 날대로 나 있었다. 이미 엉망이 된 본체를 붙들고, 부속품을 아무리 갈아도 유효기간이 오래 버티질 못했다. ‘이대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그 생각이 자꾸만 나를 두렵게 했다.
그러는 사이 SNS 속 세상은 건강하고 멋진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았고, 점점 더 깊은 괴리감에 빠져들었다. 아픈 사람들은 계속해서 아프고, 잘난 사람들은 더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애초에 건강한 몸과 마음이라는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면 지금의 삶은 조금은 달라졌을까. 그래서 일부러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들었지만, 그들 역시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건강한 사람들과 중병에 걸린 사람들 사이에서 방황했다. 고난을 딛고 일어선 극적인 서사도 좋지만, 아픔을 안고도 묵묵히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수없이 넘어지고 부러지더라도 천천히 나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 말이다. 그러려면 먼저 있는 그대로의 삶을 포용해 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 갈수록 양극화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나만의 집단을 찾아 더 이상 헤매지 않았으면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오늘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을 그대들을 응원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