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조금만 뒤처져도 인생이 끝난 것처럼 느끼며, 불행과 실패를 쉽게 자기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능력주의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사회가 정한 ‘평범함’, 혹은 ‘보통’이라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게으르거나 의지가 약한,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종종 인성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따라붙는다. 이러한 능력주의는 겉으로는 공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잔인하고 불공평한 기준이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저렇게 산다”, “고통을 극복해야 성장한다” 같은 말들을 듣고 자랐다. 흔한 조언 같지만, 이런 말들은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을 흔들어 스스로를 의심하고 죄책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어린 학생부터 청년들, 그리고 기성세대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가 발생하거나 불행이 찾아왔을 때, 사회 구조의 문제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떠올린다.
한국인의 머릿속에는
“내가 노력이 부족해서”,
“내가 못나서”,
“내가 잠을 줄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같은 자기 비난적 사고가 기본 전제로 깔려 있다.
“불만 있으면 네가 더 열심히 하면 되잖아.”
우리는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고, 때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며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밀었다. 그렇기에 내가 실패했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더욱 고통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의 원인은 노력부족이라 여기며, 정말 열심히 노력하며 산다. 그러나 세상에는 내 노력만으론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러다 만약 실패했을 때 모든 잘못은 나의 노력부족이 되고 만다. 반드시 자책을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며, 심하면 우울증과 무기력감이 동반된다. 최근 증가하는 쉬었음 청년 문제도 이러한 능력주의적 신념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능력주의는 우리가 생각해 온 것처럼 공정하지 않다. 수능을 떠올려 보자. 열심히 노력해서 공부한 사람이 높은 점수를 받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공정해 보인다.
그러나 출발선이 다 다르다. 누군가는 경제적·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불안한 가정, 경제적 제약, 돌봄 책임, 정신적 어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어떤 사람에게는 공부에 집중할 공간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능력주의란 아주 가혹한 평가기준이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극소수의 성공 사례를 예로들며 말한다.
“저 사람도 해냈으니 너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례가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드물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가능한 일이라면, 그건 미담도 뉴스도 되지 않는다.
“한 아버지가 딸을 사랑했다”는 사실이 기사화되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통계는 이러한 불공평한 현실을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2024년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서울대 입학생 자료 분석 결과 합격 결과의 92%는 부모의 경제력과 거주 지역 등 구조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실력보다 계급과 환경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이처럼 가장 공정한 것 같아 보였던 수능조차 사실은 매우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대 합격결과의 90% 이상이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력의 격차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2024년 국토교통부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상위 30%가 전체 토지의 91%를 독점하고 있다. 나머지 70%의 사람들이 남은 9%의 토지를 나눠가지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런 통계들은 한국 사회의 경쟁이 더 이상 공정한 출발선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가진 사람들에게 훨씬 유리한 게임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실패를 개인의 태도 문제로만 설명해 왔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정부의 적절한 시장개입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시장을 완전히 방치하면 구조는 부자에게 너무 유리하게 고착된다. 반대로 정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부자들의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 항상 이 사이에서 컨트롤을 잘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 지금 한국 사회는 이미 소수의 기득권층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상태이다. 현재 능력주의는 기득권층이 불공평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노력하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라고 희망차게 말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 문장은 희망이 아니라 압박이다. 자책을 습관화시키며 한번 뒤쳐졌을 때 다시 일어서기 힘든 심각한 무기력감을 안겨 준다.
그 결과, 한국은 아래와 같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5년 연속 자살률 1위(2018~2022 기준)
-우울증 유병률 1위(2020년 OECD 우울증 유병률 통계)
-저출산 1위(2022년 OECD국가 기준)
-행복지수 최하위권(2023 세계행복보고서, OECD38개국 중 35위)
-갈등지수 3위(전국경제인연합회 OECD30개국 중 조사, 2016년 기준)
-진보•보수 등 이념 갈등 1위 (영국의 킹스컬리지와 여론조사기관 Ipsos가 공동 발간한 보고서, 2023.06)
-학력 갈등 1위 (위 출처와 동일)
-남녀 갈등 1위 (위 출처와 동일)
-빈부 갈등 1위 (위 출처와 동일)
-세대 갈등 1위 (위 출처와 동일)
-종교 갈등 1위 (위 출처와 동일)
-복지지출 최하위권(2022년 기준, OECD 38개국 중 34위)
이렇게 현실을 말해도, 누군가는 현실이 이런데 뭘 어떡하냐고 반발하기도 한다. 경제적, 군사적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사회구조 개선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위에서 언급한 통계를 봤을 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구조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 구조가 계속 유지된다면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우쭐대는 소수의 기득권층과, 좌절과 불안을 견디며 살아가는 울분에 가득 찬 다수로 나뉘게 될 것이다.
최근 네팔 Z세대의 반정부 시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을 좌절과 울분에 가득 찬 상태로 만드는 것은 기득권층에게도 좋지 않다.
우리나라사람들은 능력주의 세뇌교육으로 인해 반정부시위 대신 자책하고 우울증을 혼자서 견디는 중이라 그렇지, 사실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다. 최근 묻지 마 살인 같은 범죄의 원인에도 분명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 결과들은 절대 한국사람들이 게으르거나 노력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가 아니다. 능력주의적 사고가 사람들을 자기 비난 속에 가두고, 우울과 무기력감 속에 방치해 왔기 때문이다.
능력주의가 만들어낸 이 구조적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태도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이유는 게으르거나 열심히 살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미 기울어진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희망이 아니라, 구조를 보지 못한 채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말에 가깝다.
이제 우리는 주변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부정적이고 우울해하는 사람들은 희망이나 노력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단지 뜻대로 되지 않을 뿐이다. 누군가가 주저앉았다면, 그것은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환경과 조건, 상황이 달랐기 때문일 수 있다. 누군가가 잠시 멈춰 서 있다면, 그것은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는 과정일 수 있다. 실패와 휴식은 낙오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정부가 정치구조, 법, 복지등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순식간에 바뀌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 학벌이 낮은 사람, 돈이 없는 사람, 취업을 못한 사람, 쉬는 청년들 모두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잘못된 것은 그 사람들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자책하고 비난하며 셀프가스라이팅 했다면, 반대로 우리는 다시 생각을 바꿀 힘이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이미 충분히 노력해 왔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멈춰 서도 괜찮고, 느려도 괜찮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살 수는 없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건강한 삶이다.
그동안 엄격했던 능력주의적 기준을 조금만 내려놓고, 경쟁과 비교를 멈추었으면 좋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관이 너그러워지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힘이 생겼을 때 비로소 정부의 정책 또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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