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시장으로 간 성폭력

이 책을 읽을 당신에게

by 어찌

* 2023년 10월 작성

* 김보화(저자). 2023(발행일). 휴머니스트(출판사)

* 이 글은 2023년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발간된 「여성과 인권」 통권 제30호에 실렸다.



『시장으로 간 성폭력-성범죄 가해자는 어떻게 감형을 구매하는가』는 크게 두 가지 줄기를 가진다. 첫 번째는 남성 중심적인 사법 질서와 담론 속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경험이 타자화되는 과정, 성폭력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스스로 피해자 화하는 논리, 성폭력 사건 해결의 의미와 조건 등이다. 두 번째는 ‘법 시장화’가 성폭력 피해자들을 무력한 상태로 위치시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피해를 드러내고 연대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성매매 피해지원 활동가의 시각으로 성매매 여성 법률지원과 경험을 연결하여 책에 대한 서평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깜짝 놀라 순간 침묵하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성매매 피해 여성 지원 경험을 성폭력과 어떻게 연결하지?’, ‘괜찮을까?’ 무수히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성폭력과 성매매를 함께 묶어 이야기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성폭력 사건 지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내가 오히려 사회적 편견을 더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성매매와 성폭피해지원을 함께 고민하게 된다니 묘하게 욕심이 나서 그냥 집필하기로 하였다. 반성매매 활동가인 내게 성매매는 익숙한 주제이고 이를 중심으로 성폭력에 접근할 수 있다면 반성폭력 운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만 같은 막연한 생각과 성매매 피해 여성 및 성폭력 피해 여성과 관련한 법률 지원 과정 중 어떤 부분이 같거나 다른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책을 읽기에 앞서 나는 반성매매 활동가로서 요즘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성매매 피해 여성의 법률지원 과정에 대한 고민인데, ‘왜! 아직도 힘들지?’라는 생각이다. 『성매매피해자호보법』이 제정된 지 19년이 지났지만 성매매 피해 여성의 법률지원은 전혀 쉬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어려워진 것 같다. 사소한 행동이 습관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년, 자신의 직업에 달인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년이라 하는데, 성매매 피해 여성의 법률지원 과정에서만 왜 여전히 초급반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찾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Chapter 1. 법시장, 성범죄 가해자를 지원하다>와 <Chapter 2. 힘드시죠? 감형 컨설팅 해드립니다>를 읽는 순간 그 해답을 찾게 되었다. <Chapter 3. 성폭력 피해자, 법정에 서다>를 읽는 순간에는 법원에서 성매매 피해자에게 왜 ‘진정한 피해자화’를 요구하는지 알 수 있었고, <Chapter 4. 성폭력 사건의 해결이란 무엇인가>에서 내가 왜 이러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나를 알게 되어 분노하였다. 마지막 <Chapter 5. ‘성폭력 정치’의 재구성을 위한 제안>을 읽는 순간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여성들과 연대하며 활동을 해나가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어떻게 만나 소통하고 활동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본 원고를 읽는 모두에게 「시장으로 간 성폭력」을 꼭 읽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이 책을 토해 우리가 사회 속에서 어떻게 구조화되고 활용되는지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행동으로 우리 모두가 연결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평을 읽는 모든 이들이 지금보다 더욱 행복하고 평안해지기를, 그로 인해 나 또한 그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소개한다.


책의 첫 줄기 <법시장, 성범죄 가해자를 지원하다> 챕터는 성폭력 가해자들을 지원하는 성범죄 전담 법무법인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현상과 해당 전담 법무법인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해 나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성범죄 전담 법무법인 시초 격인 OO법무법인은 네트워크 로펌, ‘로펌계의 스타벅스’라 불리면서 전국에 지부를 내는 방식으로 확장하였고, 설립 5년 만에 연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하였다. 우리 사회에 성폭력 가해자는 너무나도 많고, 이것이 돈이 될 것이란 확신을 가진 법조인들은 성범죄 전담 법무법인이라는 이름으로 성폭력 가해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들은 ‘성폭력 범죄를 감형’한다는 게시물을 공공장소에서 버젓이 홍보하고, 온라인에서는 법률 자문 및 법률지원에 필요한 각종 진술서, 반성문, 등 예시를 판매하였다. 심지어 변호사들은 부족한 선임료를 대납하는 ‘대출 브로커’ 역할까지 서슴지 않았다.


성폭력 관련 법시장이 확대된 이유는 그동안 감추어져 왔던 성폭력 가해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투운동’의 영향으로 피해자들은 침묵을 깨기 시작했고 가해자들을 고발했다. 국가도 성폭력 범죄를 엄중히 처벌하겠노라 선포하였고 우리 사회는 ‘위드유’로 피해자들의 말하기를 응원하였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와 분리되기 위해, 혹은 피해를 끝내기 위해 법적 싸움을 시작했다. 가해자들 역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는데 이를 위해 변호사를 적극적으로 선임했다. 이 과정에서 성폭력 가해자들은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자신의 가해행위를 무죄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였고, 더 나아가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성폭력 피해자들을 ‘무고’로 고소하면서 사법 시스템 안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을 다시 끌어들였다. 저자는 “국가는 성폭력을 엄중히 처벌하겠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며 피해자의 고소를 독려하는 한편, 가해자 중심적인 변호사 업계의 시장화를 방임하면서 양쪽 모두의 법률시장을 확대함으로써 성폭력 사건 해결의 법적 의존도를 높이는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을 ‘정치 사법화’라 하였는데, 민주적 공론의 장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할 사안들이 소수 엘리트 법관들에 의해 정해진다는 점과 개인을 공동체로부터 분리하여 고립시킨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는 성폭력 사건이 사회 인식 변화 등 민주적인 주제가 되지 못하고 법적 의존도를 높여 개인의 책임이 된다는 것이며, 이러한 방법으로는 성폭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논한다.


