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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 아일> 지루하도록 설레는 일상 -서사편

by 연정

!!스포일러 주의!!




내가 <인 디 아일>을 본 후 영상미를 제외한 감상을 아주 솔직히 말하면... 지루하고 당황스러웠다. 원래 잔잔한 영화도 잘 봤었는데 요즘 들어서 자극적인 영화에 길들여졌다는 점을 고려해도 몇몇 장면들을 빼곤 참 지루한 영화였던 것 같다. <인 디 아일>은 서사로서 내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고, 그래서 내가 생각한 핵심적인 서사적 특징을 알아보는 대신, 내가 왜 지루함과 당황스러움을 느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질성의 원칙에 의해 영화의 몰입도를 현저히 낮추는 요소들이 많다는 것이다. 첫째로 스토리가 매우 단순하다. 극단적으로 짧게 정리하자면, 크리스티앙이 대형 마트에 취직하면서 음료 코너 선배 브루노와 친분을 쌓아가고 사탕 코너 마리온과 사랑에 빠지는데 알고 보니 마리온은 유부녀였고, 둘은 결국 연인으로 발달하지 못하고 어느 날 브루노가 자살한다. 물론 이 사이에도 크고 작은 이야기가 많지만 가장 굵직한 스토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두번째는 이 모든 스토리가 플롯과도 일치한다는 것이다. 과거를 얘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도 과거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주인공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또, 중간중간에 뜬금없는 풍경을 잠시 보여주거나 캐릭터의 이름을 검은 화면에 띄우는 등 몰입을 깨트리는 장면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캐릭터 각각에게 부여된 이야기가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이다. 크리스티앙은 어렸을 때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다 감옥을 갔다왔고, 공사 아르바이트를 하다 상사에게 ‘게으른 돼지’라는 소리를 듣고 그를 때렸고, 그 후 마트로 왔다. 마리온은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한다. 브루노는 트럭을 몰다 회사가 망하고 마트로 재고용 됐고, 아내와 함께 산다는 거짓말을 한다. 이렇듯 주어진 정보도 많이 없는 상태에서 캐릭터들에게 큰 감정의 변화나 표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영상에 대한 몰입도와 스토리에 대한 몰입도가 계속해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즘에서 던져 볼 질문은 ‘감독은 왜 이렇게 관객의 몰입을 일부러 깼을까?’이다. 내 추측으로는, 관객들이 캐릭터들에게 지나치게 몰입하지 않기를 원하는 것 같다. 캐릭터들의 선택이 바람직한 것이었나? 라는 질문에 섯불리 ‘그렇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앙이 착하게 보여도 그가 어떤 짓을 저지르고 감옥에 갔는지 알 수 없으므로 함부로 옹호하는 것을 피해야한다. 마리앙은 왜 바보같이 가만히 맞기만 하는가? 브루노는 왜 퇴사해서 트럭 기사로 취직을 시도하지 않고 자살해버렸는가? 관객들이 이런 비판을 할 수 있게 몰입을 방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효과는 너무나 뛰어났던 나머지 나에겐 너무나 지루해져 버렸다.


