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머문 빛과 색. 쌉싸름한 풀향. 내 인생 최초의 기억은 어느 여름, 유치원 뒤뜰의 작은 정원에서 방울 토마토 모종을 심는 것이다. 그 작은 씨앗에서 초록이 싹 틀 때까지는 고작 삼 일. 그러나 생명은 연약한 존재라 새싹은 가벼운 빗줄기에도 한기가 들어 허무하게 죽곤 했다. 나는 구름반, 별님반, 달님반을 지나 유치원을 졸업할 때까지도 내가 맡은 방울토마토가 빨갛게 열린 것을 볼 수 없었다. 물뿌리개를 안고 오매불망 텃밭에 쪼그려 앉아있던 나의 진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열매를 품기 직전 푸릇하던 가지는 매번 하룻밤 사이에 누렇게 시들어버렸다. 반면 내 짝꿍의 방울토마토 가지에서는 부실하게나마 동그란 열매가 싹을 틔웠다.
“선생님! 토마토 열렸어요!”
옅은 황갈색에 가까운 열매가 알알이 맺힌 방울토마토 모종 앞에서 브이를 치켜들고 사진을 찍는 짝꿍을 억울하게 지켜봤다. 고작 한 뼘 떨어진 곳에서 내 토마토 가지는 생명을 빼앗겨 쪼글쪼글했다. 고개를 숙인 채 바람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죽음이란 것조차 모른 채 무작정 슬프기만 했다. 바라보고 있으면 심장이 이상한 박동으로 뛰었다.
어떤 것이 태어나고, 살아가다가, 갑작스레 존재하기를 멈춰서 죽어버리고, 영영 사라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22년을 살아온 지금까지도 이 질문에 입을 떼기 어렵다. 죽음에 초연할 수 있는가? 무슨 자세로 죽음을 바라봐야 하는지, 죽음의 문턱에서 후회가 없으려면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와야 하는지? 삶과 죽음의 dichotomy 에 대해 처음 생각해 본 것은 ‘방울토마토 사건’으로부터 3년이 지난 여덟 살 때였다.
그 날은 비가 쏟아져내리는 빨간 날.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흥분감도 곧 사그라들고, 창틀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나른해질 무렵 아빠가 거실의 텔레비전을 켰다. “무한도전 봐?” “아니, 오늘은 이거. 아빠가 정말 좋아하는 거야.”
그렇게 나는 아빠와 함께 내 인생 최초로 '영화라 할 만한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는 바로 <터미네이터: 심판의 날> 이었다. 재미없어 보인다며 툴툴거리는 나를 두고 웅장한 배경음악이 깔리며 영화가 시작했다. 가죽 자켓을 입고 오토바이를 모는 아놀드 슈와제네거와, 눈을 찌르는 긴 앞머리를 한 에드워드 펄롱의 이국적인 외모며 영어 대사까지, 생전 본 적 없는 낯선 광경이 눈 앞에 쏟아졌다. 처음에는 잔인하고 무서워서 눈을 가렸던 것도 잠시, 후반부로 갈수록 나도 모르게 터미네이터에게 몰입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추격 장면에서는 손에 땀을 쥐며 발을 굴렀고, ‘사라’의 아슬아슬한 병원 탈출 장면에서는 전전긍긍하며 들키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장면으로 향할 때.. 사슬로 스스로를 묶고 용암 속으로 사라져버린 터미네이터와, 엄지손가락을 치켜 드는 작별 인사를 멍하게 바라보던 나의 심장이 삼년 전과 비슷한 박동으로 뛰기 시작했다.