피해자에게 법적 소송 과정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리고 인생의 많은 것을 걸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책에도 나오지만 우선 변호사 수임료를 확보해야 하며 가해자들의 협박이나 주변의 소문에 시달리기도 한다. 심지어 피해자의 지인들도 걱정이란 이름으로 피해자를 회유하거나 비난하기도 한다. 피해자는 소송 과정에서 스스로의 피해를 입증해야 하며 피해자다움을 강요받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무고’로 피소되어 가해자의 위치에 서기도 한다. 피해자들은 소송 과정에 최소한 경찰 3개월, 검찰 3개월, 법원 3개월의 시간을 소비하며(해당 시간은 무고 사건을 제외한 것이며, 사건과 관할 부서에 따라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이런 모든 과정을 알고 소송을 포기하거나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너무나 많다. 소송을 시작하여도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으며 소송이 길어질수록 소문은 무성해지고 진실은 사라짐으로써 피해자들은 2차, 3차, 피해를 겪게 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생계의 위협과 소송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존감 하락이라 할 수 있다.


성매매 피해에 대한 소송 과정 역시 성폭력 피해의 소송 과정과 매우 닮아 있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성매매 피해 소송 과정은 ‘성매매 여성’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너무 크기에 주변에 소송을 알리지 못하는 점과 주변에 아군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두 소송 과정의 닮은 점은, 첫 번째로 사회적으로 진정될 수 있는 피해자 기준에 얼마나 부합하느냐 하는 점이다. 법원에서 인정하는 피해자의 기준은 매우 엄격하다. 어릴 적 환경이 좋지 않아 인생이 너무 고달프거나, 누군가에게 속아서 감금되었거나, 장애가 있기 때문에 인지적 사고가 떨어져서(장애 정도에 따라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등 손에 꼽을 정도이다. 법원에서 묻는 질문의 핵심은 늘 동일하다. “성인이고 본인이 성매매를 거부할 수 있음에도 왜 성매매를 거부하지 않았는지?”. 즉 피해자의 자발적(자기 결정권) 선택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마치 피해자가 ‘절대적 능력’을 가진 존재인 것처럼 미화하여 판단한다. 그로 인해 ‘진짜 피해자’를 구분하여 억울한 가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한 법원의 노력에 매번 감탄한다. 두 번째는 그렇다면 성매매 피해자들은 ‘왜? 어려운 소송을 굳이 진행하는가?’이다. 왜 일상을 모두 걸고 승산이 없을지도 모르는 고통스러운 싸움을 하는가?, 법원의 판결문이 내(피해자)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 효과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이 피해를 끝내고 싶어서’, ‘이제는 남들처럼 살고 싶어서’라는 답을 찾을 수 있다. 피해 회복을 위한 방법이 꼭 소송이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답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소송뿐’이라는 슬픈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저자는 책에서 다시 이야기한다. “소송이라는 과정은 가해자 1인이 아닌 사법 시스템 안의 온갖 남성들과 싸워야 한다”. 일례로 「성범죄 사건, 경찰조사에서 합의, 재판에서 사건별 대응전략」이라는 책은 현재 온라인 서점에서 최고 중고가 12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가해자들은 성공 사례를 공유하여 그들의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사법제도 안에서 확장하고 있다.

‘어떤 방법이어야 피해자들이 자신의 언어를 되찾고 강해질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질문하였다. 저자는 해결에 앞서 여성들의 원함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짚어준다. 사법 시스템의 한계를 통해 여성들이 처한 구조적 문제가 왜 사회적으로 논의되지 못하는지 드러내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시 고민을 던진다. 성매매 피해 여성 역시 법원에서 인정하는 그저 몇 장의 판결문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성매매를 벗어남으로써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다는 단순한 바람, 한 가지였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 우리가 함께 이뤄온 법제화로 여성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할 수 있게 되고,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가지게 되는 등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이뤄낸 대단한 자부심이라 생각한다. 그로 인한 가해자들의 저항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지만, 이것은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반매매 현장 활동가로서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동안 현장에서 피해자 지원이라는 눈앞에 닥친 시급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하였던 것 같다. 이제는 고개를 들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가해자 연대와 어떤 전략으로 싸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이러한 고민을 할 수 있게 기회를 준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본 서평은 법률지원 과정의 일부만 소개하였다. 「시장으로 간 성폭력」에서는 성폭력 소송에서 가해자가 감형받는 방법과 자본 시장의 연합, 법원이 요구하는 것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회 구조적 문제, ‘성폭력 정치’의 재구성을 위한 제안 등 실제 소송을 진행한 변호사, 활동가와 피해자들의 인터뷰가 담겨 현장감을 생생하게 전달해 준다. 또한 에필로그에는 저자가 피해자들이 인터뷰 종료 후 어떻게 강해지고 단단해지는지에 대한 과정을 기술하였는데 이 역시 책의 감상 포인트이다. 마지막으로 꼭 일독하시길 권하며 저자의 말을 인용하여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 책을 읽을 당신, 나 그리고 피해 여성들은 어쩌면 몰랐을 내일을 상상하고 서로 따뜻하고 격하게 안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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