그러나 이 영화가 지루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특히 영화가 끝난 뒤에는 더 재미있었다. 영화 속 다양한 기호들이 해석의 여지를 많이 주기 때문이다. 많은 기호들이 있었는데, 가장 재밌었던 세 개에 대해 다뤄보겠다. 첫째는 ‘바다’에 관한 것이었다. 브루노가 크리스티앙을 물고기가 빽빽하게 들어찬 어장으로 데려가는 장면이 있다. 이때 브루노가 ‘우린 바다라고 불러. 얘들은 팔릴 때까지 여기서 헤엄쳐.’라고 하는데 그 순간 물고기 하나가 물 밖으로 튀어 오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브루노가 죽은 이후 마리온이 크리스티앙에게 브루노가 가르쳐 줬다며 지게차를 천천히 내리면 파도 소리가 난다고 한다. 그리고 둘은 지게차에서 나는 바다 소리를 들으며, 영화가 끝난다. 두번째는 ‘트럭’이다. 트럭은 크게 두 번 등장하는데, 첫 번재는 브루노가 마트 직원이 되기전에 트럭 기사 였다는 점, 그리고 크리스티앙이 브루노의 집에 초대된 뒤 집에 가던 길에 그를 지나 달리는 트럭들. ‘바다’와 ‘트럭’ 함께 가지고 있는 캐릭터는 브루노다. 어장 앞에서 브루노가 하는 대사 속 ‘바다’는 마트고, 뛰어오른 물고기는 브루노를 의미한다. 자신이 속하는 바다에 살면서 그곳에서 벗어나길 끊임없이 갈망하는 존재. 그러나 ‘바다’는 사실 어장이었고, 그곳에서 힘껏 벗어나면 물고기는 죽음뿐이다. 트럭을 그리워하던 브루노는 결국 마트에서 벗어나기로 하고 그렇게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크리스티앙 옆을 지나는 트럭들은 떠나는 브루노에 대한 암시나 추모처럼 받아들여진다. 마지막은 ‘야자수’이다. 야자수 그림은 두 개가 있는데, 바로 마트안 직원 휴게실 한쪽 벽면과 마리온의 방안 화장대 위 퍼즐이다. 직원 휴게실 속 야자수가 가장 돋보이는 장면은 마리온과 크리스티앙이 마리온의 생일을 축하하며 초코바를 먹을 때이다. 이때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M) 당신 참 특이해요… 신참씨. (C) 바라는 게 뭐예요? 이루어진다면요. (M) 전부 다요’. 마트 안은 햇볕 한점 들지 않는 곳이다. 크리스티앙과 마리온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둘이 함께 있는 곳에서 서로에게 애정을 느낄 때는 뜨거운 야자수 그림이 그들 곁에 있다. 이렇듯 크리스티앙과 마리온은 서로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주는 존재다. 그러나 덜 맞춰진 퍼즐처럼 결국 서로를 완전하게 해주는 존재로 남지는 못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기호들로 각 캐릭터의 특징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우선 극중 영화에서만 가능한 특성을 가진 인물은 없었으므로, 모두 가상의 존재이다. 그리고 세 인물 모두 서독, 동독 통일로 인해 아픈 사람들이므로, 모두 징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크리스티앙은 어릴 때 질 나쁜 친구들을 사귀어 일탈을 겪었고, 마리온은 아마도 통일로 인해 변했을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하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브루노는 사랑했던 일자리를 한순간에 잃고 정반대의 상황에 갇히게 된다. 그러므로 세 인물 모두 독일 통일이라는 문화적 맥락을 보유하고 지시하는 존재들이다.


이 영화는 우리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크리스티앙이 출근하면 처음은 옷을 입고, 볼팬을 꽂고, 커터칼을 주머니에 넣고, 소매를 당기고.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다른 일이 일어난다. 우리는 지루한 일상을 보내면서 영화 볼 때 특별한 일을 기대하고 보는데, 감독은 우리 일상 속에서도 이런 소소한 이야기가 영화처럼 특별한 일이 될 수 있다고 보여주는 것 같다. 마트에 일하게 된 직원들은, 마트에 꼭 일하고 싶어서 왔다기보다는, 브루노처럼 어떤 다른 일을 하거나 다른 꿈을 꾸다가, 좌절해서 마트에 온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절망스럽고 우울하지도 않다.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서로 사랑에도 빠지고, 혼란에 빠지기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이 일상도 특별해질 수 있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싶다. 영화를 보며 처음에는 많이 지루하고, 분석 때문에 다시 봐야한다는게 괴롭기도 했지만, 시각, 서사 분석을 통해 다시 영화를 곱씹으니 생각보다 많이 재밌게 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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