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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석 Jun 25. 2022

푸코. 2)‘장판’에서 푸코 읽기 – 박정수



“삶과 사상”을 오롯이 받아들인 사람이 저술한 푸코에 대한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책의 제목 “‘장판’에서 푸코 읽기”에서 장판은 ‘장애인 운동판’의 줄임말입니다. 저자 박정수는 ‘수유 연구소’에 있을 때부터 푸코 공부를 하며 개론서 형태의 책을 준비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글은 삶과 동떨어져 무디어 가고, 단순히 푸코 사상을 요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집필을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장애인 운동판’인 ‘노들 장애학 궁리소’에서 ‘장애 문제’와 ‘소수자 운동’을 하며 푸코의 사유가 몸으로 스며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책에서 “나로서는 ‘장판에서 푸코 읽기’ 이외에 다른 형태의 푸코 개론서를 쓸 수 없다. 마치 심해에서만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해파리처럼, 운동하는 삶 속에서 만 특유의 광기 어린 신비를 발하는 푸코의 담론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장애인 운동판에서 푸코의 사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장판'에서 푸코 읽기"는 푸코 사상의 흐름 - 고고학, 계보학, 생명 정치, 자기 돌봄- 이 대표작을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푸코의 고고학이란 발굴된 유물의 시대 구분을 지층 사이의 시간 단절로 파악하듯이 시대마다 사용하는 담론도 단절된 시대 -르네상스, 고전주의, 근대- 마다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론입니다. 예를 들면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광인은 예언자로 여겼고, 17세기 고전주의 시기에 광인은 비이성적인 괴물과 같은 존재였다면, 19세기 근대에 광인은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되었습니다. 푸코는 고고학에서 각 시대의 지층마다 다른 진리 체계(생각의 바탕, 에피스테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고학 이후의 계보학은 당대 진리로 받아들였던 담론의 역사를 추적하여 그 담론이 진리로 인식되어가는 과정을 밝혀내는 방법론입니다. 푸코는 계보학적 방법으로 시간 속에서 어떻게 권력의 의지에 의하여 진리 체계(담론)가 형성되어 가는지를 밝혀내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대표작은 ‘감시와 처벌’입니다). 이후  생명 정치와 주체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입니다. 푸코가 병상에 누워 마지막까지 집필한 ‘성의 역사’ 2권과 3권은 자신에 대한 배려와 통치에 관심을 기울이며 주체에 대하여 연구한 책입니다.     


“장판에서 푸코 읽기”의 목차를 보겠습니다. 책은 전체 6장입니다. 1장- '인간학과 장애학, 그 말과 사물'. 2장- '광기의 역사와 정신의학의 권력'. 3장 - '비정상인들을 위한 감시와 처벌'. 4장- '안전사회의 그림자 생명 관리 정치의 탄생'. 5장 - '섹슈얼리티의 역사와 나르키소스들의 반란'. 6장 - '자립생활을 위한 자기와 타자의 통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 이 작업이 ‘푸코에서 장판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장판에서 푸코를 읽는’ 것임을 "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푸코의 언어와 사유에 기초하여 장애인이라는 존재,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근대적 인식론과 권력질서를 이해할" 뿐 아니라 "푸코의 이념을 우리가 제대로 사유하기 위해서는 ‘장판’의 한가운데 앉아 있어야 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푸코를 경유하면 ‘장판’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는 점을 보이기보다는, 푸코의 사유가 ‘장판’ 위에서야 비로소 우리 앞에 그 면모를 드러낸다는 것을 입증"해줍니다.       


저자 박정수는 ‘한국의 정신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 푸코의 박사학위 논문인 "광기의 역사"가 보여주는 시대성을 반복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정신병원’은 ‘장애인 시설’이나 ‘정신요양시설’의 운영방식, 입소자의 생활양식과는 전혀 다르다고 합니다. ‘장애인 시설’은 지역 사회의 복지서비스나 문화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정신요양시설'은 그보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의무적 문화프로그램 없으며 정해진 시간에 기상해서 밥 먹고 약 먹고 어슬렁거리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입니다.     


'정신병원'은 그 열악함이 앞의 두기관에 비교해 가장 끔찍한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1차 병원급 정신병원에서 폐쇄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은 단 한 발자국도 밖에 나갈 수 없습니다. 이들이 햇빛을 볼 기회라고는 옥상에서 잠시 걷는 시간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집중하여 바라볼 부분은 정신병원 입원자 중에는 실제 정신병에 걸린 사람보다 알코올 중독증이나 행동장애,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수용자의 분포를 통해 정신병원은 정신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는 기관이 아니라 사회의 안정과 질서에 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두는 감옥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성은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고전주의 시대 절대 군주는 통치를 저해하고 무질서를 유발할 수 있는 자들을 구빈원에 수용하였습니다. 광인, 거지, 부랑인 가난한 불구자, 무의탁 노인, 자유사상가들은 구별 없이 함께 수용됩니다. 


이에 대한 결과로 인하여 “비행자, 방탕아, 성병 환자, 광인 사이에 모호한 친족 관계가 형성되었"고 "심리적 죄와 법률적 범죄, 사회적 비행과 광기 사이에 모종의 혈연관계가 형성된 것"입니다. "19세기 정신의학은 이런 친족관계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으며 완성되었습니다. "오늘날 정신 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물려받은 건 바로 이 19세기 정신의학의 유산"입니다.      


고전주의 시대에 구빈원은 수용된 사람을 각종 징벌 장치를 동원하여 규율을 습득하고 질서를 지키는 사람으로 훈육시켰습니다. 구빈원에서 훈육을 위해 사용하던 징벌 장치들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치유적 의미를 부여받으며 현재 정신병원에서도 지속돼있다고 합니다. 정신병원에서의 치료는 규율적 규칙을 내재화하는 것이 목적이고 지속적으로 사회와 격리시키려는 속성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현대의 정신병원은 치료 이후 환자들을 사회에 복귀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판에서 푸코 읽기”는 푸코의 사상을 장판 위에 올려놓고 장판의 시각으로 푸코의 전기, 중기, 후기 사상을 흡수하며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박정수는 책에서 신체, 정신장애. 발달장애. 조현병과 연관되어 사회에서 발생했던 문제적 사건들을 상기시켜줍니다. 저자의 도움으로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지나쳤던 사건들을 다시 만나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장판에서 푸코 읽기”를 읽으면 “삶과 사상”을 오롯이 받아들인 사람이 제기하는 질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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