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마일 , 120킬로로
나는 지극히 길치에 방향치이다..
그래서 역시나 한국에서는 지갑에 고이 모셔놓은 장롱면허였다. 8년이나 그것도 한 번도 스스로 운전해 본 적이 없기에 무사고 운전자이다.. 우습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처음 내 주제를 모르고 용감하게 수동 기어 1종 면허를 도전해서 운전학원 내에 연습 장 안에 언덕 오르는 코스에서 기어를 못 바꿔 차가 서있는 채로 나만 내려와 버린 기억말이다.
그 이후로는 2종 자동 면허시험에 도전해서 두 번만에 면허를 딴 거 같다.
하지만 막상 차를 가지고 나가기에는 너무나 무서워 면허 딴 그대로 지갑에 모셔 두었었다
미국에 오니 차 없이는 움지일수가 없다 하다 못해 마트에 가야 할 때도 차가 필요했고,. 무엇보다 출근을 해야 했기에 운전은 필수였다. 이곳은 등이 굽은 백발 할머니도 정신만 온전하면 운전을 한다. 또 아이들도 16세부터 합법적으로 운전이 가능하다. Junior permit이라고 가까운 거리에 학교 등하교를 위해 주는 면허를 딸 수 있다. 아예 고등학교 4년 과정 중에 수업이 있다.
우리 아이들도 집과 고등학교 거리가 애매해서 미국에 유명한 노란 스쿨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아빠가 차로 늘 데려다주거나 아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도 했고 , 차가 두 대가 되자 학교에서 해주는 운전 수업을 통해 16세에 면허를 따고는 내 오프날 내차를 가지고 등하교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옆집도 총 차가 식구수대로 4대, 세 아이가 있는 집은 기본 5대가 되는 거 같다. 그렇다고 다 좋은 차는 아니다. 형 누나들이 썼던 오래된 차를 동생들한테 물려주고 해서 덜덜거리는 엔진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의 오래된 차를 아이들이 학교에 끌고 다니기도 한다
미국은 참으로 실용주의 나라다.
그래서 운전면허 시험도 우리나라처럼 학원 내 S자 T자 코스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다. 집과 가까운 시험 장소에 시험을 예약하고 실제로 이 사람이 실생활에서 운전이 가능한지를 직접 보는 것이다
동행인의 차를 타고 가서 시험장에 가면 그 차를 내가 운전하고 감독관을 내 옆 좌석에 태우고 동네를 직접 운전하며 감독관이 출발부터 중간중간 신호 지키는 것 , 차선 바꾸는 것, 좌회전 우회전 마지막 동네 안에 다른 차와 나란히 앞뒤로 주차하는 것까지 테스트 후 합격 여부를 준다.
물론 운전교습 학원도 있어 그곳에서 차를 빌려 갈 수도 있다. 미국 오자마자 남편과 나부터 운전면허 시험을 보았다. 필기시험도 친절하게 한국어용으로 신청하면 한국어 번역돼 있는 문제지로 시험을 볼 수 있다.
25문항에 20개 이상 맞으면 합격이었던 거 같다. 우스운 건 번역된 한국말이 더 이해가 안 되어 더 어렵게 느껴졌던 거 같다. 그래서 아이들은 오히려 영어가 편하다고 했다.
필기 합격 후 Road test 하는 날 남편은 흑인 여자 감독관이었고 나는 백인 남자 감독관이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운전경력이 20년 넘게 있는 남편은 무난하게 합격이었지만 너무 speed를 냈다고 감점을 주었단다 뭐든지 빨리빨리가 몸에 배어있는 우리로서는 빠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모든 면에서 서툰 나는 심히 걱정스러웠지만 다행스럽게도 백인 남자가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하자 가장 난 코스인 주택가 안에서 집 앞 길가에 앞차와 나란히 뒤에 주차를 해야 하는 평행주차에 실패를 하였는데 다시 천천히 해보라고 기회를 줘서 간신히 합격을 하게 되었다.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로 크게 운이 좋은 거라고 다시 기회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하였다.
그 이후 집에서 출근할 병원까지 남편과 10번 연습을 통해 혼자 차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한국에서 처럼 장롱면허가 아니다!!
여기는 한국과 달리 천천히 다닌다고 뒤에서 쉽게 빵빵거리거나 창문을 열고 욕을 한다거나 하지 않는다.
어린 16세부터 백발노인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운전자들이 있어서인 거 같다.
또 끼어들 때도 많이 양보해 주고 기다려주고 주차공간도 넓어 옆차와 간격 걱정할 필요가 없다.
동네 안에서는 또 중간중간 stop sign이라고 멈춤 표시가 곳곳에 있어 나처럼 천천히 가는 운전자에게는 더 운전이 쉽고 High way라고 해서 한국에서 외곽도로를 달릴 때도 exit을 잘못 나가더라도 그다음 출구에서 나가면 언제든 다시 순환해서 길을 찾을 수 있게 도로가 편리하게 되어 있다. 길치인 나 같은 사람도 운전하고 다닐만한 것이다. 이제는 아들딸이 나보다 운전 실력이 더 좋다. 아들 딸은 서울 과같은 뉴욕 맨해튼도 겁 없이 차를 가지고 운전할 정도가 됐으니 말이다. 차 많고 복잡한 맨해튼은 내게는 절대 어림도 없다.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운전해서 갈 수 있는 내 차가 있고 또 하이웨이는 무서움 없이 혼자서도 75마일 , 시속으로는 120까지도 속도내서 달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장롱면허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