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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에게 Apr 10. 2022

벚꽃에 환호하는 사람들

매년 4월, 벚꽃 아래에 무거운 마음을 풀어놓는 우리들

4월의 첫 주말, B와 한강에 갔다. 벚꽃이 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부푼 마음으로 거의 다다랐을 때, 나무들이 앙상해 잠시 좌절했다. 정말 폈을까, 즐길 수 있을까, 염려되었다. 행복한 시간을 바랐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계단을 내려가 산책로에 이르니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벚꽃들로 가득했다. 만개한 꽃이 많지 않았는데도 내 또래 청년들은 잔뜩 상기된 분위기로 피어나는 꽃들과 사진을 남겼다. 이들의 얼굴엔 설렘이 묻어나 있었다. 아주 좋은 일이 있는 사람들처럼.



그로부터 한 주 뒤, 신촌에 갔다. 예약된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금요일 오후 5시 정도였는데, 지하철로 신촌역 3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연세로'라 불리우는 대로를 따라 분홍 벚나무가 촘촘히 만개해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를 청년들이 저마다 달뜬 얼굴로 지나고 있었다. 대학가 특유의 번잡스럽고도 활기 가득한 분위기에, 하늘을 뒤덮을 만큼 가득 편 벚꽃에, 젊음을 즐기고 싶은 청년들로 가득하니, 순간 모두 환각에 빠진 듯이 보였다. 해가 지기 전인데도, 모두들 취한 것처럼 보였다. 지하철로 출구 하나를 빠져나왔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그곳에 발을 뻗기 주저될 만큼.



그리고 며칠 뒤, B와 집 근처 대공원에 갔다. 그리고 목격된 세상은…… 마치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혹은 2002년 월드컵 때와 같았다. 걸으면서 앞, 옆, 뒤, 맞은편 사람의 보폭을 신경쓰며 걸어야 할 만큼 인파로 촘촘했다. 번데기와 솜사탕, 믹스커피를 파는 행상부터 어린이 장난감과 꽃, 돗자리와 음료 등 피크닉 용품을 파는 행상,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과, 벚꽃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는 젊은 사람들. 놀이터에서 마치 그동안 놀지 못한 설움을 풀 듯 기구에서 내려오질 않는 아이들과, 경쾌하게 페달을 밟는 바이커들. 야외 애견 놀이터에서 꼬리를 흔들며 어울리는 반려견들,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주인들, 나무 아래 돗자리 하나씩 깔고 앉아 봄을 즐기는 단란한 가족들, 풋살을 하는 청년들과 배드민턴을 즐기는 커플들……. 모두들 봄을 처음 겪는 것처럼, 봄에 홀린 것처럼, 살기 위해 봄을 필요로 하듯이, 마지막 봄인 듯이,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왜 우리는 매년, 어쩌면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벚꽃과 봄을 즐기게 되는 것일까?



80여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한 국내의 어느 연구에 의하면 '벚꽃을 통해 안심감과 릴랙스(긴장 완화)를 얻을 수' 있다고 하며, '벚나무를 바라봤을 때 우울감이 더욱 낮아지'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벚꽃은 3월 하순~4월 상순에 개화하며, 볼 수 있는 시기가 매우 짧다. 우리나라에서 이 시기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차라, 온도가 완연히 따뜻해지고 사람들의 야외활동 빈도가 높아진다. 또한 일본은 학교가 보통 4월에 개학하기에 '무언가 시작하는 시기'에 벚꽃이 피며, 반대로 벚꽃이 피면 '이제 무언가 시작되는 시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설렘과 불안 속에서 따듯한 온도와 어여쁜 꽃이 찰나에 피고 지니, 이 꽃은 그 자체로 동아시아권에서는 낭만적인 꽃이지 않을 수 없다. 문학과 영화, 드라마에서 벚꽃을 주요 소재로 사용하거나 낭만화해온 것 역시 영향이 없지 않을 수 없겠다. SNS의 발달도 크다. 결국 낭만의 낭만화가 향유되는 셈이다.



두 해의 팬데믹을 겪고, 이제 세번째 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역시 살기 위해 숙주인 인간을 결국 죽일 수가 없다. 델타, 오미크론 등으로 변이되며 확산세는 강해도 위험도가 낮아지며, 정부는 감염병 등급을 하향화 할 방침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백신 접종 유무를 확인하던 소란스러운(기이하기 짝이 없었던) QR코드 인증제도 없어지고, 거리두기 인원과 영업시간 규제는 지속적으로 완화되는 추세다. 대선, 취업난, 주거문제, 경제적 · 정신적 어려움 등, 체감하는 현실적 여건들은 크게 나아진 것이 없지만, 사람들은 '봄'을 찾고 있다. 그것을 놓아버리지 않았다. 조금 더 좋아질 거라는 낙관,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 잘 될 거라는 믿음…. 벚나무 아래 삼삼오오 모여있던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은, 모두들 그런 마음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벚꽃축제란, 벚꽃을 즐기기 위한 축제만은 아닌 듯하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나는 믿는다. 벚꽃을 카메라로 찍고, 잠깐의 미소를 짓고, 봄을 만끽하려 공원과 숲, 강가로 향하는 상기된 얼굴의 사람들을 보며…… 잠시나마 무거운 마음을 풀어놓고 따뜻한 햇살을 쬐고 싶어하는 청년들의 마음을,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어쩌면 찰나의 행복을 보며, 나는 우리가 조금 더 '봄'으로 이동해가고 있다고, 우리에겐 그런 힘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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