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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 Jun 09. 2020

미역국, 내 영혼의 시금치

다정한 편지 by 혜진


은결님, 혹시 소울 푸드가 있으신가요? 제 소울 푸드는 엄마가 해준 미역국이에요.

퇴근하고 파김치가 되어 저녁은 또 뭘 먹나 힘겨운 고민이 들 때, 자주 엄마가 해 준 미역국을 떠올려요.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에 밥 한 그릇 말아서 김치 냉장고에서 갓 꺼내 썰은 김치를 얹어서 먹고 싶다, 라고요.


아주 오래전부터 미역국을 좋아했어요. 제가 대학생 때 엄마가 일을 나가시기 시작했는데, 출근 전에 미역국을 한 솥씩 끓여놓고 나가셨어요. 학교 가기 전에 밥 말아서 한 그릇 먹고 나가고, 집에 돌아와서 또 끓여서 한 그릇씩 먹었는데, 이상하게 질리지가 않았어요. 미끈미끈 해질 때까지 미역을 잘 씻어서 불려뒀다, 참기름 두 스푼에 소고기를 먼저 볶고, 간장 한 스푼을 넣어 미역과 한번 더 볶고요. 물을 자박하게 넣어 한참을 끓이다 다진 마늘, 파를 넣어서 다시 한 소금 끓이는 게 다인 -  정말 간단한 레시피인데, 엄마의 미역국은 왜 그렇게 맛있을까 지금도 가끔 의문이에요.






은결님도 아시겠지만 저희 아이, 하은이가 뱃속에서부터 아팠었어요. 6개월 태아 정밀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간 대형 병원에서 '가망 없다'는 말을 듣고 난생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행히 가망 없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고, 다른 병원의 태아 치료 센터를 쫒았다니며 열심히 살 길을 찾아다녔죠.


당장 휴직계을 낼 수 없어서 회사에 출근은 해야 했어요. 무슨 정신으로 끼니를 챙겨먹을까 걱정되어 엄마가 저희 집에 자주 오셨고 올 때마다 미역국을 한 솥씩 끓여주셨어요. 갓 끓인 미역국을 한 국자 크게 퍼서 그릇에 담아주고는, 수저를 들어 제 손에 들려주던 엄마.



나는 니가 더 중요하다. 넌 살아야지.



그 말을 하면서 속으로 엄마는 얼마나 울었을까, 가끔 생각합니다.


두 차례의 션트 시술과 한 달 남짓한 입원, 지난한 시간이었지만 아이는 36주까지 어찌어찌 버텨주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위험하다는 의사의 판단 아래, 36주 5일째 되던 날, 급하게 아이를 꺼냈어요. 1.9kg의 작디 작은 몸으로 엄마 품에 안겨보지 못하고 중환자실 인큐베이터로 들려간 아이. 그때부터 2개월 반을 매일같이 신생아 중환자실로 면회 다니는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약해 두었던 산후조리원도 취소하고, 몸조리 차 엄마네서 지냈어요. 그리고 엄마가 끓인 미역국을 매일같이 먹었습니다. 엄마는 매일 같이 마른 미역을 꺼냈고, 미역을 물에 한참 불려 두었어요. 미역이 야들야들 해지면 참기름을 넣고 소고기를 살짝 볶다가, 이내 익숙한 손놀림으로 미역의 물기를 살짝 빼서 냄비에 붓고는 간장 두어 스푼을 넣고 한번 더 볶았습니다. 넉넉하게 물을 넣고 한참을 끓이다 다진 마늘과 파를 넣고 한번 더 끓이는 엄마의 레시피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눈에 익혔더랬죠.



분명 아이를 낳았는데, 돌볼 아이가 옆에 없던 저는 엄마가 요리 하느라 분주한 뒷모습을 말 없이 쳐다보곤 했습니다.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심정인데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배가 고픈 것이, 생사를 다투는 아픈 아이를 두고 식욕이 생기는 것이 혐오스럽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래도 젖을 짜써 병원에 있는 아이에게 갖다 주려고 미역국 한 그릇을 먹었고, 한 시간 거리의 병원에 면회 가기 위해 한 그릇을 먹었습니다. 밥 먹다가 눈물이 터져 나올 때면, 엄마가 말없이 수저를 손에 다시 들려주면서 그랬어요.  


"네가 힘내야지. 네가 힘내야 걔도 살지"



임신 기간부터 신생아 중환자실로 매일 같이 면회를 다니던 그 육개월 남짓한 시간들을,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엄마의 미역국 덕분이었노라고, 이제야 고백을 해봅니다.

산후조리원 구경도 해보지 못했고, 출산 다음날부터 지하철을 타고 병원으로 면회를 다니면서도 아픈데 없이 이렇게 건강한 건 엄마의 그 미역국 덕분이었노라고, 뽀빠이의 시금치만큼이나 엄마의 미역국은 나에게 그 시간을 이겨낼 힘을 주었노라고, 이제야 고백을 해봅니다.



  




뱃속에서 같이 먹은 탓일까요? 저희 애도 미역국을 엄청 좋아해요.

퇴근 후에 요리할 생각이 전혀 들지는 않지만 "하은이 너는 뭐 먹고 싶어?" 했더니 바로 '미역국'이랍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미역국이라면 끓여야지 싶어 엄마가 노량진 시장까지 가서 사 왔다는 비싼 미역을 꺼냅니다.


여전히 요리 솜씨는 형편없는 초보 엄마지만, 미역국만큼은 뚝딱 끓여냅니다.

참기름을 넣고 고기와 미역을 달달 볶는 제 뒷모습을 아이가 물끄러미 쳐다보기에 마주보고 같이 웃었습니다.

도마에서 냄비로 개수대로 능숙하게 손을 움직이던 내 엄마가 서있던 그 자리에 제가 있음을,

눈물을 삼키고 지켜보던 저 자리에 제 아이가 있음을,

새삼 감사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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