두시간이 넘게 내 눈 앞에서 걷고, 말하고, 싸우던 터미네이터가 그저 그렇게 사라졌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펄펄 끓는 불길 속으로... 사그라졌다.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도 한참동안 시야가 번쩍번쩍 눈이 부셨다. 수많은 불빛이 어른거리다 한데 뭉쳐 흩어진 것은 내 눈물이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영화를 보며 기계인간의 죽음이 안타까워 펑펑 울었다. 그 날 밤 침대에 누워서도 귓바퀴에 눈물이 고여 귀가 웅웅 울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같은 여덟 살의 나이였지만 나는 이것을 시작으로 곧 영화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영화관의 카펫 바닥, 영화가 시작할 때 조용해지는 관중들, 천천히 불이 꺼지며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소리, 팝콘의 냄새,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 밀물처럼 빠져나간 사람들과 극장에 혼자 앉아 있는 느낌까지. 나는 영화를 이루는 모든 것들과 사랑에 빠졌고 영화는 점차 나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킹콩>, <맨 오브 스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레옹>… 학교가 쉬는 놀토에 동네 영화관으로 달려가 예매 마감 10분 전 겨우 표를 끊고 한 시간을 기다려서 <마루 밑 아리에티> 를 봤던 날에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연출과 각본에 흠뻑 빠져 담요를 뒤집어쓰고 새벽 한 시 까지 <이웃집 토토로> 와 <벼랑 위의 포뇨> 를 연달아 보았다. 안개가 낀 바닷가마을을 감싼 에메랄드의 물빛과 천년이 넘게 자리를 지키는 삼나무의 초록이 일렁이는 호수의 파동... 모두 오랜 전설이 전하는 세계처럼 매혹적이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훔친 것은 영화 속 무수한 사람들의 이야기.
노인과 소년, 여자와 남자, 그 사이 어떠한 선택의 결과와, 시간과 상처의 풍화.
인간의 망설임, 두려움, 본능, 비겁함, 그럼에도 감출 없는 진심의 눈빛.
이야기는 삶과 죽음, 그 단순한 두 시점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탄생으로 시작해 죽음으로 끝나는 영화가 많았지만, 죽음으로 시작해 새로운 탄생으로 끝나는 영화도 있었다. 영화 ‘햄릿’ 속 햄릿의 독백처럼, 죽은 후에도 우리의 불멸하는 영혼이 꿈을 꾸고 그 꿈이 바로 이 현실의 반영이라면, 죽음은 삶과의 이별이 아니라 삶의 연장이거나 재생이라 할 만 하다. 이 문장을 이해하는 데까지 꼬박 십 년이 걸렸다.
그렇게 지금까지 여러 이야기를 배웠다. 그 사람이 된 것 처럼 극장에 앉아 울고 웃었다. 인생에서 마주칠만한 모든 것들을 이야기를 빌려 이해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영화와 이야기는 날 두고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이야기로부터 도망갈 때에도, 이야기는 언제나 그 곳에 있었다. 그 속에는 날 울리고 웃길 수 있는 수많은 거리의 금빛 반짝임과 흘러넘쳐 쏟아지는 햇빛의 눈부시고 투명한 영예가 있었다. 깜깜한 극장에 갇힌 두시간 동안만큼은 주인공이 된 것처럼 그 인생을 살았다. 열두 살에 레미제라블을 처음 봤을 땐 악역인 자베르를 미워했지만, 열 여섯에 두 번째로 봤을 땐 자베르가 악역이 아님을 이해했고, 올해 4월 재개봉한 레미제라블을 스물 둘의 나이로 보면서는 장발장의 독백보다 자베르의 고뇌에 마음이 움직였다.
