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을 ‘제대로’ 하는 방법에 관한 안내서
* 2025.04.03.
* 김미덕(저자). 2016(발행일). 현실문화(출판사)
* 추천하고 싶은 사람: 여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볼 때 피해자들에게 무척 공감이 되지만 가해자들에게도 공감이 가는 사람, 피해자를 바라보는 것이 힘든 사람, 피해자가 이해가 안 되는 사람, 사회가 피해자 집단과 가해자 집단으로 나뉘어 보이는 사람, 피해자에게 공감해보고 싶은 사람 등 페미니즘의 실천이 어떠해야 하는지 궁금한 사람들
*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공감을 ‘지대로’ 하는 방법에 관한 안내서
나는 늘 궁금했다.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나의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왜 일부 사람들의 의해 늘 논쟁이 끊이지 않는지 말이다. 혹시 놓치거나 모르는 것이 있지 않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순전히 제목만 보고 선택한 책 「페미니즘의 검은 오해들」이다. 그리고 나는 책 끝에서는 사람들이 가지는 페미니즘의 오해보다 내가 가지는 특권의식과 우월감을 인지하고 스스로 반성하며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마사 누스바움은 「공감: 기본적인 사회적 감정」이란 논문에서 공감은 공동체와 개인을 연결하는 중심적 가교로 이성과 평가가 개입되는 중요한 감정이며, 타자의 복지에 대한 일종의 사고·추론이라고 하였다. 즉, ‘타자가 느끼는 고통과 관련된, 타자의 복지가 부재하다는 감정’으로 정의했다.
나라안이란 학자는 사람들의 공감 부재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회정의에 관심 있는 자들의 공감이 더욱 어려운 이유는 피억압자가 억압적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적 반응이 인식론적 특권을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감을 위해 피해자의 고통이 사소하지 않고, 그 피해가 억울하며,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할 때 공감이 가능하다 하였다. 그렇지 않은 감정적인 반응들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자신의 안도와 우위가 설정된 인식론적 특권을 가진 ‘감상주의’로 빠지기 쉽다고 하였다.
이렇게 공감이 어려운 것이라면 ‘정체성으로 뭉친 집단에는 연대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질문도 잠시, 작가는 정체성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며 ‘여성’, ‘소수자’ 등의 집단으로 묶어도 이들 내 차이들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위계적이기에 같은 결로 두기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다. 또한 정체성은 기존 특권에 대한 저항을 기반함으로 확장의 어려움도 함께 이야기하였다.
작가는 페미니즘을 공감, 정체성의 정치에서 벗어서 ‘탈동일시’ 대안을 제안한다. 사람들은 특정집단의 정체성, 사회적 이데올로기, 특권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하였다. 이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변화해야만, 물질적·제도적·구조적 억압의 속성을 파악하고 억압의 속성을 탐구해야만 한다고 하였다. 또한 탈동일시는 자신의 저항 준거점을 소수자의 정체성에서 찾지 않으며, 고통과 억압이 구성되는 역사적 체계를 질문하고 분석하는 것, 다양한 형태의 권력, 특권, 안전함의 느낌, 자기 이익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집착의 결들을 끝없이 버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사회적 정체성과 자아의 분리 및 비판적 담론 능력이 가능한 탈동일시를 통해 죄책감, 저항, 진실을 둘러싼 허구적 자부심을 피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쯤에는 이러한 질문이 든다. ‘공감도 없이 정체성도 없이 어찌 타인과 만나 연대를 할 수 있을까?’ 작가는 이에 이렇게 대답한다.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역지사지, 감정이입, 동일 시 작업은 거쳐야만 할 과정이라 동의한다. 하지만 그 과정의 한계가 있다.’며 지적한다.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것이 특권과 안전함으로 나타내는 구조적 억압과 차별에 가담하는 자신의 공모여부를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대항하려는 억압의 종류도 알 수 없고, 전략적 주관성도 확보되지 않았다. 가부장제는 무엇이며, 여성이란 또 무엇인지 일상에서 보이지 않는다. 여성을 개인화하고 개별화하여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연대하지 못하고 분열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특권층이 바라는 결론이 아닐까?
나는 여성 스스로가 말할 수 있으며, 스스로 자기 역사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사회적·구조적·제도적 억압자들이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과 새로운 시도를 함께 준비할 뿐이다. 이러한 과정은 쉽지 않은 과정이이다. 나는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가지는 많은 질문들, 페미니즘은 무엇인지?.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피해자를 향한 복잡한 감정도 괜찮은지? 등 치열한 고민들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리고 그 소중하고 귀한 마음이 다치거나 쓰러지지 않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작가 역시 같은 마음으로 ‘탈동일시’를 제안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마사 누스바움이 정의한 ‘공감’에 대한 이해와 작가가 제안한 ‘탈동일시’가 함께 한다면 여성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한 걸음 한 걸음 주변에는 새로운 형태의 안전함과 연대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