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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석 Jun 11. 2022

카프카 4). 『자유를 향한 여섯 번의 시도』- 오선민

최근에 자유를 키워드로 하여 카프카의 작품과 삶을 이해하는 책을 소개받았습니다. 제목부터가 『자유를 향한 여섯 번의 시도』입니다. 『자유를 향한 여섯 번의 시도』는 카프카 문학이 자유롭고 거침없이 드러내는 삶의 증상을 “유목, 독신, 소송, 측량, 변신, 문학”등 여섯 개의 키워드로 독해합니다.   



이 책은 문학사의 맥락에서 카프카의 문학이 가진 미학적 놀라움(환상과 현실을 절묘하게 결합하여 사태 자체를 여실히 보여주는)을 보여주는 책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들뢰즈, 가타리가『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에서 자신들의 철학적 논리를 예증하기 위해 카프카의 문학을 인용하듯이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보여주기 위해 카프카의 문학을 사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자는 책에서 카프카가 살았던 시대와 삶의 조건을 알아보고 그 시대와 삶의 조건을 넘어서려는 카프카의 글쓰기를 보여줍니다. 오선민은  “1장에서 카프카가 어떻게 ‘자유’라는 화두를 갖게 되었는가를 그가 몸담았던 시대의 분위기를 살펴”보며 서술합니다. “2장부터 5장까지는 카프카의 작품을 시기별로 세 기간으로 나누고 각각에서 카프카가 집중적으로 고민했던 자기 삶의 조건들, 그 한계와 추구에 대해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카프카의 다양한 글들 속에서 추론해본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글쓰기와 몸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쓰고 있습니다.  


저자는 초기 작품인 『선고』, 『화부』에서 장편 삼부작 『실종자』, 『소송』, 『성』을 거쳐 이후 출판된 다양한 단편을 소개합니다. 초기 작품에서는 아버지와 가족문제 대한 성찰을 다루고 두 번째 시기 작품에서는 관료주의 문제를 탐구합니다. 마지막 시기는『변신』과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를 예시하며 변신의 문제를 다룹니다. 오선민은 출판 시기별로 정확히 구분시키지 않고 작품을 주제별로 교차시키며 자신의 주장을 논증해나갑니다. 


카프카의 글은 삶의 준거점을 쉼 없이 탈주하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자, ‘지금’을 떠나자! 언제나, 지금 내가 먹고사는 것들, 의지하고 믿는 것들을 절대화하지 않으려 할 때에만 최고의 여행을 할 수 있다. 그의 자유는 저 바깥에 있지 않고, 지금 여기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당장 구현된다.” 카프카는 시대와 혈연이 요구하는 도덕 세계에 감금되지 않기 위해 글쓰기를 통해 끊임없이 몸의 변화를 가져오는 행위를 자유라 한 것입니다. 즉 카프카에게 자유란 “글쓰기와 몸의 지속적 변화”를 말합니다.   

 

카프카는 당시 독일의 정치, 문화의 힘이 장악하고 있는 체코의 유대인이었고, 가족에게 방랑하는 유대인이 아니라 유럽 시민으로 살게 해 주었다는 자부심 강한 아버지의 아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카프카에게 주류 정치 문화에 발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압박과 유럽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가업을 계승해야 한다는 가족의 압박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의 지향은 자유였습니다. 


당시 체코의 민족주의는 유대인들을 타자화 시켜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유대인은 유대 공동체 건설이라는 시오니즘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시대적 불안은 유대인에게 좀 더 안정적인 유대 공동체를 만들거나, 암울한 체코의 게토를 떠나 자유로운 다른 지역을 찾아 떠나게 합니다. 그러나 카프카에게 이와 같은 선택은 자유를 찾기 위해 더 큰 권위에 기대는 것이었습니다. 카프카는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의심할 수 있는 여행법“을 선택합니다.   


저자에 의하면 카프카는 당시 동유럽 유대인으로 꾸려진 유랑극단 연극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고 합니다. 남유럽 쪽으로 유랑하던 동유럽 유대인 극단은 각 지역마다 그 지역에 맞추어 작품을 개작하고 무대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들이 만든 연극적 공식이나 관습에 얽매여있을 수 없었고 창조하고 파괴하는 생성의 과정이 지속되어야 했습니다. 동유럽 유랑극단이 보여준 습속과 전형성에서 탈주하는 모습은 카프카에게 자유의 개념을 잡아가는데 영감을 줍니다. 


다음으로 카프카가 주목한 것은 뒤범벅된 그들의 언어라고 합니다. 그들의 언어인 ‘이디시어’는 전통 유대 어가 아니고 독일어에 히브리어가 섞인 형태입니다. 유랑극단은 언어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유랑하는 동안 자신들의 말에 민족적 관습과 어울릴 수 없는 많은 것들도 붙이고 녹”여 나갑니다. “각 지방의 민족어가 부분 부분 섞여 있었고 온갖 사투리 파편이 죽은 듯 누워 있다가 깨어나기도 했“습니다. 카프카는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척도화 된 삶,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를 절대화하는 삶을 끊임없이 거부하면서 계속해서 이질적인 타자들에게로 열려가는 글쓰기“에 대한 깨침을 얻게 됩니다.    


카프카는 두껍게 감싸고 있던 민족주의, 사회주의, 가족이라는 담론에 봉사하는 글쓰기와는 담을 쌓고, 유기적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 문장 한 문장이 전체 줄거리를 위해 존재하는 글쓰기에 등을 돌립니다. “카프카는 한 올 한 올, 읽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풀려 나가고 다시 엮일 수 있는 글쓰기를 시도했”습니다. 카프카는 일상 일상이 사물 사물이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되지 않는 글쓰기 방식을 창조해 나갑니다. 이러한 그의 글은 독자들로 하여금  "온갖 의미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글쓰기"를 접하게 해 주었습니다.   


“카프카에게 글쓰기란 끔찍한 앎의 문턱을 넘어 광활한 불복종의 땅으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였고 “자기가 알고 이해했던 것의 종식 즉 자기 앎의 죽음을 담보로 하는, 목숨을 건 도약”이었습니다. 이는 “끝없는 실패와 무한한 시도의 초원을 달리는 행위”입니다. 카프카가 이런 글쓰기 통해 마주하고자 한 것은 변신이었습니다. 그에게 글쓰기란 민족주의, 사회주의, 관료주의, 가족으로 구성된 몸을 일상의 사건과 사물에 감각하는 끝없이 깨어나가는 몸을 만드는 삶과 동일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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