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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엄마 Jun 05. 2020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

다정한 일기  by 은결

안녕하세요 혜진님 :)

아이들의 간헐적인 등교로,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듯해요. 학교를 안 가고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는 날은 어쩐지 휴일 같은 느낌에 흐느적거리게 됩니다. 오늘도 그런 밤이네요.


혜진님의 애정 가전 삼총사, 부럽네요. 혜진님의 시간을 벌어주는 기특한 녀석들. 제가 생각하는 미니멀 라이프란 물건이든, 머릿속 생각이든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 나와 어울리는 것인가'의 기준에 따라 불필요한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이랍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제가 보는 혜진님은 자신만의 미니멀 라이프에 이미 한발 쏙 담그신 거 같아요. 보기 좋아서, 편해 보여서 그냥 가지고 싶어서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명확하게 알고 계시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활용하고 계시니까요.




요즘 저는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있어요. 내향적인 성격에다 사람들에게 잘 휘둘리는 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강한 저는, 그래서 오히려 관계의 벽을 만들어 온 것 같아요. 미리 차단하면 내가 상처 받지 않으니까요. 그런 방어기제를 가진 시간들이 저를 혼자 가게 만들었어요. 게다가 어릴 적 저는 뭐든 잘하고 싶어 했고, 잘하려면 빨리 무언가를 해야 했으니 빨리 혼자 가는 걸 좋아하게 된 거죠.


그런 저에게 걸림돌이 자꾸 생겼어요. 빨리 혼자 가려고 할 때마다, 같이 발맞춰 가자고 건네는 사람들. 혼자 빨리 가서 저만 생각하다 죽을 수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 때문에 저는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생각해보게 된 거죠. 왜 빨리 가려는 거지? 혼자서 빨리 가서 그걸 이루면 뭐가 좋은 거지? 정말 혼자서 가는 게 행복한 거니?


4명이서 함께 즐거운 우리 꼬매이들이에요

나에게 '함께'의 생각을 심어준 건 여동생의 역할이 가장 컸어요.

고등학교까진 사실 여동생과도 친구 같은 관계는 아니었는데 성인이 되고 같은 해에 결혼을 하고 같은 해에 아이를 낳고 가까이 살게 되면서 절친이 되었죠. 여동생은 저보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그래서 자기가 언니인양 저를 챙기는 날이 많았어요. 아이를 낳고는 밖에서 일을 하지 않는 동생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죠.


하지만 마음이 늘 편한 건 아니었어요. 뭐든 함께 하자고 하는 동생에게, '오늘은 나 혼자 있고 싶어.'라고 말하기가 어려웠죠. 어디 놀러 갈 때마다 '같이 가서 놀자'하는 동생 덕분에 우리 아이들도 함께 좋은 곳에 많이 가서 추억을 쌓았지만 '우리 가족끼리'놀러 가는 게 힘들어졌죠. 저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이 움직여서 챙겨야 하는 그런 마음의 부담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거든요. 혼자 홀가분하게, 가 되지 않으니 우리 가족 4명만, 이라는 생각이 강한데 그것마저 잘 되지 않으니 힘든 날도 많았어요.


하지만 그런 마음의 갈등 덕분에 저는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보게 되었답니다. 나,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너, 그리고 큰 단위의 가족들까지도. 나아가서는 타인과 사회문제도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내 아이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동생네 아이까지 함께 생각해서 뭔가를 결정하다 보니, 우리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아이들,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아이들, 이렇게 생각이 확대되는 경험도 했고요. 아직은 관심을 가진다, 라는 수준이지만 내가 나를 깨고 나간 것만은 확실한 거 같아요. 함께해서 좋은 점을 자꾸 찾고 있거든요. 혼자서 빨리가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천천히 함께 행복하기를요.


뭔가를 실천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혼자서 그렇게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것들이 자꾸 수포로 돌아가기 일수였는데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저는 꾸준해지고 있어요. 필사 모임의 체크리스트에 쓰여 있던 '혼자선 깊어지고, 같이는 꾸준합니다'라는 말, 정말 좋아하는 문장이 되었답니다.


혼자서 해야 편했던 내가 이제는 천천히 함께 가는 것에도 조금 더 비중을 싣고 있답니다. 예전 비율이 10:90이었다면 이젠 30:70 정도 되었다고 할까요? 아직 균형을 맞추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노력하고 있으니 50:50이 되는 날엔 저의 관계도 빛이 나게 될까요?


나 자신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타인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함께 멀리 가고 싶답니다. 물론 혜진님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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