나는 영화가 좋고 이야기가 좋았다. 휴지가 물을 빨아들이다 못해 끝끝내 젖는 것처럼 내 어린 마음도 영화관에 눌러앉아 그 이야기를 빨아들이고 끝끝내 흠뻑 젖으며 계속 계속 자랐다. 그러다보면 가끔 어린 시절 담뿍 물을 주어도 먹지 못하고 늦서리에 시들어 죽어버린 방울토마토 모종이 생각났다. 참 얄궂다, 싶으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나의 방울토마토는 두려움의 앙금과 종유석같은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바람 줄기에 삶을 내줬으리라. 나의 삶도 그렇게 가끔은 이 시끄러운 세상에 무언가를 내줄 것이다. 포기하고 내려놓고 뒤돌아 걷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짓궂은 굴곡에 패배하고, 송곳같은 고뇌에 스러져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영화가 내게 준 것은 그런 굴곡마저 인생이란 기승전결을 전개하는데에 필요함을 아는 힘이었다. 물질만능주의와 염세주의가 팽배하고 돈과 숫자와 등수가 단단히 뭉쳐 모든 것을 앞서가는 세상이란 곳에서도 귀퉁이마다 낭만을 찾는 힘이었다. 제작년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내린 엄마를 보았을 때, 엄마의 8할 속 할아버지가 차지했던 자리의 크기가 보였다. 엄마는 지금 늦서리를 마주하는 유약한 방울토마토 가지였다. 내가 처음으로 친구를 떠나보낸 날에는 나를 이루는 8할이 봄 빗줄기에 무너져내렸다. 석촌동 시내를 걸으면서 그 친구를 잊으려면 멀었다 생각했다. 걷다 보면 전부 시야에 들어와 웃지 않을 수 없었던 친구. 나를 놀리고, 얄밉게 굴고, 시도때도 없이 간섭하고, 재수없는 말을 하고, 실없는 장난을 쳐서 기어코 웃게 만들었던 친구의 새카만 눈동자는 봄비에 젖어버린 이파리만큼이나 투명하고 젖어 있었다.
내 인생은 아직 짧아서 그 8할이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어.
8할을 도려낸 빈자리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
그렇게 내 삶이 이따금 텅 비어 2할만 남았을 때마다 다시금 8할을 채워주는 것이 바로 영화였다. 밤 새워 <이프 온리> 를 보고 다시 시내를 걸었을 땐 내 옆에 다시 친구의 그림자가 보였던 것도 같았다. 우리의 그림자는 자꾸만 길게 길게 늘어져 옹송그린 잔디를 침범하며 짙어졌다. 사만다를 바라보는 이안처럼 친구의 그림자를 오래도록 보았다. 그제야 나는 기민하게 느껴오던 두려움이 걷히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다시 옛날처럼 어느 빵집에 대해 떠들다가 복권에 당첨되면 어쩔거냐 서로에게 묻고 있었다. 그래, 예전처럼 함께 걸을 수 없어도 그녀의 그림자를 상상할 수는 있었다.
그 순간에 다다르고서야 나는 친구와 작별했다. 정말, 처음으로 나의 8할이 무너지지 않은 채 떠나보냈다.
2할의 그리움과, 2할의 절망과, 2할의 아쉬움과, 2할의 쓰라림을 길어올리는 8할의 이야기.
그 2와 8의 비율이 내 인생의 중심추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나를 길러준 8할, 힘든 일 잘 털어놓지는 못해도 매일같이 글을 쓰는 버릇이 있는 8할, 아직까지 길을 걷다 연예인을 마주치길 바라는 서울 생활의 8할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한다. 22년을 살았으니 8할이 점점 무거워져 간다. 어떠한 무게감이 이처럼 고맙게 느껴졌던 적이 지금껏 없었다.
그 어린 시절 유치원 텃밭에서처럼, 어떤 것은 태어나고, 어떤 것은 죽어가는 자연의 순환. 숨 쉬는 생명체라면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시간. 알 수 없기에 두렵고도 설레는 인생의 높고 낮은 굴곡. 그 속에서 오직 이야기만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표를 끊고, 극장에 들어가 마주한 스크린의 찬연함이 말한다.
어떤 날은 지고, 어떤 날은 피고, 일출과 일몰을 겪으며 바닥까지 추락했다가 다시 올라오기도 하는 것이 삶.
엔딩 크레딧 뒤로 도달할 수 없는 차원의 원리를 두고 닿지 못하고 있었던 유치원 뒤뜰이 보였다.
방울토마토 모종의 첫 꽃망울, 그 푸르게 방울진 열매를 드디어 보았다.
나의 유일한 길잡이를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